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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세계가 귀 기울일 때 크게 외쳐야 할 것들

    장일현 기획부장

    발행일 : 2023.05.22 / 여론/독자 A35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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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이잉원 총통의 방미로 세계가 떠들썩했던 지난 3월 말 대만에선 '2023 스마트시티 서밋 & 엑스포'라는 4박5일짜리 국제 행사가 열렸다. 43국 112개 도시가 IT 기반 협력·발전을 위해 머리를 맞댄 자리였는데 대다수 시장들이 발표 때마다 "대만 자유를 지지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고 한다.

    행사 파트너로 참석했던 세계스마트시티기구(WeGO) 박정숙 사무총장은 "감동이었다"고 했다. 장소가 대만인 점을 감안해도 중국이 코앞에서 눈 부릅뜨고 있는데 이토록 많은 사람이 아랑곳없이 대만을 응원하는 모습은 놀라웠다. 민간 행사였기에 정치적 발언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진심이었다는 얘기다.

    우린 어땠을까. 문재인 정부 땐 집권 세력의 친중 성향 때문에 대만 편드는 언행은 금기시됐다. 지금도 거대 야당이 툭하면 "중국을 자극 말라"고 윽박지른다. 이런 상황에선 정파를 떠나 공개적인 대만 지지는 상당한 결기를 요한다. 박 총장은 "외국 시장들을 보면서 우리가 그동안 자유 등 보편적 가치를 위해 국제사회에서 큰 목소리를 내고 손을 내민 적이 얼마나 있었나 반성하게 됐다"고 했다.

    근래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놀라울 정도로 커졌다. BTS와 블랙핑크 음악에 지구촌이 열광하고, 반도체와 휴대전화, 자동차가 세계로 팔려나간다. '기생충' '미나리'가 아카데미상을 받았을 땐 어깨가 으쓱으쓱했다. 노래, 드라마, 화장품, 음식 등 'K'가 붙은 문화 상품은 글로벌 '핫(hot)' 아이템으로 각광받는다. 조셉 나이 교수가 말한 '소프트파워'가 극강이다. 보리스 존슨 전 영국 총리 등 외국 지도자들은 우리가 가장 성공한 민주 국가 중 하나가 됐다고 치켜세운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런 칭찬을 들으면 뭔가 중요한 게 빠졌다는 허전함이 느껴졌다.

    심리학자 매슬로는 인간 욕구를 5단계 피라미드로 설명했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 등 하위 단계가 충족되면 존경·자아실현 등 상위 단계 욕구에 관심이 생긴다고 했다. 고차원적 욕구까지 충족돼야 인간은 행복해진다. 국가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시절 우린 나라를 되찾는 데 모든 걸 바쳤다. 전쟁이 났을 땐 조국을 지켜야 했다. 굶주렸을 땐 잘살기 위해 뼈를 깎았고, 다음엔 민주주의 투쟁에 피를 흘렸다. 그 결과 '단군 이래 가장 풍요롭게 자유로운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한 단계가 더 남았다. 세계사적 존재로서 자아실현과 자부심이다. 이 경지는 전쟁과 폭력, 기아로 고통받는 세계인들을 위해 팔을 걷어붙여야 도달한다. 우리는 잘산다고 뻐기면서 남을 돕지 않는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우크라이나 거울'로 우리 자신을 비춰보자. 이웃 일본만 해도 총리가 직접 현지로 날아가 연대를 과시하고 거액을 지원금으로 내놓고 있다. 지금까지 일본의 지원 금액은 76억달러에 달한다. 앞으로 5억달러를 더 지원한단다. 반면 우린 최근까지 2억3000만달러에 불과하다. 경제 규모 세계 12위, G8(주요 8국) 자리를 노리는 국가치고 너무 초라하다.

    안타까운 건 우리가 세계에 선한 영향력을 끼칠 시간이 넉넉지 않다는 점이다.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합친 우리의 국력은 지금이 절정이고, 곧 하향 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작지 않다. 경제 성장은 정체 기미를 보이고 있다. 인구학 분야 세계적 권위자는 한국이 출산율이 계속 낮아져 이대로라면 2750년 소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먼 훗날 역사에 "한국이 한때 보편적 가치의 편에서 싸웠고, 인류 진보에 기여했다"고 기록될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놓쳐선 안 된다. 세계가 우리에게 귀 기울이는 지금 우린 때와 장소, 상대를 가리지 않고 큰 소리로 외쳐야 한다.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 인권을 지지한다고.
    기고자 : 장일현 기획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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