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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 도자대장경, 옻칠 민화, 야생화… 내 욕심은 천하 대적(大賊·큰 도둑)이라

    허윤희 기자

    발행일 : 2023.05.29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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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종 15대 宗正 성파 스님, 첫 대담집 '일하며 공부하며…' 출간

    "무소유? 나는 욕심이 천하 대적(大賊)이라. 무소유 같으면 나 자체도 이 세상에 없어야지."

    대한불교조계종 제15대 종정(宗正) 성파 스님(84)의 일갈이다. 종단의 제일 높은 어른의 말씀이라면 고담준론과 선문답을 떠올리기 쉽지만, 성파스님의 말 속에 그런 건 없다. "나는 이루고자 하는 거라. 안 그러면 눈 감아버리지. 왜 밥을 먹고 약을 먹나. 그래서 나는 소유가 엄청나. 남의 것도 내 거라."

    성파 스님이 대담집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샘터)를 출간했다. 김한수 조선일보 종교전문기자가 2022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스님을 만나 대담한 내용을 정리했다. 책 제목은 스님이 직접 지었다. 도자기, 천연 염색, 야생화, 옻칠 민화에 뛰어난 예술 승려로 방대한 일과 공부를 해온 스님은 "출가 이후로 하루도 행복하지 않은 날이 없다"며 "일하며 공부하며, 공부하며 일하며 늘 행복하다"고 말한다. "삼라만상이 내 소유"라고 역설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스님의 욕심은 정신적인 것이다. 전통문화를 되살리려는 욕심, 국민들이 사찰에서 자연을 마음껏 즐기며 안식을 얻기 바라는 욕심이다.

    1939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난 스님은 22세에 경남 양산 통도사로 출가했다. 그가 1980년대 초 통도사 주지를 맡게 된 계기는 통도사 일대를 위락 시설로 만들려는 계획 때문이었다. 1970년대 경제개발 이후 관광 붐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당시엔 사찰 땅 한복판까지 식당, 여관이 들어와 있었는데, 자원해서 주지를 맡은 성파 스님은 통도사 계곡 초입에 '산문(山門)'을 건립해 속세와 사찰의 경계를 새로 그었다. 현재 매표소로 쓰이고 있는 '영축산문'이다. "상인들에게 '음식점과 여관은 전부 산문 밖으로 나가라' 했어요. 난리가 났지. 나는 주지를 사흘만 하다 말아도 지당대신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지당대신은 요즘 말로 '예스맨'이라. 인간 한 놈(본인) 죽어서라도 천년 고찰 통도사를 살려야 한다는 각오였지요."

    스님은 깨달음이나 가르침을 직접 말하지 않는다. 기자가 스님을 인터뷰하면서 "고통받는 젊은이들을 위한 위로의 말씀"을 청했더니, 스님은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얼마나 많은 충고와 위로가 쏟아졌던가. 스님은 말하기 쉬운 해결책 대신 경청을 답변으로 내놓은 것이다.

    스님은 세속 나이 40대에 통도사 주지를 마치고 '출출가(出出家)' 생활을 해왔다. 스무 살에 통도사에 입산한 것이 '출가'라면, '출출가'는 출가자로서 제2의 인생을 선언한 것이다. 요즘 말로 '리셋(reset)'이다. 일본으로 건너가 자전거 하나 사서 골목골목 다니며 밑바닥 생활을 했다.

    이후 16만 도자대장경을 만들고, 차와 야생화, 쪽을 비롯한 천연 염색, 옻을 이용한 민화, 옹기를 이용한 전통 된장과 간장 담그기, 현재 진행 중인 '도서 무한대 모으기'까지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에 걸쳐 한 가지도 이루기 어려운 일을 잇달아 개척했다. 스님은 "무엇이든 근본을 깊이 따져보면 이치를 알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남들 50년 시간을 줄여서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파 스님이 10년에 걸쳐 도자로 제작한 16만 대장경은 통도사 장경각에 모셔져 있다. 그 앞마당엔 스님이 옻칠 자개로 재현한 반구대 암각화가 물속에 전시돼 있다. 2000년대 초반엔 중국으로 건너가 산수화를 본격적으로 배웠고, 3년 만에 베이징 중국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멋 부리지 않고 툭툭 던지는 말들이 깊은 울림을 준다. "무엇을 시작할 때 스스로 늦은 나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대신 일단 시작하면 무섭게 집중한다. 전통문화가 아닌 신기술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적극 받아들인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을 찍기 위해 드론 자격증을, 세계 3대 미항보다 아름다운 남해안을 다니기 위해 요트 자격증을 취득했다. "인생에서 '다 했다'는 것은 없어요. 지금도 나는 초보라. 지금도 모르는 것뿐이고. 아직 안 본 것도 많고, 안 들은 것도 많고. 나날이 새로운 것들인데요."
    기고자 : 허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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