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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의 양심' 촘스키, 성범죄자 돈 받은 의혹 대상자로

    뉴욕=정시행 특파원

    발행일 : 2023.05.19 / 사람 A2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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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SJ "5년 전 3억 계좌이체 확인
    엡스타인 전용기 타고 뉴욕 가서 맨해튼 저택서 저녁도 함께해"

    자본주의와 불평등·억압에 맞서 투쟁해 온 미국 진보 지식인의 대부 노엄 촘스키(94) MIT 명예교수가 아동 성범죄자임이 드러난 제프리 엡스타인과 수년간 교류하면서, 엡스타인 측과 거액의 금융 이체 거래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7일(현지 시각) 촘스키 교수가 2018년 엡스타인과 관련된 계좌에서 27만달러(약 3억6000만원)를 이체받은 내역을 확보했다고 단독 보도했다. 이에 대해 촘스키는 "그 27만달러는 다른 계좌에 있던 개인 자산으로, 엡스타인에게 단 한 푼도 받은 바 없다"고 했다. 원래 자기 돈이 엡스타인 측 계좌를 거쳤다가 자신에게 입금된 것과 관련, 그는 "15년 전 아내가 사망한 후 공동 자산을 정리하다가 그의 '기술적 도움'을 받았다"고 했다.

    헤지펀드 매니저 출신 억만장자인 엡스타인은 가정 형편이 어려운 14~19세 소녀 수천 명을 꾀어 성 노예로 부리며 정·재계와 학계, 문화계 유력 인사들과 돈 문제 조언과 성 접대를 고리로 방대한 인맥을 구축한 인물이다. 2008년 미성년 성범죄로 수감된 전력이 있으며, 2019년 재수감 중 뉴욕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촘스키는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정치평론가·사회운동가로 반미·반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활동해 왔다. 특히 국내 진보 진영에서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시대의 양심, 세계적 석학'이라며 공개 발언을 요청했다. 그러자 그는 김어준·주진우의 허위 보도 수사 구명 운동,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민주노총 총파업,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종전 선언 등을 공개 지지했다. 지난달 한미 정상이 북핵에 대응해 확장 억제 강화를 약속한 '워싱턴 선언'을 두고도 "한국이 미국의 신냉전에 참여하면 한반도 평화가 위험에 빠진다"며 "한국은 빨리 북한과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미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해선 "전쟁 원인은 러시아가 아닌 미국이며, 서방이 선택적 분노를 하고 있다"며 우크라이나가 영토를 떼어주고 러시아에 양보하라고 촉구해 왔다.

    촘스키가 월가의 최상류층 사교계에서 활동하는 '포식자형 자본가'이자 특히 가난한 소녀들만 노린 희대의 성범죄자인 엡스타인과 교류했다는 사실은 미국 사회에도 큰 파장을 던지고 있다. WSJ는 촘스키가 최소 2015년부터 엡스타인과 수차례 만난 사실도 각종 자료로 확인했다고 전했다. 엡스타인 주선으로 2015~2016년 마틴 노왁 하버드대 교수, 영화감독 우디 앨런,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 등과 차례로 만났다. 보스턴에서 뉴욕으로 엡스타인의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 그의 맨해튼 타운하우스 저택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이 전용기와 맨해튼 저택은 엡스타인 성범죄의 핵심 장소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항상 10명 안팎의 어리고 예쁜 소녀들이 '직원'이라며 시중을 들었다"고 증언했고, 피해자들은 이곳에서 유력 인사들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곤 했다고 진술했다.

    촘스키는 WSJ 기자가 '엡스타인과 왜, 얼마나 만났느냐'고 묻자 "우선 이건 당신이든 누구든 간여할 바가 아니다"라며 "정치·학술 이슈와 국제 정세를 논의하러 가끔 만났다"고 답했다. 보스턴과 뉴욕을 오갈 때마다 전용기를 탄 데 대해서도 "그게 비행기였는지 잘 모르겠다"며 "위대한 예술가와 저녁을 보낸 것까지 당신에게 알릴 의무는 없다"고 했다.

    그는 2020년 한 강연에서 엡스타인이 MIT에 기부한 데 대한 의견을 묻자, 자신과의 관계는 언급하지 않은 채 "엡스타인보다 나쁜 사람들도 MIT에 기부했다"고 한 적도 있다.
    기고자 : 뉴욕=정시행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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