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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고기 120부위로 자르는 장인… 그는 日 3대째 푸주한

    남정미 기자

    발행일 : 2023.05.23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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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마모토 노리아키 서울서 첫 시연

    소금쟁이가 물 위를 유영하는 듯했다. 지난 21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우 전문점 도산회관에서 18.6㎏짜리 한우 설도(泄道) 부위를 손질하는 누마모토 노리아키(46) 푸주한의 칼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근육의 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누마모토가 선홍빛 고기에 몸을 밀착한 다음 칼끝으로 가만히 고기를 가르자, 얇은 근막(근육의 겉면을 싸고 있는 막)이 나왔다. 그는 이를 살짝 밀듯이 벗겨냈다. 이렇게 손질한 고기에선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다. 이 부위의 명칭은 '마루신'. 정확하게 대칭되는 한국 소고기 부위는 없다. 아마 세계적으로도 그럴 것이다.

    누마모토는 대개 40부위로 정형하는 소고기를 그만의 기술로 120부위 이상 커팅해내는 '누마모토 커트'의 고안자다. 그래서 80여 부위엔 아직 정식 이름이 없다. 흔히 한국 사람들도 소의 120여 부위를 먹는다고 하지만, 이는 내장과 머리 등을 다 합친 것으로, 누마모토 커트는 지육(枝肉)만을 대상으로 한다.

    일본 최고의 '푸주한'으로 평가받는 누마모토는 이날 한국을 찾아, 그의 상징과도 같은 누마모토 커트를 처음으로 선보였다. 푸주한의 사전적 의미는 '소·돼지 따위를 잡아서 파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다. 현대 푸주한의 의미는 그 이상이다. 푸주한에 따라 고기의 가치와 맛이 달라진다.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개인 푸주한이자, 미국·유럽·두바이 등에서 유명 미쉐린 레스토랑과 협업해 온 그를 일본 아사히신문은 '고기 장인(匠人)'이라 표현했다.

    ◇장인의 경지에 이른 3대 푸주한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에서 '직업이 푸주한인 누마모토'를 찾으면 "어느 누마모토를 찾느냐"는 답이 돌아온다. 이와쿠니시는 일본인이 최고의 사케로 꼽는 '닷사이' 양조장이 있는 곳. 산 좋고 물 좋은 이 지역 와규(다카모리 와규)는 닷사이 술지게미를 먹고 자란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그의 조부는 1910년대부터 와규를 키우며 푸주한으로 일했다. 그의 아버지 역시 마찬가지. 이제는 아들인 그까지 이 길을 걸으면서, 3대가 푸주한이 됐다. 할아버지는 그가 20대 때 돌아가셨지만, 아버지 누마모토 모리에(73)는 아들이 아베 전 총리의 개인 푸주한으로 활동할 때 가장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아들 누마모토에게 도축장은 집이자 놀이터였다. 그는 자그마한 살점만 봐도 그게 어디 붙은 고기인지 안다. '어떻게 근막을 정확하게 찾아 분리해내느냐'는 질문에 그는 "예전부터 소를 봐 왔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 근육이 발달했고, 근막이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손끝 감각으로 이를 찾아낸다"고 했다. 감각이란 말이 '타고난'이란 의미로 들렸다.

    그가 기억하는 가장 처음으로 칭찬받은 일도 고기를 자르는 일이었다. 15살 때부터 정식으로 푸주한 일을 배웠고, 일본 다케기시 식육학교를 졸업했다. 처음 일 배우던 2~3년이 가장 힘들었다.

    "15살 때 맨 처음 한 일이 소의 머리를 자르는 일이었다. 피가 튀는 것도 싫고, 눈물 흘리면서 죽어가는 소를 보면서 생명을 빼앗아 고기를 얻는 데 대한 쓸쓸함도 느꼈다." 특히 고기를 자르는 방법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제대로 정형하지 못해 그냥 버려지거나, 가치 없다는 이유로 저렴한 가격에 다짐육으로 팔려가는 부위들이 아까웠다. "소의 죽음을 더 가치 있게 만들고 싶다" "한 부위도 함부로 버려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열망으로 만들어진 게 '누마모토 커트'다.

    ◇육포용 설도가 스테이크로

    그래서 누마모토의 칼은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다. 고기에 칼을 직선으로 내려꽂아 상처를 내 자르는 게 아니라,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고기의 선을 따라 근막을 벗겨낸다. 상처 없이 깨끗하게 근막을 따라서 고기를 분리하기 때문에, 피가 나오거나 드립(고기를 해체할 때 나오는 액즙)이 없다. 당연히 신선도도 훨씬 올라간다. 칼 자체에도 큰 손상이 가지 않는 커팅 법이기 때문에, 그는 칼을 1년에 한 번만 간다.

    이날 도산회관에서 누마모토는 평소 육회나 육포 등으로 주로 활용하는 '설도'를 스테이크용 부위로 변신시켰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으면 등심인지, 설도인지 모를 정도로 부드러웠다. 설도는 소의 뒷다리 중 넓적다리 앞쪽과 위쪽에 붙어 있는 고기를 뜻하는데, 다리 부분에 있는 만큼 근육이 발달해 퍽퍽하고 질기다. 스테이크용으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누마모토는 "설도 자체는 근육이 많이 발달한 부위지만, 근막을 따라서 분리하다 보면, 그 안에서도 근육이 잘 발달되지 않아 마블링의 밸런스가 좋은 스테이크용 부위가 나온다"고 했다.

    누마모토는 이번 행사를 위해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한국의 유명 한우 전문 식당을 다니며, 직접 협업할 장소를 골랐다고 한다. 그렇게 낙점된 장소가 한우 전문 다이닝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 '도산회관'이다. 도산회관은 누마모토가 정형한 고기로 육회, 로스구이 등 음식을 만들어 선보였다. 도산회관 권준예 총괄 셰프는 "한우의 비선호 부위들을 어떻게 고객들에게 선보이면 좋을지 다시 한번 고민해보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누마모토는 이번 행사에 대해 "'온가에시(恩返し·받은 은혜를 깨닫고 돌려주는 것)'를 하는 마음"이라고도 했다. "과거 제주도 흑우가 야마구치로 건너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우를 가지고 이번에 작업하게 된 건 어떤 면에서 운명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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