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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事一言] "PC? 오버 좀 하지 말지?"

    이진혁 출판편집자

    발행일 : 2023.05.24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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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풋내기 편집자 시절, 어느 소설에 장애인의 반대말로 '정상인'이 쓰인 것을 지적한 일이 있다. 장애는 정상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아니므로 '비장애인'이라 써야 옳다는 게 그때도 상식이었다. 오랜만에 밥값을 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의외의 말을 어느 평론가에게 들었다. 작가가 그 단어를 고른 이상 함부로 작품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되며, 편집자가 단어를 고치는 것은 '오버'라는 것이었다. 작가와 상의해서 바꿀 수 있다면 좋았겠지만 유고 작가였던 게 문제다. 그렇다고 틀린 표현을 두는 게 괜찮은가? 작가의 명예를 위해서도 고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날의 고민은 두고두고 편집 생활의 화두가 되었다.

    시대가 바뀌었나보다. 영미권을 중심으로 고인이 된 작가의 문학 작품 속 문장이 하나둘 바뀌고 있다. 007의 제임스 본드가 흑인 범죄자를 두고 한 "너무 많이 취하지만 않으면 법을 준수하는 녀석들"이라는 대사는 "법을 준수하는 녀석들"이 되었다. 흑인을 두고 음주 범죄를 연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이었겠지만 대사만 떼어놓고 보면 범죄자가 준법정신 투철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에서는 '인도인의 기질'이 '그의 기질'로 바뀌었다. 영화로도 유명한 로알드 달의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서는 뚱뚱한(fat)이라는 단어가 거대한(enormous)으로 대체되었다.

    이를 결정한 출판사는 지금 감수성에 맞춰 독자가 불쾌하지 않게 작품을 다듬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러한 수정은 대체로 인종차별적인 표현이다. 문제는 이들이 쓰인 시기는 지금보다 인종차별이 만연하던 때라는 것이다. 문학은 재미나 심미적 만족을 위한 것만이 아니며, 시대상을 가늠해보는 사회학적 자료가 되기도 한다. 이를 '올바름'이라는 틀에 맞춰 지금의 기준으로 마름질하는 게 맞는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당사자인 유고 작가들이 이를 본다면 뭐라고 할까. 자신의 명예를 지켜줘서 고맙다고 할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아마 '오버'하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지 않을까.
    기고자 : 이진혁 출판편집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1008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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