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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플라자] 월세 사는 나에게 '전세 사기'가 남의 일 같지 않다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발행일 : 2023.05.18 / 여론/독자 A3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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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때 전세로 이사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였다. 나의 월세 연대기는 제법 파란만장하다. 매일 밤 엄지만 한 바퀴벌레가 기다리던 반지하인 듯 반지하 아닌 원룸부터 을지로의 고시원, 송파구의 옥탑방, 마포의 셰어하우스, 한겨울 기름통을 직접 들고 다니며 보일러를 틀었던 경기도 의정부의 단칸방까지.

    나는 대학에 가며 자취를 시작했다. 시트콤 '논스톱'을 보고 자라며 대학교에는 당연히 기숙사가 있는 줄 알았다. 그러나 학교 홈페이지 그 어디에서도 기숙사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럼, 나같이 지방에서 상경한 수많은 학생은 모두 어디로 가서 살게되는지 궁금했다. 대학알리미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4년제 대학의 평균 기숙사 수용률은 고작 23.8%.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해 경제 능력이 전혀 없는 나머지 76.2%는 대부분 부모의 경제 능력을 빌려 자취를 시작한다. 나 역시 부모님에게 월세를 꼬박꼬박 받아내며 4년을 보냈다.

    대학 공부까지 다 끝내고 나는 경제적 독립을 했다. 대책 하나 없이 손에 딸랑 200만~300만원을 들고 부동산 중개소를 들쑤시고 다녔다. 그 돈으로 맘에 드는 집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월세는 어떻게든 매달 벌어서 낸다 치더라도 보증금이 문제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나 서울주택도시공사(SH) 등 제도적으로 받을 수 있는 도움이 있는지 사방으로 알아봤지만 어림도 없었다.

    고시원도 찾아갔다. 3일째 아침 도망쳐 나왔다. 고시원도 고시원 나름인지 싼값에 들어갈 수 있는 고시원은 그냥 침대 하나 들어가 있는 공중화장실이랑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그다음엔 송파구의 보증금 100만원짜리 옥탑방에 잠깐 들어갔다. 월세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한겨울에 친구와 방 안에서 패딩을 입은 채로 노닥거렸던 기억이 난다. 2주 후 그 집에서는 밀려났다. 다른 계약자가 생겼다며.

    몇 년 뒤 겨울, 경기도 의정부에 있는 지인의 작업실에서 살게 됐다. 고속도로를 지날 때 '마지막 주유소'라고 쓰여 있는 주유소 근처의 아주 인적이 드문 동네였다. 걸어서는 편의점도 갈 수 없고 무조건 버스를 타고 나가야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애초에 작업실 용도였으니 세탁기도 없어 매번 손빨래를 했다. 기름이 떨어져 방에 보일러가 돌지 않을 땐 기름통을 들고 나가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워왔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방 안에서 버너를 이용해 라면 정도로 끼니를 때우는 게 고작이었고 집 근처에서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쉬는 날엔 집에 틀어박혀 TV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렇게 넉 달을 보내고 월급 120만원으로 보증금 500만원을 어렵사리 만들어 월세 30만원짜리 의정부역 근처 원룸으로 이사 갔다.

    왜 이렇게 구구절절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느냐면, 전세 사기를 당했을 청년들에게 그 집이, 그 돈이 어떤 의미인지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뉴스에서 보고 무심히 스쳐 지나갈 만큼 남의 일 같지는 않아서. 길을 걷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듯 내게도 닥쳐올 수 있는 일이기에.

    내게 사고를 해결할 만한 대단한 해법은 없지만, 청년들이 왜 전 재산을 전세금에 베팅하게 됐는지는 잘 알고 있다. 사회적 기반이 없는 이들이기에 공공 주거 기회가 너무나 희박하다. 대학에도 기숙사가 없고, 조건이 주렁주렁 달린 임대주택엔 내 자리가 없다. 그러니 계속해서 비싼 월세를 감당하다 그나마 낮은 금리로 대출이 가능한 전세 자금 대출이 한 줄기 빛처럼 보였을 것이다. 전세로 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뉴스에서 보는 '전세 사기'라는 말은 조금 건조하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사실 속으로 '어쩌다 저런 나쁜 사람에게 걸려서' '어쩌다 저런 불안한 건물에 들어가서'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1억도 안 되는 돈이 목숨을 버릴 만큼인가 하며 저울에 달아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럴 만한 돈이다. 전 재산을 송두리째 빼앗기고도 그 어떤 대책도, 보상도 없었으니 누가 그 심정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이런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나는 전문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지만, 최소한 내가 사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이 남의 삶의 터전을 그저 투자처로만 바라보지 않기를, 각자 자리에서 최소한의 직업윤리를 가지기를,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도록 사회가 사다리를 놓아주기를, 그저 함께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발짝 옮겨가기를 바라는 소망이 있을 뿐이다.
    기고자 : 강민지 '따님이 기가 세요'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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