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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G7 만찬에 나온 후쿠시마 사케… 적나라하고 무딘 일본의 홍보전

    성호철 도쿄특파원

    발행일 : 2023.05.22 / 통판 A2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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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히로시마의 한 호텔에서 지난 20일 저녁 모임이 열렸다. G7(7국) 정상회의 의장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부인인 유코 여사가 주재하는 만찬 및 사교 행사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등 G7 정상과 윤석열 대통령 등 초청받은 8국 정상과 배우자 등이 참석했다. 다음 날인 21일 일본 외무성은 이날 제공한 요리 목록과 함께 "일본 음식 문화의 매력을 세계에 발신(發信)한 매우 유의미한 자리였다"고 자평하는 자료를 냈다.

    만찬 목록에는 12년 전 원전 사고 탓에 방사능 위험 논란이 끊이지 않는 후쿠시마산(産) 니혼슈(日本酒·사케)가 있었다. 후쿠시마현의 주도가인 마쓰자키슈조의 '히로토가와'였다. 1892년 설립된 이 회사는 후쿠시마현의 쌀과 물로 니혼슈를 만든다. 히로시마현의 현지 니혼슈 2종과 함께 제공됐기 때문에 해외 인사들은 후쿠시마산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고 마셨을 가능성이 크다. G7 정상회의를 취재하는 기자들이 모인 국제미디어센터엔 후쿠시마현의 가공식품이 제공됐다. 후쿠시마현 복숭아로 만든 주스, 후쿠시마에서 퍼 올린 천연 탄산수, 후쿠시마산 니혼슈와 양갱 등이었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2021년 도쿄 올림픽 때 후쿠시마산 식재료의 안전성 홍보를 목적으로, 해외 선수들이 사용하는 선수촌 식당에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공급한 것이다. 당시 미국·한국 등은 선수촌 식당과는 별도의 급식 지원 센터를 두고 대표팀에 식사를 제공했다. 중요한 대회를 앞둔 선수들의 불안을 키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2011년 5월 한·중·일 정상회담 때는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갑작스레 후쿠시마산 방울토마토를 '시식당한' 일도 있었다. 동일본 대지진의 비극을 위로하려고 후쿠시마현의 이재민 센터를 방문했는데 일본 측이 방울토마토, 오이를 내민 것이다. 해외 정상이 웃으며 방울토마토를 먹는 사진은 일본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일본이 후쿠시마산 농산물을 해외 인사 앞에 자꾸 내놓는 이유는 자국 국민에게 "이제 괜찮다"고 말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인들도 후쿠시마산 식재료를 꺼리는 게 현실이다. 일본 정부는 매년 '낮은 방사선량의 위험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설문 조사를 한다. 작년 조사에서 40% 정도가 "기준치 이하라도 못 받아들인다" "충분한 정보가 없어 위험을 질 수 없다"고 답했다.

    일본엔 민폐를 뜻하는 '메이와쿠(迷惑)'를 극히 꺼리는 문화가 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고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이런 풍조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그런데 일본을 찾은 중요한 손님에게 일본인도 꺼리는 음식을 대접하는 건 전형적인 메이와쿠 아닌가. 여러 나라 정상들이 후쿠시마산 식음료를 먹는다고 갑자기 이 음식에 대한 인식이 바뀔 리도 없다. 적나라하고 무딘 일본식 홍보전(戰)은 후쿠시마산의 위험도에 대한 논란을 오히려 부각해 역효과만 낼 가능성이 크다.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 안에서 일어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명예 회복을 국제사회에 굳이 호소하지 않는다. 대부분 나라의 국민들은 체르노빌이 러시아의 어딘가에 있다고 생각할 정도다. 누구도 우크라이나산 곡물을 수입하고 소비하면서 체르노빌을 떠올리지 않는다. 상수(上手)는 우크라이나가 아닐까.
    기고자 : 성호철 도쿄특파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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