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선박 수주에 목매지 않고… 해상 풍력발전 설비 새 일감 발굴

지난 23일 오후 경남 통영의 HSG성동조선(옛 성동조선해양) 2공장. 임직원 50여 명, 덴마크의 글로벌 재생에너지기업 오스테드 관계자, 주한 덴마크 대사관 부대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스틸커팅(Steel Cutting·강재절단)' 행사가 열렸다. 스틸커팅은 본격적인 하부구조물 제작에 돌입한다고 알리는 행사인데, HSG성동조선의 스틸커팅은 8년 전 2015년 유조선 건조 때가 마지막이었다. HSG성동조선은 한때 글로벌 10위권 수주량을 기록할 만큼 탄탄한 중견 조선사였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시작된 글로벌 조선업 불황 여파로 선박 수주 절벽에 부닥쳤고 다른 중·소형 조선사처럼 부도 위기에 처했다. 결국 2016년엔 700t짜리 대형 골리앗 크레인을 고철 값에 외국 기업에 팔았다. 한때 세계 최강이었던 스웨덴 말뫼의 조선소가 2002년 초대형 크레인을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면서 붙여진 '말뫼의 눈물'이 HSG성동조선에 재현되면서 '마산의 눈물'로 불렸다. HSG성동조선은 한국 조선업 몰락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그렇게 선박 수리사업 등으로 근근이 버티던 HSG성동조선은 이달 중순 오스테드와 수천억원대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공급 계약을 따내며 부활을 알렸다. 중형 조선사로서 불확실한 선박 수주에만 매달리지 않고, 선박 건조 노하우를 풍력 설비 제작에 접목한 결과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직원들은 "파산 위기에 놓였던 5년 전을 생각하면 믿기지 않는 결과"라고 했다.

◇선박 건조 노하우 살려 새 일감 따내

HSG성동조선 같은 국내 중형 조선사들이 구조조정을 마무리하고 체질 개선과 선박 건조 노하우를 살려 새 일감을 따내며 활기를 찾고 있다. 이날 방문한 HSG성동조선의 약 120만㎡(약 36만평) 대형 야드에선 빅3 조선사(HD현대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에 납품하는 선박 '블록(조립 형태 부품)'과 설비 제작이 한창이었다. 빅3 조선사의 수주 호황이 '낙수 효과'로 이어진 것인데, 회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새 먹거리' 발굴로 무게 추를 옮기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 수요 증가에 따라 급성장한 해상풍력에서 발전기의 하부구조물에 주목했다. 높이 100여m, 무게 2000t에 달하는 하부구조물 제작은 선박 건조와 비슷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골리앗 크레인, 넓은 야드 등 기존 생산 설비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었다. 이진상 HSG성동조선 대표는 "하부구조물 제작은 중량물 건조 경험과 대형 설비가 필수적인데 회사는 두 가지 기술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며 "축적해온 선박, 해양플랜트 제작 경험을 바탕으로 대만, 일본 시장에 공급 확대를 논의 중"이라고 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빅3를 제외한 중형 조선사들의 수주량은 29만1905CGT(선박 건조 난이도를 고려해 환산한 톤수)로, 작년(12만6318CGT) 같은 기간과 비교했을 때 131% 늘었다. 올해부터 IMO(국제해사기구)의 환경 규제가 확대 적용되면서 노후 선박 교체 수요가 늘면서 실적도 증가했고, 케이조선 등은 작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고철 값에 크레인 넘긴 아픔 불황 딛고 재도약

한국 조선은 최근엔 불황이 길어지는 반도체를 대신해 수출 효자 역할도 하고 있다. 빅3 조선사는 3~4년 치 일감을 채웠다.

최근 국내 조선사는 경쟁 우위를 지닌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건조 기술과 친환경 규제가 맞물려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작년 대형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컨테이너선, 초대형 원유 운반선 등 고부가가치 선박 전 세계 발주량(2079만CGT·270척) 중 58%에 해당하는 1198만CGT(149척)를 따냈고, 올해도 LNG선 수주를 사실상 싹쓸이하고 있다.

‘주인 없는 회사’로 저가 수주 관행을 지적받았던 대우조선해양이 지난 23일 한화오션으로 새로 출범하고, 수주 협상이 진행 중인 12조원 규모의 카타르 2차 LNG 프로젝트도 호재다. 차세대 친환경 선박으로 꼽히는 메탄올 추진선 분야에서도 국내 조선소가 글로벌 발주 물량의 50% 이상을 수주하는 등 기술력에서 앞서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대규모 계약을 따내도 저가 수주 경쟁 탓에 선박을 만들어도 손해만 났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고부가가치 선박 위주로 선별 수주를 하고 있어 체질도 개선됐다”고 했다.

[그래픽] 수출 효자로 다시 등극한 K조선 기고자 : 통영=이정구 기자
본문자수 : 2221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