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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그래도 해류는 돈다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발행일 : 2023.05.26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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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이 지구의 둘레를 도는 것이 아니라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갈릴레이. 그런 그에게 키 작은 사제가 찾아왔다. 콧방귀를 뀌는 갈릴레이에게 키 작은 사제는 말한다. "저는 캄파냐에 있는 농부의 아들로 자라났지요. 그곳 농부들은 소박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올리브 나무에 관해선 모르는 게 없지만 그 밖에는 정말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키 작은 사제는 말한다. 난롯가에 앉아 치즈 조각을 먹는 농부들, 쭈글쭈글해진 굽은 손으로 장작을 패고 밭일을 하는 그들에게,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는 단순한 학설 대립이 아니다. 그 힘겹고 고단한 삶에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다. 갈릴레이의 지동설은 민중에게 힘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삶의 의미와 희망을 빼앗아갈 것이다.

    "만약 제가, 그들이 서 있는 곳은 허공에서 다른 별 주위를 끊임없이 돌고 있는 한낱 작은 돌덩어리 위라고, 수많은 별들 중의 하나, 실로 아무것도 아닌 별 위라고 말한다면, 제 가족들은 뭐라고 할까요? 이제 와서 궁핍 속에서의 그 엄청난 인내와 화해가 뭣 때문에 필요하고 유용하겠습니까?"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 그는 대표작 중 하나인 〈갈릴레이의 생애〉를 통해 지식인의 역할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졌다. 지식인은 노동하지 않는다. 생산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대신 지적 활동에 매진하며, 그렇게 알게 된 진실을 대중에게 전파하는 것으로 세상에서의 쓰임을 다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지식인들의 철석같은 자기 확신과 달리 정작 '민중'들은 진실을 원치 않는다면? 과학에 기반을 둔 삭막하고 냉정한 사실 대신 그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스토리텔링'만을 원하고 있다면 어찌해야 할까? 민중을 일깨우는 것은 지식인의 사명이다. 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민중에게 더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면, 때로는 진실을 말하지 않는 편이 낫지 않을까?

    오늘날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돌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심지어 교황청마저도 1633년의 갈릴레이 재판에 대해 사과와 반성의 뜻을 밝힌 지 오래다. 하지만 브레히트가 극적으로 형상화한 대립 구도는 여전하다. 엄연한 과학적 사실을 감추거나 말하지 않는 사람들, 대중에게 올바른 정보를 전달하는 대신 대중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떠들어대는 것이 더 옳은 일이라고 믿는 '키 작은 사제'들이, 버젓이 지식인 행세를 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논란을 떠올려 보자. 후쿠시마는 매년 22테라베크렐(22Tbq)의 삼중수소를 태평양에 방출할 예정이다. 무시무시하게 들리지만 실상은 싱겁다 못해 허탈할 정도다. 방사능도 자연의 일부다. 매년 대기권 속에는 5만에서 7만Tbq의 삼중수소가 생성되고 있다. 태평양에는 이미 활동량 300만Tbq의 삼중수소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는 캐나다와 미국을 먼저 향한 후 태평양 연안을 한 바퀴 돌아 후쿠시마로 돌아오게 되며, 그나마도 다른 해류의 영향으로 우리 바다에는 거의 오지 못한다. 한편 2018년 기준으로 고리원전은 매년 동해에 50Tbq의 삼중수소를 방출해 왔지만 우리의 바다는 '방사능 범벅'이 되지 않았다. 자연 스스로 만들어내는 방사능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도는 것만큼이나 이론의 여지가 없는 과학적 사실이다.

    물론 대중의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지금도 세상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여전히 천동설을 고수하는 이들도 없지 않을 것이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를 감안해도 원자력은 가장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이다. 이러한 과학적 사실을 대중이 상식으로 받아들이려면 더 많은 세월과 계몽이 필요할 것이다.

    문제는 저 '키 작은 사제'들이다. 교황의 권위를 등에 업고 민중에게 지옥을 들먹이며 겁을 주고 십일조를 걷으며 면벌부를 팔아먹던 사제들처럼, 그들은 반핵운동의 외피를 둘러쓰고는 반일과 반미를 선동하고 있다. 바닷물로 희석하는 원전 오염수를 두고 '먹어도 되냐'는 말초적 우격다짐만을 되풀이한다.

    브레히트를 존경하며 갈릴레이를 따른다는 그 수많은 진보 지식인과 과학자들은 입을 다물었다. 민주당의 정치 공세를 거들고 다니지나 않으면 고마울 지경이다. 그들이 뭐라고 하건, 진실은 분명하다. 그래도 해류는 돈다.
    기고자 : 노정태 경제사회연구원 전문위원·철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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