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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이슈 읽기] 중남미 집어삼킨 '핑크 타이드'

    이영관 기자

    발행일 : 2023.05.20 / Books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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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퓰리즘 득세는 정치 고장났단 신호… 좌파는 그 때를 노렸다

    ◆포퓰리즘의 세계화 | 존 주디스 지음 | 오공훈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84쪽 | 1만5000원

    ◆21세기 사회주의 | 배리 캐넌·피다 커비 엮음 | 정진상 옮김 | 삼천리 | 216쪽 | 1만9000원

    중남미에 연쇄적으로 좌파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는 이른바 '핑크 타이드(분홍 물결·중남미 좌파 연쇄 집권)' 및 이들 정부의 실패가 최근 미국행(行) 중남미 이주자 급증의 원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 방역을 위해 이주자들을 즉각 추방할 수 있도록 했던 미국의 강력한 국경 차단 조치(42호 정책)가 지난 11일 종료되면서 미국으로 이주자가 쏟아져 들어올 조짐인데, 이 중 상당수가 중남미 좌파 정부의 경제 붕괴를 피해, 이주를 희망하는 이들이라는 것이다. 〈본지 15일 자 A1면〉

    '핑크 타이드(pink tide·사회주의 성향 좌파 물결)'는 얼마나 계속 흐를까. 20년 넘게 반복되는 질문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중남미에서 유행했던 이 물결이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다시 흐르고 있다. 최근 12년 만에 브라질의 대표적 좌파 대통령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의 재집권을 비롯해 그 물결이 거세다. '핑크 타이드' 관련 두 권의 책을 소개한다.

    아일랜드 정치학자 배리 캐넌과 피다 커비가 중남미 정치 연구자 15명의 저작을 엮은 '21세기 사회주의'(삼천리)와 미국의 정치 칼럼니스트 존 주디스가 쓴 '포퓰리즘의 세계화'(메디치미디어)다. '핑크 타이드'가 흘러온 길을 짚으며 포퓰리즘이 보내는 경고를 읽어낼 수 있다.

    ◇"외면은 좌파, 정책은 우파"

    '핑크 타이드'의 시작은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에 대한 반발이었다. 원유·철광석 등 천연자원이 풍부한 중남미 국가들은 세계화 경쟁 속에서 고부가가치를 지닌 산업보다는 자원을 대주는 역할만을 담당했다. 경제 구조 전환에 실패했고, 소수의 자원을 지닌 이들과 나머지의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베네수엘라에서 우고 차베스(1954~2013)가 1999년 대통령이 됐고 이후 칠레(2000), 브라질(2003)을 비롯한 국가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배리 캐넌을 비롯한 '21세기 사회주의' 저자들은 좌파 인사들이 '빈곤 감축'을 비롯한 상징을 내세워 집권에 성공하지만, 이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했다고 분석한다. 오히려 실제 정책과 정부 인사 구성을 들여다보면 우파 정부와 상당히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경제적 제약도 무시할 수 없다. 좌파 정권은 부의 재분배 등 사회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했다. 그러나 경제 체질을 개선하지 못한 채 공약을 쏟아냈기 때문에 자원을 채굴해서 해외에 파는 기존의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답습해야만 했다.

    ◇"실제 정책보다 상징 중시"

    중남미 좌파 지도자들의 또 다른 공통된 특징은 '상징'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빈민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나 실제 정책은 급진적이지 않았고, 오히려 대부분 이전 정부 것을 계승했다. 두 책의 저자들은 공통적으로 포퓰리즘 지도자들이 집권할 수 있었던 것은 상징 언어를 잘 활용한 덕이라고 본다. '차베스가 바로 국민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건 차베스, '깨끗한 브라질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으로 집권한 룰라 등이 대표적. 좌파 정권은 기존 우파 정권에서 경시했던 시민사회와 크게 상호 작용했고, 그 결과 정치인을 영웅적 인물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고 설명한다.

    '포퓰리즘의 세계화'를 쓴 존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중요한 특성을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는 국민의 대표를 자임하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본다. 좌익 포퓰리즘은 국민과 엘리트 집단 간의 적대적 상황을 만들고, 우익 포퓰리즘은 국민·엘리트에 더해 이민자와 같은 제3의 집단을 상정한다. 사실 '국민'과 '엘리트' 같은 집단의 경계는 모호한데도, 신자유주의 경제 체계에서 소외된 이들은 이런 상징적 구호에 열광하게 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정치가 고장 났다는 신호"

    주디스는 포퓰리즘의 논리 및 그것이 전 세계에서 득세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이를 경시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포퓰리스트의 발언에 허황된 부분도 있지만, 결국 많은 이의 공감을 얻어 포퓰리즘이 득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지배적인 정치이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표준적 세계관이 고장 났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두 책이 다루는 포퓰리즘 사례는 정확히 겹치지는 않는다. 주디스는 주로 트럼프가 집권한 미국, 유럽 등 서구권을 중심으로 한 포퓰리즘의 사례를 다룬다. 그러나 두 책의 주장은 일맥상통한다. 포퓰리즘은 사라졌다가도 언제든 다시 등장할 수 있고, 그런 상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포퓰리즘을 앞세운 '핑크 타이드'가 앞으로도 얼마나, 어떤 모습으로 흐를지 우리가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기고자 : 이영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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