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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30] "아직 한 경기가 남았습니다"

    이영빈 스포츠부 기자

    발행일 : 2023.05.19 / 여론/독자 A2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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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 경기가 끝나면 감독과 일부 선수는 의무적으로 기자회견에 참석해야 한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제 대회는 모든 선수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을 지나간다. 경기 직후 날카로운 질문과 맞닥트리는 걸 즐기는 선수는 많지 않다. 활약이 안 좋았던 선수가 빨리 지나갈 수 있게 나름의 전략을 짜는 팀도 있다고 한다.

    이 시간이 고역인 건 기자들도 마찬가지다. 이긴 팀에게 묻는 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하나를 물어보면 기분 좋아 상기된 얼굴로 세 가지를 답한다. 문제는 패배한 팀이다. 거뭇해진 얼굴로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이들에게는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국제대회는 더하다. 객관적 보도가 저널리즘의 원칙이라지만, 타지에서 "국민에게 죄송하다"며 울음을 터트리는 한국 선수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기자들도 이때는 '일단 보내드립시다' '고생하셨습니다'라며 더는 질문하지 않는다.

    지난해 카타르 월드컵, 2대3으로 졌던 가나전 때도 비슷했다. 대부분이 짧은 몇 마디만을 남기고 지나갔고, 몇몇 선수들은 뒤편에서 해설위원으로 온 대표팀 선배 구자철에게 안겨서 울기도 했다.

    그런 분위기에서 또렷하게 말하는 선수가 있었다. 21세였던 막내 이강인이었다. "아직 한 경기가 남았습니다. 많은 성원 보내주셨으면 합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 뒤 우는 형들을 뒤로하고 먼저 버스로 향했다. 이강인은 그다음 경기인 포르투갈전에서 첫 월드컵 선발을 꿰찼고, 공격을 진두지휘하며 한국의 월드컵 16강을 이끌었다. 그리고 올 시즌 한 계단 더 성장해 소속 팀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놀라운 활약으로 많은 유럽 팀들의 구애를 받고 있다.

    지난해 1월 열린 베이징 올림픽의 남자 쇼트트랙 황대헌도 그랬다. 당시 황대헌은 남자 1000m 준결승에서 석연찮은 판정으로 실격해 탈락했다. 충격이 컸을 텐데도 황대헌은 다음 날 "앞으로는 더 깔끔할 수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승리하겠다"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들은 실패를 끌어안고 아파하지 않았다. 아픔이 없으니 두려움도 없다. 일본 야구선수 오타니 쇼헤이는 보기 드물게 투수와 타자를 겸업한다. 미국에 나서기 1년 전, '빅 리그에서는 하나에만 집중하기도 버겁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오타니는 당시 "실패한다면 실패한 대로 괜찮지 않을까"라고 했다. 결과는 알다시피, 꿈의 무대에서도 '이도류'를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만일 지레 겁먹어 하나를 포기했다면 지금의 오타니는 없었을 것이다.

    올해 플레이오프에서 충격의 1라운드 탈락을 당한 미 프로농구(NBA) 야니스 아데토쿤보. 그는 '2023년은 무의미했다'라는 어떤 기자의 말에 이렇게 답했다. "마이클 조던은 15년을 뛰는 동안 여섯 번 우승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9년은 실패였을까요? 어떤 날은 당신에게 기회가 오고, 또 어떤 날은 당신 차례가 아닐 겁니다. 우리는 내년에 반드시 우승할 겁니다. 그러면 오늘이 성공으로 향하는 과정이 되어 있겠죠." 실패는 누구에게나 찾아 온다. 하지만 성공도 그만큼 누구에게나 곁을 내준다. 오가는 실패와 성공 중에서 무엇을 더 오래 안고 있을지는 각자의 몫이다.
    기고자 : 이영빈 스포츠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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