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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직함만 5개'… 황태자 이태현의 씨름 인생 2판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발행일 : 2023.05.25 / 스포츠 A2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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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씨름판 '아이돌'급 스타

    2000년대 초반까지 '모래판의 황태자'로 불리며 국내 씨름판을 호령했던 이태현(47·용인대 무도스포츠학과 교수)은 요즘 모래판을 바라보는 게 즐겁다. 한때 국민 스포츠로 인기를 누렸던 씨름은 긴 침체기를 보내다 최근 과거 영화를 재현할 조짐이다. 무엇보다 젊어진 팬들, 특히 여성 팬이 많아졌다. 이태현은 "얼마 전만 해도 만나면 '씨름 힘들지?'라던 분들이 요즘엔 '씨름 잘 봤다'라고 하신다"고 말했다.

    ◇씨름이 세계 호령하는 그날까지

    이태현은 2011년 모래판에서 내려온 뒤 모교 용인대에서 후배 양성에 힘쓰면서 대한씨름협회 이사·용인대 씨름부 감독·TV 해설위원·인류무형문화유산 씨름진흥원 이사장까지 맡고 있다. 명함에 직함이 5개다.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라면서도 "그만큼 씨름 쪽에서 할 일이 많아졌다는 얘기 아닌가"라며 즐거워했다.

    씨름진흥원은 씨름의 원형 보존 및 전승, 그리고 세계화 사업을 추진하는 곳이다. 씨름은 2018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인터넷의 발달, 익스트림 스포츠 인기 급상승 등 스포츠 안팎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씨름은 아직도 '우리 민속 씨름 보러 오세요'란 말만 되풀이해요. 그러니 사람들로부터 '그래서 어쩌라고?' 소리만 듣고 외면당하는 거죠. 5~10년 후 성인이 될 젊은 층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끊임없이 변화를 줘야 합니다." 한때 외면받던 씨름은 남자 선수들을 소재로 한 한 케이블 채널 프로그램이 뒤늦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소문을 타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태현은 다른 선후배들과 함께 '씨름 신상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태권도처럼 씨름 각 기술 동작을 응용한 품새를 개발해 씨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만들고, 박진감을 잃지 않을 수 있게 경기 방식을 개선하는 방법 등이 논의 과제다. 국내 거주 외국인들이 참여하는 씨름 방송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옛날 조상들 씨름이 어땠는지도 샅샅이 살펴보고 있어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전 세계적으로 커졌기 때문에 씨름도 '한류'가 될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씨름을 통해 희로애락 다 겪어

    이태현은 모래판에 구름 관중이 몰리던 1980년대 초, 이만기, 이봉걸, 이준희 등 당대 최고 장사들을 보고 샅바를 잡았다. 경북 의성고 3학년 때 7관왕에 오르면서 주목받았고, 고교 졸업 후 1994년 청구건설에 입단, 그해 바로 천하장사가 됐다. 당시 최강이던 백승일과 1시간 반 승부 끝에 계체량으로 꽃가마를 탔다. 그는 "다른 경기는 가물가물한데, 그 경기는 당시 겪었던 고통까지 그대로 몸에 남아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태현은 통산 497승을 올렸다. 천하장사에 3차례 등극했고, 백두장사에 20번 올랐다. 백두장사 20승은 지금껏 깨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만기·강호동에 이어 인기를 한몸에 받던 1990년대 후반, IMF 사태가 터지면서 씨름판이 무너졌다. 실업팀들이 잇달아 해체됐고, 내부 파벌 싸움까지 극심했다. 이태현은 2006년 모래판에서 내려와 이종격투기에 도전했다.

    "씨름 그만두고 일본에 초청받아 프라이드 대회를 보러 갔는데, 국내 씨름판에서 사라져버린 수많은 관중, 화려한 조명, 그리고 매스컴 관심이 다 있는 거예요. 순간 내가 설 곳은 저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 도전은 1승 2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끝났다. 힘은 타고났지만, 경험과 싸움 기술이 모자랐다.

    "이종격투기 했던 그때 3년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어요. 첫 경기 졌을 때는 한 달 동안 대인 기피증에 시달려 집 밖으로 나갈 엄두도 못 냈어요."

    이태현은 자존심 때문에 이종격투기에 재도전하려다 아내 이윤정씨 만류에 중단하고 2009년 1월 모래판에 복귀했다. 2010년 설날장사에 이어 두 차례 백두장사 우승을 추가한 뒤 2011년 고향 경북 김천에서 은퇴식을 가지고 학교 강단에 섰다. 2006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일단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놓는 게 목표입니다. 그리고 후배들을 길러내는 것도 주요 역할입니다. 씨름 발전이라는 게 어느 한 세대에 이룰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몇 년 전만 해도 신체 조건 좋은 초등학생 영입 경쟁에 씨름은 명함도 못 내밀었는데, 요즘은 달라요. 인지도나 관심이 높아진 걸 느낍니다."
    기고자 :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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