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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인의 땅의 歷史] (343) 공화국 대한민국② 김일성을 조종한 소련군 군사위원 테렌티 스티코프의 일기

    박종인 선임기자

    발행일 : 2023.05.17 / 여론/독자 A3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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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련 꼭두각시 김일성이 농락한 대한민국 건국

    1945년 8월 15일 35년 식민 시대가 끝났다. 새 나라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벌어졌다. 미국에서 외교 투쟁을 벌이던 이승만이 귀국했다. 중국에서 투쟁하던 임정 요원들이 귀국했다. 국내파 독립운동가들도 저마다 비전을 내세우며 건국 주체임을 주장했다. 거기에 소련군 소속 조선인 장교 하나도 끼어 있었다. 소련 제88정찰여단 대대장 김일성이다.

    서른셋 먹은 이 소련군 대위가 건국 주도 대열에 포함되면서 건국을 향하던 대한민국 진로는 험로(險路)로 변했다. 그런데 이 김일성이 한 일들은 스스로 계획한 일들이 아니었다. 테렌티 스티코프라는 당시 북한 진주 소련군 군사위원이 갓난아기 이유식 떠먹여 주듯 했던 명령을 꼭두각시처럼 따라 한 일들이었다. 그리고 그 꼭두각시 짓이 만든 역사는 지금도 대한민국 공화국을 독뱀처럼 죄고 있지 않은가.

    소련군 군사위원 스티코프의 일기

    '1000명 정원 사범대학 2개소와 320명 정원 의과대, 5400명 정원 기술학교 11개소가 필요하다. 이에 대한 교재를 검토했다.'(1946년 9월 7일) '누구를 공산당 지도자로 지명할 것인가에 대해 레베데프 사령관, 로마넨코 부사령관과 토의해야 한다.'(같은 해 9월 11일) '선거 규정을 9월 20~25일에 발표해 각 단위 인민위원회 선거를 실시한다.' '최승희 무용학교 정원은 100명으로 한다.'(같은 해 9월 11일)

    이상은 '빨치산 출신 북한 지도자' 김일성이 내린 지시가 아니다. 이는 소련군 연해주군관구 정치담당 부사령관이자 군사위원인 소련 육군 중장 테렌티 스티코프가 내린 지시다. 그리고 이런 내용은 스티코프가 남긴 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김일성은 이 지시를 남김없이 그대로 이행했다.

    '스티코프 일기'라고 통칭되는 이 기록은 1995년 러시아 동박학연구소 박사 과정에 있던 전현수와 중앙일보 현대사연구소가 발굴해 소개했다. 이 일기에는 북한이 왜 '괴뢰(꼭두각시) 정권'이고, 대한민국 건국을 방해하고 북한 단독 정부를 수립한 과정이 세밀하게 적혀 있다.

    지도자로 낙점된 소련 대위 김일성

    일본이 항복하기 7일 전인 1945년 8월 8일 소련이 일본에 선전포고했다. 만주를 점령한 소련은 8월 9일 함경북도 경흥을 시작으로 8월 25일 평양에 진주했다. 그날 소련 극동방면군 25군사령관 치스차코프에 의해 '북조선 주둔 최고사령부'가 설치됐다. 그리고 9월 19일 소련 군함 푸카조프호가 강원도 원산항에 입항했다. 배에는 조선인으로 구성된 제88정찰여단 소속 병력이 탑승해 있었다. 며칠 뒤 김일성이 평양 최고사령부를 방문해 사령관인 레베데프와 면담했다.

    김일성: "나는 88정찰여단 대위 김일성이다. 공산당 조직을 도와 달라."

    레베데프: "좋다. 모스크바와 상의하겠다."

    김일성: "부탁이 있다. 내 빨치산 부대도 대(對)일본 해방전쟁에 참전한 것으로 해달라."

    레베데프: "총 한번 안 쏜 부대가? 역사를 바꿀 수 없다."(김국후, 1991년 6월 11일 레베데프 인터뷰, '평양의 소련군정', 한울, 2008, p77)

    김일성은 88정찰여단에서 적기훈장을 받은 장교였다. 북한 접수가 임박하자 소련 지도부는 이 김일성 부대를 활용할 계획을 세웠고, 그 지도자로 김일성을 낙점했다.(앞 책, p73) 스탈린에 의해 미래 지도자로 선택됐지만 김일성은 앞 대화처럼 소련군 소속으로 항일 투쟁 경력이 전무했다.

    꼭두각시 김일성, 평양 입성

    10월 14일 마침내 김일성이 평양 군중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일성은 양복과 넥타이와 적기훈장을 착용하고 평양공설운동장 연단에 올랐다. 뒤에는 군사위원 스티코프, 최고사령부 정부사령관 등 소련군이 자리했다. 김일성은 전날 밤 양복 차림으로 정치사령관 레베데프를 찾아와 "이렇게 입고서 내일 인민들이 영원히 기억할 명연설을 하겠다"고 으쓱거렸다. 레베데프 회고에 따르면 "이날 김일성이 읽은 연설 원고는 우리 사령부에서 작성했고 양복과 구두는 사령부 정치국 소속 고려인 2세 강미하일 소좌 것"이었다.(1991년 6월 11일 레베데프 인터뷰, '비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일보 특별취재반, 1992, p88)

    문제는 김일성이 차고 있던 적기훈장이었다. 레베데프가 "소련 훈장은 군중에게 나쁜 인상을 준다"며 떼라고 지시했지만 김일성은 연단에 올라서도 훈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소련군 장교 신분으로 무장투쟁 경력이 없는 본인 콤플렉스를 훈장 착용으로 만회하려 한 것이다.

    스티코프가 기록한 반(反)건국 행동들

    1946년 1월 16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계획에 따라 1차 미소공동위원회 예비 회담이 서울 덕수궁 석조전에서 열렸다. 그리고 2월 8일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주도해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조직됐다. 인민위원회는 중앙정부 조직이다. 김일성은 "민주주의적 제당과 기타 사회단체들의 지도자들이 발기부를 조직"하여 그 의견을 소련군 사령관에게 제출해 승인받았다.(김일성, '목전 조선 정치형세와 북조선인민위원회의 조직문제에 관한 보고'. 정해구,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북조선인민위원회 연구', 국사관논총 54, 국사편찬위, 1994)

    분단의 징조가 북쪽에서 내려온 것이다. 3월 20일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덕수궁에서 열렸다. 스티코프가 수석대표인 소련 측은 신탁통치 반대 세력은 통일 정부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3개월 뒤인 6월 3일 이승만은 이에 맞서 전북 정읍에서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선 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1946년 6월 5일 '자유신문')

    북한 단독 정부 수립까지 김일성을 포함한 남북 공산 세력은 스티코프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9월 11일 스티코프는 남쪽 공산 지도자 박헌영에게 '反압제 항의집회 조직'을 지시했다. 9월 26일 자 스티코프 일기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김일성에게 훈시를 주다. 김두봉에게도 모든 문제에 대해 훈시를 줬다.' 9월 28일 스티코프는 박헌영에게 '요구 관철 때까지 총파업'을 지시했다. 10월 1일 대구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그달 22일 스티코프는 입북한 박헌영, 김일성과 함께 남로당 결성에 합의했다. 12월 19일 스티코프는 정식 발족할 북조선인민위원회 정당 비율을 결정했다. 1947년 1월 4일 김일성은 스티코프가 제시한 북조선 인민위원회 대의원 선거 일정에 동의했다. 이후 남과 북은 분단으로 치달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정부 수립을 선언했다. 8월 25일 북한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실시했다. 이틀 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초대 내각 구성원이 결정됐다. 내각 명단은 스티코프가 일기에 기록한 그대로였다.

    이상은 국사편찬위가 펴낸 '쉬띄꼬프 일기'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이 번역본은 국사편찬위원회가 운영하는 '한국사데이터베이스' 사이트에 전문이 공개돼 있다.

    꼭두각시에서 '조작된' 주체(主體)로

    1947년 여름 레베데프는 모스크바에 새로운 국기 제작을 의뢰했다. 1948년 7월 10일 북조선인민회의는 모스크바에서 보내온 인공기를 새 국기로 제정했다.(이휘성, '태극기 삭제와 인공기 제정을 통해 본 북한의 역사 왜곡', 2014년 6월 17일 '데일리NK'). 1945년 김일성환영대회 사진첩에 그려진 태극기를 북한은 버렸다.

    2013년 8월 8일 북한 '노동신문'은 '김일성이 국기를 완성시키며 애국자의 붉은 피와 단일민족과 조선 인민의 정신을 뜻한다고 설명했다'고 보도했다. 김일성이 인공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2018년 '조선중앙통신'은 1945년 평양군중대회 김일성 사진을 디지털로 복원해 공개했다. 이 사진에는 김일성 가슴에 있던 소련군 적기훈장이 지워져 있다. 옷부터 연설까지 꼭두각시였던 김일성을 그 후예들이 '주체'와 '자주'의 민족 지도자로 상징조작한 것이다. 건국을 방해하고 완벽하게 봉건 조선으로 회귀해 버린 해방 정국 북조선 풍경이었다.
    기고자 : 박종인 선임기자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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