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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칼럼] 시대 잘못 읽은 죄, 민주당은 어떻게 몰락하나

    박정훈 논설실장

    발행일 : 2023.05.27 / 여론/독자 A26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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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회당의 돌연한 '소멸'은 세계 정당사(史)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힐 만하다. 자민당과 함께 전후(戰後) 일본 정치를 양분해 온 '1955년 체제'의 주역이었다. 40여 년간 제1 야당으로 군림하며 총리까지 배출했던 거대 정당이 존재감조차 없이 쪼그라들었다. 사회당에서 당명을 바꾼 일본 사민당의 중의원 의석은 현재 단 1석이다. '소멸'이란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일 사회당의 쇠락은 시대를 잘못 읽은 탓이었다. 자유·개방·민주주의로 진행하는 역사의 발전 방향을 오독해 친북·친중·반미의 역주행 노선을 달렸다. 사회당은 한반도 정세부터 거꾸로 읽었다. 한국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실패 국가 취급한 반면 북한은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이 이끄는 성공 모델로 칭송했다. 미국을 '남조선 침략자'로 규정하고 '살인 병기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북한의 실상이 하나 둘씩 드러난 뒤에도 사회당은 친북 환상을 버리지 않았다.

    몰락에 쐐기를 박은 것이 납북자 문제였다. 80년대 들어 일본인 실종자들이 북에 납치됐다는 증언들이 쏟아졌지만 사회당은 "한국 안기부가 조작한 정보"라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북한이 그런 만행을 저지를 리 없다"는 식이었다. 2002년, 방북한 고이즈미 총리 앞에서 김정일이 납치 사실을 깔끔하게 시인해 버리자 사회당의 입장은 붕 떠버렸다. 뒤늦게 "우리도 북에 속았다"고 말을 바꿨지만 일본 국민의 신뢰는 떠나간 뒤였다.

    일본 사회당의 오늘은 한국 민주당의 내일일 수 있다. 민주당 또한 시대의 패배자 진영에 서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북한 핵 딜레마는 일본 사회당을 수렁에 빠트린 납북자 이슈와 판박이처럼 닮았다. 수십 년간 북한은 한순간도 핵 개발을 멈춘 적이 없지만 민주당은 "북한엔 그럴 능력도 의지도 없다"며 현실을 부정해왔다. 결국 핵은 완성됐고 김정은이 '핵 보유국'을 선언하자 민주당의 북핵 옹호는 한낱 헛소리가 돼버렸다. 일본 사회당은 그나마 "속았다"고 변명이라도 했지만 민주당은 단 한마디 사과도 없이 여전히 미국 탓, 보수 정권 탓만 하고 있다. 현실을 거꾸로 읽은 나머지 끝없이 세상을 속여야 하는 자기 기만의 함정에 빠진 것이다.

    지난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는 이 시대를 이끄는 주류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보여 주었다. 중국·러시아·북한 같은 권위주의 체제의 폭주를 방치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 무대였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질서는 미국 중심의 자유 진영이 주도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발전 방향이기도 하다. 더 자유롭고 더 민주적이며 더 개방적인 세계로 나아가는 게 역사의 진보다. 윤석열 정부의 '가치 외교'는 그 흐름에 올라타겠다는 선언이었다.

    윤 대통령이 G7에 간 동안 민주당은 후쿠시마 공격에 화력을 집중했다. 오염수를 "우물에 푸는 독극물"에 비유하며 장외 집회까지 나가 맹공을 퍼부었다. 민주당의 공격은 그러나 '과학'으로 접근하는 글로벌 해법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국제 사회를 대표하는 IAEA(국제원자력기구)는 오염수 방류가 문제없다는 잠정적 판단을 내렸고, G7은 'IAEA의 검증을 존중한다'는 합의문을 내놓았다. 과학 아닌 괴담에 가까운 민주당식 시비는 국제 무대에서 억지로 비칠 수밖에 없다.

    민주당은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의 주류 연대에 합류하는 것을 방해하려 작심한 듯하다. 한미 동맹 강화를 "글로벌 호갱 외교"로 몰았고, 한일 협력 복원을 "빵 셔틀 굴욕"으로 공격했다. 북의 도발에 대응한 한미일 연합 훈련을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 하며 '자위대 군홧발' 운운했다.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 개입에 반대한다는 윤 대통령 발언이 "평지풍파를 일으켰다"며 중국 편을 들기도 했다.

    문재인 정권 5년간 우리는 글로벌 질서의 주류에서 비켜나 있었다. 중국을 "높은 산봉우리"로 떠받들며 '중국몽(夢)'을 찬양하고, 북한에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거짓말로 세계를 속이면서 친중·친북에 기울었다. 그렇게 나라를 변방으로 몰았던 민주당이 정권을 내준 뒤에도 역주행을 계속하며 국가 진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역사의 흐름을 거스르는 정당의 몰락은 필연적이다. 4차 산업혁명 앞에서 '국가 주도'를 외치는 당, 자유를 위해 싸우는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비하하는 당, 북한·중국의 인권 유린에 침묵하는 당, 해방 70년이 넘어서도 죽창가 타령하는 낡은 정당이 이 숨 가쁜 21세기의 한복판을 버텨낼 수는 없다. 위선과 내로남불, 끝없는 거짓말 습관 등 민주당이 비판받을 이유는 차고 넘치지만 그중에서도 시대에 역행하는 퇴행적 체질은 치명적이다.

    일본 사회당의 의석이 149석에서 한 자릿수로 쪼그라드는 데 정확히 10년 걸렸다. 민주당의 몰락도 그리 먼 훗날 일이 아닐 수 있다.
    기고자 : 박정훈 논설실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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