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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절실했던 70년 전 한국, 그때를 기억해달라"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발행일 : 2023.05.30 / 종합 A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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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戰場 키이우에서… 젤렌스키, 한국 언론과 첫 인터뷰

    "70여 년 전 한국이 다른 나라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했을 때를 떠올려 주십시오. 당시 정의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전 세계가 도움의 손길을 뻗었기에 자유롭고 민주적인, 번영한 한국이 탄생했습니다. 지금의 우크라이나는 70년 전 한국과 같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해 주십시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45)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인터뷰는 5월 넷째 주 수도 키이우의 집무실 중 한 곳에서 단독으로 진행됐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었다. 시내 모처에서 대통령실 보안 요원과 접선해 창을 가린 밴으로 이동, 여러 차례 보안 확인을 거치고 다시 20여 분을 기다렸다. 그제서야 젤렌스키가 모습을 드러냈다. '전장의 대통령'을 상징하는 군복 차림이었다. 티셔츠엔 우크라이나 사이버 보안 기관 이름인 'UA30'이 새겨져 있었다. 전장에서의 대면 인터뷰는 이례적이다.

    러시아의 키이우 야간 공습이 거세지는 가운데 만난 젤렌스키는 한국 국민과 정부를 향해 지지를 호소했다. 한국이 6·25전쟁의 폐허에서 불과 두 세대 만에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 된 사실을 언급하며 "전쟁과 분쟁을 겪고 폐허에서 일어난 국가의 경험에서 배우고 싶다. 한국은 그런 나라 중 하나"라고 거듭 강조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이어진 격전으로 젤렌스키가 최근 "남은 것이 없다"고 표현한 동부 전선의 바흐무트 등과 비교하면 키이우 상황은 나은 편이다. 그럼에도 점점 격해지는 공습으로 사이렌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도시 곳곳이 피해를 입었다. 매캐한 폭약 냄새가 일상이 된 키이우에서 젤렌스키는 여러 차례 '재건'을 이야기했다. 그는 "한국은 전쟁과 그로 인한 희생, 복구 과정을 경험했기에 지금 우리가 처한 사정을 더 잘 이해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전쟁 후 우리 국민이 평화롭고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가며 고통과 상처를 보듬고 재활하는 과정에 (한국의 경험을 살려) 많은 협력이 이뤄질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질문에 쉴 틈 없이 답을 이어가던 젤렌스키는 한국 정치권의 우크라이나 지원과 관련한 찬반 논쟁에 대해 묻자 한동안 침묵했다. 그는 숨을 고르고서 "한국의 (정치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은 침략을 받은 이의 입장을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를 지키려고 발버둥 치는 우크라이나의 사람들을 지지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정의로운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는 국가로서, 한국에 대해 매우 명확한 입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편에 섭니다. 저와 우크라이나는 한국을 두고 저울질하지 않습니다. 한국을 지지하고 한국과 함께 발전해 가려고 합니다. 한국 국민도 우리와 같이, 통일된 입장을 가져주시기를 요청하고 또 간청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의 인도적 지원에 대한 감사를 표했다. 전후 우크라이나의 경제 재건을 위해 한국과 협력하면 좋을 분야에 대해선 매우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자원과 한국이 보유한 기술을 고려할 때 리튬 배터리 분야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우크라이나의 전후 재건 과정에 한국과 어떤 협력이 가능한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난 한국의 경험을 배우고 우리의 경험과 결합해 국가를 재건해 나가려 한다. 안보와 방위산업, 또 첨단 기술과 사이버 공간에서의 협력, 그리고 전후 우리 국민의 재활 과정에 많은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보유한 자원과 많은 매장량, 한국이 보유한 기술 역량을 고려하면 리튬 배터리 분야가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리튬 채굴에 이어 관련 제품 생산까지 가능하다. 우리는 구(舊)소련 시절부터 리튬 생산을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평가는.(한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 2억3000만달러 이상의 인도적 지원을 했다. 최근엔 지뢰 제거 장비 등의 추가 지원을 약속했다.)

    "우선 한국 정부와 국민의 우크라이나 지원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전쟁을 겪은 한국이 우리를 (다른 나라보다) 더 잘 이해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크라이나 면적의 약 3분의 1이 지뢰로 덮여 있다. 수많은 농부와 민간인, 어린이들이 러시아가 설치한 지뢰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장애인이 되었다. 지뢰 제거 장비는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우크라이나의 매우 중요한 방어 시스템 중 하나다. 한국이 지원하기로 한 지뢰 제거 장비가 수많은 농부와 어린이들의 목숨, 그리고 손발을 구해낼 것이다."

    ―아직 한국의 지원은 인도적 차원에만 머무르고 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무기 지원과 관련해 여러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나는 한국의 이러한 원칙이 (한국이 아직 지원하지 않는) 방어 시스템과 전력 시스템 보호 장비 등에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대공 방어 시스템은 무기가 아닌 순수한 방어적 장비다. 우크라이나의 재건을 위해서 '하늘의 방패'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한국이 이 분야에서 우리를 지원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아울러 러시아의 공습을 경고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이 있는데 여기도 한국의 도움이 필요하다."

    젤렌스키는 적국(敵國)의 수장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해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았다.

    ―러시아가 서방의 핵위협을 이유로 최근 벨라루스에 전술핵 이전을 시작했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지금의 우크라이나엔 아무 의미가 없다. 러시아가 핵위협을 한 것이 한두 번이 아니고…. 워낙 오래 반복됐기 때문에 우크라이나는 더는 러시아의 핵무기 관련 위협과 조치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러시아는 쉬지 않고 핵위협을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른다. (핵을 악용한) 정치적 협박은 그들에게 남은 거의 유일한 수단이다."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밀접해지는데, 전쟁엔 어떤 영향이 있을까.

    "중국은 '바깥'의 어딘가에서,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려는 입장이다. 그런데 푸틴은 어떻게 했나. 시진핑 주석과의 회담에서 '영토 밖 핵무기 배치에 반대한다'고 해놓고 바로 그다음 주에 벨라루스에 핵 배치를 발표하지 않았나. 러시아는 자국과 어느 정도 가까웠던 국가들, 러시아를 정직한 동맹국으로 여겼던 국가들에도 거짓말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핵을 둘러싼 러시아의 말들은 그저 정치다. 실패한 정치, 잘못된 정치다."

    ―지난달 시진핑 주석과 통화하기도 했다. 중국이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평화를 위한 다른 국가들의 그 어떤 노력에도 감사하지만 우리 자신의 평화 공식, 우리의 이니셔티브가 기본이다'라고 분명히 밝혔다. 이 전쟁은 우크라이나에서 시작되었고 이곳에서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중국이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모든 영토에서 철수해야 한다'는 명확하고 강력한 입장을 밝힌다면, 그리고 그 경우에만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푸틴의 최종 목표는 무엇이라고 보나.

    "소련의 회복. 그것이 그의 인생 목표다. 이를 외교적으로 이룰 방법이 없으니 온갖 협박과 에너지 무기화 등을 시도해 왔다. 대부분 성공하지 못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 침공을 통해) 노골적인 침략자가 되는 방법을 선택했다. 수많은 민간인을 죽이고, 고문하고, 원자력 발전소를 점령해 핵 재앙 위협까지 하고 있다."

    ―푸틴과 만날 의향이 있나.

    "그는 2년 가까이 나와 전화 통화조차 피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다. 할 말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우리와 함께 있고, 그는 진실 앞에서 할 말이 없다.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강제로 빼앗으려는 자신의 억지에 논쟁의 여지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니 나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푸틴은 전쟁을 통한 우크라이나의 침탈, 우크라이나인의 정체성(Ukrainianness) 파괴를 원할 뿐이다. 푸틴의 다음 목표는 벨라루스다. 벨라루스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있다. 오늘의 푸틴은 분명,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것과 다른 사람이다. 푸틴이 자신의 군대를 우크라이나 영토에서 모두 물리기 전에, 그와 대화하기는 어렵다."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나와 우크라이나 국민은 한국에 대해 대단히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은 수많은 도전과 고통을 이겨내고 강하고 용감한 국가, 첨단 기술을 선도하는 경제를 만들었다. 한국은 한마디로 '멋진 나라'다. 과거 한국처럼, 우리도 지금 불의의 침략으로부터 생명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처절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내가 지금 한국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다."
    기고자 :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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