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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의 그레이트 게임과 한반도] (3) 소프트 파워의 힘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발행일 : 2023.05.25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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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몽골 연대를 깨트린 건 군사력이 아니라 성리학이었다

    몽골 제국의 칸은 그의 후예들이 황궁 안에 안주하기보다 새로운 공간으로 나가기를 바랐다. 위대한 제국의 명분과 함께 정복지도 나누어 주었다. 제국은 4개의 울루스(국가)로 분양되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 지역의 주치 울루스, 스탄 계열 국가들과 신장 위구르 지역에 걸친 차가타이 울루스, 이란과 이라크 지역을 통치한 훌레구 울루스, 그리고 예케 유안 울루스, 즉 대원(大元) 몽골이다.

    몽골 기병들은 1일 최고 134㎞의 속도로 제국을 건설했지만 제국 경영에 필요한 소프트 파워는 부족했다. 1271년 대원 몽골을 선포한 쿠빌라이(재위 1260~94)는 티베트 출신의 라마 불교승 파스파를 통해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현재의 우크라이나 및 러시아 지역에서 살아남은 기독교 동방정교는 훗날 소련공산당의 말살 정책도 이겨낸다.

    대원 몽골에서는 1279년 44년 전쟁 끝에 항복한 남송의 유교 성리학이 퍼져나갔다. 송학(宋學)이라고도 불렸던 유교 성리학은 북송(北宋) 시절 불교 국가 요(거란)와의 전쟁 속에서 탄생했다. 인(仁)을 강조하는 공맹(孔孟)의 윤리적 가르침에 더해서 새로운 인식론(認識論)을 포함한 종교적 체계를 갖추었다. 리(理)에 기초해서 체계화된 예(禮)를 어기는 것은 성현의 가르침을 위배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우주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이 되었다. 불교적 인식 체계에 기초했던 요나라와 유교 성리학적 인식 체계를 갖춘 북송의 대결은 무승부로 끝났다. 요와 북송 모두 제3국, 즉 금나라에 정복당한 것이다.

    1368년 한인 탁발승 출신의 주원장(朱元璋·1328~98)은 대원 몽골을 북쪽으로 밀어내고 명나라를 건국하면서 유교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대원 몽골에 이어 1368년 이후의 북원(北元) 몽골도 오랑캐의 나라, 즉 호원(胡元)으로 규정되었다. 하드 파워는 강했지만, 소프트 파워는 부족했던 몽골제국은 안에서부터 무너졌다. 국가의 외골격에 골몰했던 고전 지정학과 달리 국가를 구성하는 인간들의 인식에 신지정학이 더 주목하는 이유이다.

    여·몽 국제연대를 밀어낸 조·명 국제연대

    주원장이 명을 건국하기 12년 전인 1356년 고려 공민왕(재위 1351~74)의 정변은 몽골제국에 작지만 큰 충격을 주었다. 바얀테무르라고 불렸던 공민왕은 10대 시절 몽골 황궁에서 대칸을 호위했고, 선왕들처럼 몽골 공주와 결혼했다. 그런 공민왕이 1356년 기철, 권겸 등 고려의 몽골 황족들을 제거하고, 정동행성 이문소를 폐지하는 한편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북방 영토를 회복한 것이다. 이때 쌍성총관부에 있던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울루스부카)이 고려로 귀순했다.

    몽골제국은 공민왕의 정변을 묵인했다. 부마국 고려가 몽골제국을 흔들던 홍건적과 왜구에 맞서주기를 바랐다. 1361년 겨울 공민왕이 고려 태조 왕건이 명명한 안동(安東)으로 피신한 것은 몽골제국의 응징 때문이 아니라 홍건적의 침략 때문이었다. 동고동락했던 몽골 출신 왕비 노국공주가 죽기 전까지 공민왕 역시 대원 몽골의 황족이었다.

    여·몽 간의 인식적 연대를 무너뜨린 것은 국경을 넘어 확산된 유교 성리학이었다. 1289년(충렬왕 15년) 안향에 의해 전래된 유교 성리학은 백이정, 이제현 등을 통해 발전했다. 공민왕은 성균관을 중건하고, 이색(李穡) 등을 발탁했다. 이색은 몽골제국의 제과(制科)에 급제했던 인물이었다.

    1374년 노국공주를 잃은 후 주색에 빠져 있던 공민왕은 측근들에게 피살당했다. 몽골의 북원과 한인의 남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외교를 계속하던 고려는 고구려의 유토였던 요동(遼東)을 놓고 명나라와 충돌했다. 1388년 우왕과 최영의 출병에 반대했던 이성계는 압록강 근처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정권을 장악했다. 1392년 왕위에 오른 이성계는 새로운 나라 이름으로 고려, 화령(和寧), 조선 사이에서 고민했다. 1년 후인 1393년 명나라가 택정(擇定)한 조선으로 국호가 정해졌다.

    명과 마찬가지로 조선은 유교 성리학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유교 성리학자였던 정몽주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에는 찬성했다. 그러나 그는 이성계가 왕이 되는 것까지 찬성하지는 않았다. 유교 성리학의 사상적 뒷받침이 필요했던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은 정몽주를 암살했다. 이방원은 왕위에 오른 후 건국을 도왔던 정도전을 죽이고, 죽은 정몽주를 복권했다. 건국 이후에는 정몽주와 같은 유교 성리학자들의 충성스러운 인식이 필요했다.

    '소프트 파워' 지도에 남은 제국의 인식

    북원 몽골과 계속 전쟁 중이던 명나라와 조공 책봉 관계를 맺은 조선에서 몽골제국은 신속히 부정되어야 했다. 조·명 연합의 유교적 지각판이 여·몽 연합의 불교적 지각판을 밀어냈다. 그러나 동서 문명의 용광로였던 몽골제국이 남긴 인식의 흔적을 모두 지울 수는 없었다.

    1402년(태종 2년)에 편찬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에는 몽골제국의 인식이 남아 있다. 이 지도는 조선 중후기에 유행한 '천하도'에 비해 훨씬 현실에 가깝다. 그러나 직접 탐사하여 만든 지도는 아니었다. 이택민(李澤民)의 '성교광피도(聲敎廣被圖)'와 불교 승려 청준(淸濬)의 '혼일강리도(混一疆理圖)'를 합성하고, 조선과 일본의 지도들을 덧붙인 것이었다. 지도가 최고급 국가 기밀이던 시절에 지리 정보의 교류는 몽골제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기원후 약 150년경 로마제국의 프톨레마이오스(Claudios Ptolemaeos)도 위도가 표시된 지도를 남겼다. 이슬람 문명은 이 지도를 수입하여 발전시켰다. 몽골제국에서 색목인(色目人)이라고 불렸던 페르시아(이란) 천문학자 자말 알딘은 이슬람 문명권의 지도를 입수했다. 이 지도는 대원 몽골이 편찬한 '경세대전(經世大典)'에 남아 있다.

    비전(?傳)된 몽골제국의 지도와 달리 프톨레마이오스의 지도는 구텐베르그의 금속 활판 인쇄술을 통해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손에 들어갔다. 그들 중 한 명이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포르투갈로 이주했던 크리스토퍼 콜럼버스(1451~1506)였다.

    대서양이 지도 위에 추가되었고, 유라시아대륙보다 넓은 태평양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새로운 인식을 기초로 항해하는 '배의 제국'이 유라시아대륙을 질주하던 '말의 제국'을 능가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세계지도들이 급속히 발전했고, 그 지도를 놓고 계산하는 그레이트 게이머들이 늘어났다. 그들의 새로운 인식은 경제적 번영과 함께 새로운 전쟁을 촉발시켰다.

    [조선서 왕자의 난 벌어질때… '항해 왕자' 엔히크(포르투갈)는 지도 만들며 새로운 세계로 나가]

    15세기 초 이성계의 5남 이방원은 두 차례의 왕자의 난을 통해 조선의 세 번째 왕이 되었다. 포르투갈에서는 주앙 1세의 3남 엔히크(Infante Dom Henrique·1394~1460·사진)가 왕에 즉위한 둘째 형 두아르트와 함께 새로운 지도들을 만들었다. 그리스도 기사단의 단장이기도 했던 엔히크는 인력과 자원을 투입하여 새로운 세계를 인식했다.

    엔히크는 포르투갈 서남단에 있는 암석지대 사그르스 곶(Ponta de Sagres)에 지성의 성채를 만들었다. 토목기사, 탐험가, 지리학자, 수학자, 천문학자, 세공업자, 어부, 선원 등이 이 성채에서 새로운 지리 정보를 교환하고, 새로운 항해를 실험했다. 항해와 탐사 이후 지도 위의 선들이 한 땀 한 땀 새롭게 그려졌다.

    하드 파워 대신 소프트 파워를 추구했던 엔히크의 인식은 포르투갈과 스페인을 포함한 이베리아 해양 제국의 초석이 되었다.

    그의 모습은 현재 리스본에 있는 발견 기념비 군상의 첫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엔히크 조각상 뒤에 새겨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바스쿠 다 가마, 페르디난드 마젤란, 그리고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등을 통해 이베리아제국은 유라시아대륙의 반대편을 향해 항진(航進)했다. 그것은 전쟁과 평화를 모두 싣고 있었다.
    기고자 :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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