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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경제학상 수상 딥비그 교수

"저도 정부 개입이나 규제를 좋아하진 않아요. 하지만 사람들이 은행에 맡긴 예금을 보호하는 일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내 예금이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퍼지면, 삽시간에 '뱅크런'이 벌어집니다. 실리콘밸리은행(SVB)이 파산했던 것처럼요."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필립 딥비그 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18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열린 제14회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의 '뱅크런, 유동성, 그리고 위기' 세션에서 "은행 예금 전액을 보장하는 '전액예금보험'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딥비그 교수는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미 시카고대 교수와 함께 대대적인 예금 인출 사태를 뜻하는 '뱅크런'을 체계적으로 분석해 '다이아몬드-딥비그' 모델을 만들었다.

그는 이 모델을 통해 예금 보호 조치가 없는 상황에서는 언제든 뱅크런이 발생할 수 있음을 규명했고,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이날 딥비그 교수는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와 금융기관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들에 대해 대담을 가졌다.

◇뱅크런 막으려면 예금 전액 보장해야

딥비그는 "은행은 예금주와 대출자라는 비대칭적인 거래처들로 인해 본질적으로 불안정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예금주는 멋진 차량을 사기 위해 언제든 돈을 꺼낼 수 있는 '자유'가 있지만, 은행에서 대출을 받은 기업은 사업이 성과를 내기 전까지 돈을 갚을 여력이 없죠.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예금주 대부분은 기다리지 않고 돈을 인출할 것이고, 빌려준 돈을 빠르게 회수하기 어려운 은행은 위기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 SVB가 지난 3월 8일 "작년에 18억달러 규모의 손실을 봤다"며 22억5000만 달러 규모의 증자 계획을 발표하자, 예금주들이 주로 모바일뱅킹을 통해 하루 만에 420억달러를 인출하는 '스마트폰 뱅크런'이 일어났다.

딥비그는 "예금이 완전히 지켜지고 있고, 안전하다는 믿음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돈을 빼낼 때 걱정할 필요가 없다"며 "뱅크런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이 전액예금보험인 이유"라고 했다. 현재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부분적인 예금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미국은 예금주 1인당 25만달러(3억3000만원), 한국은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5000만원 한도다. 이를 대폭 늘려 예금 전액을 커버하는 보험이 필요하다는 게 딥비그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SVB에 대해 미국 정부에서 예금 전액을 보장해주겠다고 발표하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이미 관중이 다 떠난 뒤에 문을 닫는 것과 마찬가지였다"며 "뱅크런이 발생하기 이전부터 예금을 보호하는 조치가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딥비그는 "전액예금보험을 통해 은행의 자산 운용을 관리·감독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화재보험에 가입할 때 소화기를 몇 개 이상 설치하라는 등의 요구 사항을 제시하듯, 예금보험도 같은 방식으로 은행이 투명하고 안전하게 예금을 관리하도록 하는 조치들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예금주와 은행의 도덕적 해이 우려도

다만 전액예금보험은 예금주와 은행의 도덕적 해이를 유발한다는 부작용도 있다. 예금 전액을 보호받기 때문에 건전하지 못한 금융기관에 예금을 맡기게 되고, 은행도 터무니없이 높은 이자율로 예금 상품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성 교수는 "딥비그 교수는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해 어쩔 수 없이 껴안고 가야 할 문제 정도로 인식하고 있지만, 시장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명시적으로 전액예금보험을 도입하는 대신, 사실상 '전액 보장 효과'가 발생하도록 은행 등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딥비그 교수는 SVB 사태가 촉발한 금융시장 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책과 관련, "정부 규제 당국이 과거 데이터에만 의존해 적절한 대책을 구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코로나 이후 금리 변동성이 급격히 상승했는데, 이에 대한 데이터는 아직 축적돼 있지 않다 보니 경제 관료들이 처방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예금주의 행동에 대해 신속하게 반응하는 것이 뱅크런에 대처하는 규제 당국의 바람직한 자세인데, 이를 위해선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닌 정교한 경제 이론에 근거한 의사 결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고자 : 강우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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