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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진보를 갈망한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발행일 : 2023.05.24 / 여론/독자 A3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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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진보가 통째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진보 진영의 정당은 물론 노조, 시민 단체, 종교 단체가 모두 심각한 위기다. 더불어민주당은 목하 검은돈의 광풍에 휩싸였다. 입법 폭주는 국가 근간을 흔들고 있다. 민노총 전직 간부 4명은 김정은 총회장님의 영업1부 노릇을 하는 간첩이었다. "시민의 힘으로 세상을 바꾸자"는 참여연대는 조국 사태에 침묵했다. 이를 비판한 김경률 회계사는 징계위에 회부됐다. 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전용기가 추락하기를 기도했다. 모두 진보의 도덕적 정체성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사례다.

    이런 위기가 뚜렷이 가시화된 계기는 조국 사태였다. "조국은 내로남불의 상징이다. 진보 이미지는 오염될 대로 오염돼 버렸다" "평등 가치를 실현하기는커녕 불평등에 안주하거나 심화하는 데 일조하는 그런 진보"가 되었다(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하지만 진정한 위기의 징표는 이재명 대표다. 그는 사실 진보라기보다 생계형 정치가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둘러싼 혐의는 상상 이상이다. 염치도 없다. 대선 패배 후 자숙 기간도 없이 곧바로 보궐선거, 당대표 선거에 나섰다. 결국 민주당은 방탄 국회의 볼모로 잡혔다. 그런데도 민주당은 77.8%라는 압도적 지지로 그를 당대표에 선출했다. 자멸의 길이지만, 의원들은 공천권 압력에 굴복한 것이다. 당내의 진보 역량이 완전히 고갈되었다는 방증이다.

    진보가 왜 이렇게 깊이 부패했나. 바뀌어야 할 때 바뀌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세 차례 기회가 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을 때, 2008년 노무현 정부가 실패로 끝났을 때, 그리고 2022년 20대 대선에 패배했을 때이다. 첫 번째는 이념, 두세 번째는 통치 능력이 문제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자 진보 이념이 뿌리째 흔들렸다. 1980년대 이후 진보 세력의 이념은 마르크스주의와 주체사상이었다. 그런데 마르크스주의가 인류의 재난임이 드러났다. 당황한 좌파는 진정한 마르크스주의는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마르크스주의 성공 사례는 여전히 없다. 1987년 민주화, 1988년 서울올림픽, 1989년 탈냉전은 좌파 이념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지만, 한국 진보는 바뀌지 않았다.

    1997년 외환 위기가 진보 세력을 되살렸다. 대한민국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집권한 DJ는 진보 운동권을 대거 영입했다. 외환 위기와 세계화로 불평등이 확대되자 진보의 가치도 부활했다. 노무현 정부 때 진보 운동권은 최초로 국가를 장악했다. 그러나 국정 운영에 실패해 폐족으로 떨어졌다. 이때가 두 번째 변화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 대신 광우병 파동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의 자살로 진보는 극적으로 부활했다. 그리고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성공함으로써 재집권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역시 국정 운영에 실패해, 5년 만에 정권을 잃었다. 이때가 세 번째 변화의 기회였다.

    그런데 진보의 진정한 실패는 대한민국이 계속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대한민국은 태어나서는 안 되는 나라라는 게 진보의 기본 인식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선 시대 때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 세력이 일제 때 친일 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쓴 독재 세력이 되었다"고 본다('대한민국이 묻는다'). 대한민국은 노론, 친일파, 반공 독재 세력의 귀태에서 잉태된 나라다. "그래서 제가 지금 '대청소'를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적폐 사관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곧 G8이 될 성공한 나라다. 요컨대 진보의 인식이 틀렸다. 하지만 진보 세력은 그들의 '이론'은 무오류이며, 논리적·도덕적으로 완벽하다고 확신한다. '현실'이 틀린 것이다. 바뀌어야 할 것은 현실이지 이론이 아니다.

    이렇게 도착된 인식은 두 개의 악덕, 즉 무능과 위선을 낳는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국정 운영에 거듭 실패한 것도 다 이유가 있다. 한편 실패를 부인하고 정당화하려니, 위선이 불가피하다. 통계 수치 조작, 유체 이탈 화법, 쇼 중독은 위선의 다양한 형태다. 그러나 정신 깊은 곳조차 속일 수 없다. 그 정신적 어둠이 도덕적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것이다. 진보도 자신의 위선에 지쳤다. 그래서 "진보는 돈 벌면 안 되냐" "진보라고 꼭 도덕성을 내세울 필요가 있느냐"(양이원영)는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한국 진보에게는 무오류라는 '신의 관점'을 포기할 '인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상은 현실을 개조하지만, 현실도 이상을 개조한다. 이걸 인정하면, 세속주의와 실용주의가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성공도 받아들일 수 있고, 국민의 삶을 개선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제대로 된 진보를 갈망한다.
    기고자 : 김영수 영남대 교수·정치학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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