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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전술핵 벨라루스로… 'NPT'(핵확산금지조약) 흔들리나

    정지섭 기자 워싱턴=이민석 특파원

    발행일 : 2023.05.27 / 국제 A1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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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년 만에 재배치 착수… 우크라 전쟁發 핵 위협 현실화

    러시아가 군사 동맹국이자 옛 소련권 국가인 벨라루스에 전술핵무기를 배치하기 시작했다고 양국이 25일(현지 시각) 전격 발표했다. 구(舊)소련 국가인 벨라루스는 우크라이나와 1084㎞의 국경을 맞댄 접경국이면서 친러 국가다.

    최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전방위적 정상 외교로 미국 F-16 전투기의 우크라이나군 실전 배치가 결정되는 등 러시아가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핵무기 전진 배치'라는 극단적 대응 카드를 꺼낸 것이다. 이에 따라 우크라이나 전선의 긴장이 더욱 고조될 전망이다. 벨라루스에 핵무기가 다시 들어온 것은 27년 만이다.

    러시아를 방문 중인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에게 "두 나라 합의에 따라 전술핵을 벨라루스 영토로 배치하는 작업이 이미 시작됐다"고 말했다. 이날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과 빅토르 크레닌 벨라루스 국방장관은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에서 전술핵의 벨라루스 배치 합의문에 서명했다. 러시아는 지난 3월 전술핵을 벨라루스에 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지난달에는 벨라루스 공군 조종사들을 상대로 핵무기 장착·투하 훈련도 실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술핵은 제한된 지역의 목표를 공격하는 수십㏏(킬로톤) 이하 위력의 핵무기를 말한다. 군사적 표적을 제거하기 위한 국지전을 목적으로 만들어진다. 도시나 산업 시설, ICBM 기지 등 적 전쟁 수행 능력 자체를 파괴하는 수백㏏에서 Mt(메가톤)급 위력의 전략핵과 구분된다. 1㏏은 TNT 폭약 1000t, 1Mt은 TNT 폭약 100만t의 위력을 갖는다.

    벨라루스에 전술핵이 배치됨으로써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벨라루스와 국경을 맞댄 친우크라이나·친서방 진영의 라트비아·리투아니아·폴란드 등은 안보 위협을 떠안게 됐다. 특히 벨라루스와 678㎞의 국경선을 맞대고 있는 리투아니아에선 오는 7월 NATO(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기 때문에 이번 전술핵 배치는 서방 국가들을 집단으로 겨냥한 무력시위라는 분석도 나온다.

    벨라루스로 옮겨지는 러시아 전술핵의 구체적인 종류·수량 및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앞서 푸틴은 3월에 벨라루스 전술핵 배치 계획을 발표하면서 "벨라루스에 이스칸데르 미사일 여러 대를 배치했고, 핵무기 저장고도 7월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벨라루스의 전술핵은 실제 발사를 염두에 두기보다, 일단은 그 존재 자체로 서방을 압박하는 용도로 쓰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서방 진영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고 외신들은 분석했다. 로이터는 "미국 보유 전술핵탄두는 유럽에 배치된 100기를 포함해 200기에 불과한 반면, 러시아는 2000기의 전술핵탄두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며 "전술핵과 관련해 러시아는 나토 진영에 수적인 우세를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은 "전술핵은 제한된 영역에 쓰이지만, 전쟁 전체의 방향을 바꿀 만한 능력은 충분하다"고 했다.

    1991년 12월 소련 붕괴 당시 벨라루스는 81기의 탄도미사일과 1000여 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강력한 비핵화 노선을 추구하며 1996년 이를 모두 조건 없이 러시아에 반환했다. 1994년 집권한 루카셴코는 30년째 장기 집권해 오면서 최근 몇 년 새 푸틴 정권과 급속히 밀착했다. 벨라루스는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유일한 나라다.

    러시아 핵무기의 벨라루스 배치로 미국과 러시아 사이의 군사적 긴장감도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25일 브리핑에서 러시아 전술핵의 벨라루스 배치와 관련해 "무책임한 행동이다. 합의를 강력히 규탄한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생화학이나 핵무기를 사용하면 심각한 결과가 뒤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양국 간 군사적 긴장감이 고조될 경우 과거 냉전시대를 방불케 하는 핵 증강 시대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과 러시아 간 체결돼 있는 유일한 양자 간 핵통제 협정인 '신전략무기 감축 협정'(뉴스타트·New START)은 2026년 2월 종료 예정이다. 푸틴은 지난 2월 핵실험 재개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뉴스타트 참여 중단을 이미 선언했다. 뉴스타트 연장이 무산될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이 흔들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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