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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자기 피 뽑아 수혈… 40년 헌신 '히말라야의 슈바이처'

    김경은 기자

    발행일 : 2023.05.29 / 사회 A1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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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세 강원희 의료 선교사 별세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로 불렸던 의료 선교사 강원희(姜元熙·89)씨가 26일 오후 별세했다.

    강 선교사는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1961년 연세대 의대를 졸업한 후 강원도 간성의 무의촌에서 진료소를 운영했다. 황해도 피란민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북한과 가까운 강원도에서 의술을 시작했다. 1970년 속초로 가서 '대동의원'을 열었다. 병원은 잘됐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으로 가난한 사람을 돕는 선교사를 꿈꿨다고 한다. 은혜의 빚을 지고 있고, 갚으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1976년 존경하던 한경직 목사에게 '선교사로 가고 싶다'는 말을 했더니 한 목사가 네팔을 추천했다. 간호사 출신인 아내 최화순씨가 "우리도 그냥 보통 사람들처럼 살 수 없느냐"고 했지만 그는 "꼬리도, 머리도 아닌 인생의 가운데 토막을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아내를 설득했다.

    그는 1982년 네팔로 떠나 약 40년간 네팔·방글라데시·스리랑카 등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펼쳤다. 48세 늦은 나이로 해외 선교에 나섰지만 열정적으로 봉사에 헌신했다. 당시 네팔은 공산 세력이 득세했고, 서점에는 김일성 책 천지였다. 현지 청년들은 "남한에서 왔다"는 그에게 "죽여버리겠다"며 으르렁댔다. 그는 주말마다 산동네를 찾아다니며 병자들을 고쳤다. 출산부터 중환자 수술까지 거의 모든 환자를 돌봤다. 먼 곳으로 왕진할 때는 하루 열대여섯 시간 걸은 적도 있었다. 그곳 환자들은 "이상하게 닥터 강이 치료하면 염증도 안 생기고 잘 낫는다"고들 했다. 그는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낮에는 환자들을 돌보고 밤에는 잠잘 시간을 쪼개 현지 언어를 익혔다. 새 의술을 익히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틈 나는 대로 귀국해 대형 병원에서 의료 기술을 배웠다. 봉사의 마음가짐도 중요하지만 실력이 없으면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험한 순간도 많았다. 1998년 힌두교 성지인 네팔 돌카의 산골짜기 병원에서 병원 사역자 중 한 사람이 간호사 방에 붙은 힌두신(神) 포스터를 찢는 일이 벌어졌다. 성난 군중이 병원으로 밀어닥쳤다. 먼저 기도를 하고, 죽을 각오로 그들을 맞았다. "실수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시는 그런 일 없도록 내가 책임지겠다"고 빌었다. 사람들은 몇 시간 만에 씩씩대며 돌아갔다. 그는 "그동안 친구처럼 신뢰를 쌓은 덕에 살아남은 것 같다"고 했다.

    1985년이었다. 네팔 응급실로 배 전체에 염증이 퍼진 환자가 실려왔다. 수술에 들어가자 헌혈하겠다던 환자 아들들이 도망쳐 버렸다. 그냥 두면 죽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의 팔을 걷고 피를 뽑으라고 했다. 200cc 혈액 팩 2개를 뽑았다. 병원장이 뛰어와 말리는 바람에 그 정도에서 그쳤다. 환자는 한 달여 만에 퇴원했다. 자신의 피를 뽑아 네팔인에게 수혈하고, 환자가 퇴원하면 식료품을 사 들고 집까지 찾아갔다. 네팔 현지인들은 그를 '히말라야의 슈바이처'라고 불렀다.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안동성소병원장을 맡았다. 병원 경영이 안정되자 병원장 자리를 내놓고 다시 에티오피아로 떠났다. 그곳에서 7년간 의료 봉사를 했다. 2011년 4월 히말라야 오지를 배경으로 당시 여든을 앞둔 그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 '소명3-히말라야의 슈바이처'(감독 신현원)가 개봉했다. 나눔과 기도의 의미를 실천하는 그의 모습을 담았다. 2020년 제17회 서재필 의학상, 2014년 국민훈장 동백장, 2012년 제24회 아산상 의료봉사상, 2000년 연세의학대상 봉사상, 1990년 보령의료봉사상 등을 받았다.

    유족은 아내 최화순씨와 아들 강근표씨, 딸 강은주씨, 사위 김철수씨, 며느리 이경혜씨 등이다. 빈소는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9일 오전 7시. (02) 2227-7580
    기고자 : 김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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