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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현대사 보물] 가평 독자 고순자씨의 '90년대 초 언론사 우편환 봉투'

    채민기 기자

    발행일 : 2023.05.23 / 문화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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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실명제 이전 주요 송금 수단
    투고하면 우편으로 원고료 지급

    서울에서 취직한 자식이 월급 받아 보내준 우편환(郵便換·자금 증서를 수취인에게 우편으로 보내는 송금 서비스)으로 시골의 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한턱을 냈다. 1985년 방영된 드라마 '전원일기'에 나오는 에피소드다. 인터넷 송금이 보편화되기 전 우편환은 은행 영업망이 없는 곳까지 돈을 보내는 수단이었다.

    경기 가평군 독자 고순자(64)씨도 비슷한 기억이 있다. 글쓰기를 좋아하는 고씨는 1980년대부터 여러 언론사에 투고(投稿)했다. 당시 언론사에서는 고료를 소액환(우편환의 일종)으로 지급했다. 원고가 채택되고 받은 소액환 증서를 고씨는 강원 영월군 고향 집으로 부쳤다. 부모님께 용돈 대신 보낸 것이다. 고씨는 "1990년대 방송국 원고료 1만5000~2만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고 했다.

    고순자씨는 우편환 봉투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조선일보 창간 71주년'(1991년)이 찍힌 봉투를 비롯해 1990년대 초반에 받은 것이 많다. 고씨는 "금융실명제 실시 전후로 고료 지급 방식이 바뀌었다"고 기억했다. 실명제 전에는 우편환이 많이 쓰이다가 점차 계좌에 입금 해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우편환 시절에는 집배원이 부모님 부탁으로 우체국에서 현금을 찾아다 주기도 했다"는 고씨의 기억은 본인 명의가 아니어도 금융 거래를 할 수 있었던 실명제 이전의 관행을 보여준다.

    익명·차명의 금융 거래를 금지한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1년 차인 1993년 8월 12일 전격 시행됐다. 초반엔 혼란도 많았다. 교회 헌금 같은 일상적 소액 거래에도 신분 확인이 의무화돼 번거롭다는 지적이 제기되는가 하면, 신분 확인 절차가 정착되지 않아 은행에서 도난 수표에 현금을 내준 일도 뉴스가 됐다.

    실명제의 취지 중 하나가 '검은돈'을 차단하는 것이었던 만큼 보안 유지가 중요했다. 정책 담당자들이 해외 출장을 가장하고 가짜 간판을 내건 사무실에서 실무 작업을 했다. 시행 방식도 대통령 긴급명령 형식을 취했다. 긴급명령은 국가적 비상사태에 법률의 효력을 갖는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대한민국에서 총 16번 발동됐다. 1~14호가 6·25 전쟁기인 1950년대 초반에 집중돼 있고 15호는 고금리 사채를 동결시킨 1972년 '8·3 긴급경제조치'였다. 마지막이었던 금융실명제는 민주화 이후 유일하게 긴급명령권이 발동된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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