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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이 10번 부수면, 우리는 10번 복구"… 키이우에 '재건의 싹'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발행일 : 2023.05.25 / 종합 A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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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습에도… 일상 지켜내는 우크라

    "공포에 질려 방공호에 숨어 사는 (우리) 모습이 푸틴이 원하는 겁니다. 절대 그렇겐 못 해요."

    지난 16일(현지 시각), 6개월 만에 다시 찾은 키이우의 삼성전자 건물은 복구 준비가 한창이었다. 지난해 10월 폭격으로 파괴돼 흉하게 드러났던 건물 왼쪽 부분은 가림막이 설치됐고, 인부들이 조금씩 잔해를 치우고 있었다. 현장 책임자 코피로우(40)씨에게 "(러시아의) 공습이 계속되는데 복구 작업이 의미가 있느냐"고 묻자, 격앙된 목소리의 대답이 돌아왔다. "러시아가 (폭격으로) 10번을 부수면, 우리는 10번 다시 복구할 겁니다.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1년 3개월째 이어지는 공습에 키이우에선 멀쩡한 길 하나 찾기가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시민들은 다시 무너질지 모르는 길과 건물을 다시 고치고 세우느라 분주했다. 연일 공습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키이우 시내 곳곳엔 재건(再建)의 의지가 엿보였다. 지난겨울을 강타한 에너지난이 풀리면서, 암흑 천지였던 키이우 밤거리엔 다시 신호등과 가로등이 켜졌다. 수퍼마켓에도 조금씩 물건이 들어오고, 맥도널드도 1년여 만에 다시 문을 열고 손님을 맞기 시작했다. 운 좋게 공습이 없는 밤이 지나면, 아이들을 데리고 공원을 찾는 어머니들과 노부부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하지만 전기와 수도, 도로 등 사회 기반 시설이 파괴되면서 곳곳이 문제투성이다. 폭격 맞은 도로를 보수하느라 시내는 온통 공사판처럼 변했다. 수돗물에선 누르스름한 색깔이 났고, 퀴퀴한 냄새도 풍겼다. 호텔 직원 미키타(33)씨는 "샤워나 빨래 정도엔 지장이 없지만, 식수로 쓰긴 어렵다"며 "끓인 뒤 정수기로 거르거나, 생수를 사 먹는 게 보통"이라고 했다.

    물가도 크게 올랐다. 우크라이나 화폐 흐리우냐의 가치가 30% 정도 떨어진 데다 흑해 무역로가 막히면서 수입품 가격이 급등했고, 각종 생필품의 우크라이나 국내 생산마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수퍼마켓에서 만난 야로슬라우씨는 "그나마 기본 생필품은 정부 정책으로 가격이 억제되어 있지만, 그 외 일부 공산품이나 서비스 요금은 20~50% 오른 것 같다"고 했다.

    흐레샤티크 거리에서 전사자 가족들을 위한 모금 활동을 하던 비탈리(29)씨는 "우리 우크라이나인들에게는 폭격보다 자유를 뺏기는 것이 더 무섭다"면서 "우리가 비록 폭격 속에 있지만 모스크바의 러시아인들보다 멀쩡한 삶을 사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해외 각국의 지원 손길도 줄을 잇고 있다. 외국인의 발길이 뚝 끊긴 와중에도, 키이우 국립대 근처의 한 특급 호텔에는 미국과 일본, 독일 손님들이 붐비고 있었다. 모두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참여에 적극적 행보를 보이는 국가다.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배지를 단 한 일본인 숙박객에게 "어떤 일로 오셨느냐"고 묻자 "여러 가지 회의가 있어서"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의 해외 협력 사업을 담당한 한 고위 인사는 "전쟁 피해 복구를 위한 협의 창구가 열리고 있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최근 5000여 개에 달하는 전후 재건 사업 프로젝트를 지역별, 정부 부처별로 정리해 '므리야(꿈)'란 이름의 데이터베이스(DB)로 만들었다. 이 DB는 6월 21일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우크라이나 재건 회의'에서 한국 등 주요 국가에 공개, 이들 정부와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약 9000억~1조달러(약 1185조~1317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참여 중인 블라드렌 레우추크 소크라트(SOKRAT) 투자그룹 대표는 "한국의 재건 사례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며 "우크라이나 땅에서 한강의 기적을 재연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기고자 : 키이우(우크라이나)=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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