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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주의 이 사람의 길]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 별세

    박은주 부국장 겸 에디터

    발행일 : 2023.05.26 / 사람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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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돌아보지 않는다" 맹렬하게 산 '사자머리 티나'

    '나는 돈 받고 춤추는 프라이빗 댄서. 원하는 건 다 해드려요(I'm your private dancer, a dancer for money…)". 1984년 '사자머리' 티나 터너의 팝송 '프라이빗 댄서'의 열풍이 시작됐다. 2년 전 여름, 서울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실비아 크리스털 주연의 영화 '개인 교수'와 겹쳐지며 묘한 상상을 일으킨 탓이다. 하지만 노래의 진심은 다른 구절에 있었다. '남자란 다 똑같아. 그들 얼굴도, 이름도 관심 두지 마.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마. 그냥 돈만 생각해.' 노래는 '사자의 유혹'이 아니라 '사자의 울음'이었다.

    '로큰롤의 여왕' 티나 터너(84)가 암 투병 끝에 스위스 취리히 근처 퀴스나흐트의 호숫가 자택에서 24일(현지 시각) 사망했다.

    1939년 미국 테네시주 브라운스빌에서 '애나 메이 불럭'으로 태어난 그녀는 1957년 18세 때, 기타리스트 아이크 터너(1931~2007)를 만나 새 운명을 만들었다. 밴드 리더였던 아이크는 소녀의 재능을 알아보고, 만화 '정글의 여왕' 주인공 '시나'를 변형해 '티나'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화려한 스타일의 '티나 터너'는 아이크 터너의 '작품'이었다.

    두 사람은 1962년 결혼식을 올렸고, 아이를 키우고, 1978년 이혼했다. 1960년 밴드 이름을 '아이크&티나 터너'로 바꾼 후 히트곡('A Fool in Love', 리메이크곡 'Proud Mary')을 연달아 내면서 '꿈의 커플'이 됐던 그들.

    그들 이혼은 '성격 차이' 같은 흔한 이유가 아니었다. 1981년 티나 터너는 피플지 인터뷰에서 폭로했다. "그가 미친 듯이 두려웠다" "임신 중 구두 늘리는 기계로 맞았다" "펄펄 끓는 커피를 던졌다" "입에 피를 머금고 노래했다" 1968년 자살 시도, 1976년 돈 36센트와 주유 카드만 들고 가출한 사연, 놀랄 만한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하층민 문제라 여겼던 가정 폭력이 스타 가정에서도 일어난다는 것에 대중이 경악했다. 아이크는 생전에 자신이 과도하게 악마화됐다고 억울해했다.

    이혼 후 그녀는 '끝물 가수'들이 가는 라스베이거스 호텔 공연 무대에 섰다. 음반사들은 '가정사' 시끄러운 여가수를 꺼렸다. 그녀의 재기를 도운 건 믹 재거, 데이비드 보위 같은 영국 가수들이었다. 1984년 5월 앨범 '프라이빗 댄서'를 들고 컴백했을 때, 사자머리(주로 가발을 썼다)는 더 풍성해졌고, 치마는 짧아졌다. '프라이빗 댄서'는 마크 노플러(밴드 '다이어 스트레이츠' 리더)가 작곡·작사하고, 제프 벡이 기타를 쳤다. 수록곡 제목은 세상을 향한 그녀의 독백. '사랑은 관심 없어' '존중 좀 하지' '나한테 잘하는 게 좋을 텐데'.

    '퇴물'이라 여겼던 45세 여가수의 컴백은 신화가 됐다. 잡지 롤링스톤이 '80년대 가장 호쾌한 컴백 앨범'으로 꼽은 이 앨범으로 '올해의 레코드' 등 그래미상을 3개 받았다. 전남편과의 시절까지 합치면 그래미 12회 수상, 음반 판매량은 2억장 가깝다.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1991년 전남편과 함께, 2021년 단독으로 이름을 올렸다. '매드맥스2' '007골든아이'에도 그의 노래가 나온다. 거칠면서도 야성적인 음색, 무대 장악력은 '티나 터너'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그녀는 1985년 공항에 마중 나온 독일 음반업계 종사자인 16세 연하 에르빈 바흐와 연인이 됐고 2013년 결혼했다. 미국 국적을 버리고, 스위스인이 되어 정착했다. "가수로서 성공은 그 나라에서 이룬 것, 내 인생은 여기 있다"고 했다. 그녀의 극적 삶은 영화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다큐멘터리 '티나', 뮤지컬 '티나- 더 티나 터너 뮤지컬' 등에서 볼 수 있다.

    이런 말을 남겼다. "나는 죽음의 삶을 살았다. 하지만 살아남았다. 박차고 나와야 할 때 나왔고, 그때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두 아들을 먼저 보냈고, 맹렬히 살고 맹렬히 노래한 암사자.

    노년은 평화로웠다. 스위스 그녀 집 앞에 이런 안내문이 붙어있다. "정오 이전에는 벨을 누르거나 배달하지 말아 주세요."
    기고자 : 박은주 부국장 겸 에디터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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