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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인사이트] 앤디 워홀 뒤에는 '예술의 씨앗' 품었던 어머니가 있었다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저자

    발행일 : 2023.05.15 / 여론/독자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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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누구를 닮아 이런가 싶은 아이를 부모의 헌신으로 예술가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대개 남다른 쪽은 부모다. 직업은 평범했더라도 그들은 마음속에 예술의 씨앗을 품고 있었고, 그 영향 속에서 자식들이 예술가가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이사무 노구치다.

    그는 파리 유네스코 본부의 정원을 비롯해 조각, 조경, 무대 등 경계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세계적인 작가다. 한지로 만든 둥근 아카리 조명, 서예의 획을 형상화한 듯한 다리에 유리를 얹은 커피 테이블이 유명하다. 그의 아버지 요네 노구치는 19세기 말 미국에 건너와 명성을 얻은 유명 시인이었고, 어머니 레오니 길모어는 그의 영문 편집자였다. 사귀다 헤어진 이후에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레오니는 아들을 홀로 낳아 기른다. 러일전쟁으로 미국에서 반일 정서가 고조되자 아들의 안전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으로 돌아와 영문과 교수가 된 요네에게는 다른 여자가 있었지만, 레오니는 그의 편집자, 사립학교의 영어 선생님으로 일하며 아들을 기른다. 특히 작은 땅을 마련해 집을 짓는데, 어린 시절부터 만들기에 재능을 보였던 노구치가 일본의 전통 장인이 집을 짓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본 것은 훗날 예술가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청년이 되어 미국으로 돌아간 노구치는 컬럼비아 의대에 진학했다. 영특한 소년이 미래의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직업이라 생각한 후원자가 도움을 준 덕분이다. 그러나 어머니의 의견은 달랐다. 어려서부터 예술적 재능이 있었고, 예술가가 되고 싶어 하는 아이에게 왜 의학 공부를 시키느냐고 반발한 것이다. 한평생 이상을 좇아 온 어머니의 조언답다. 결국 노구치는 미술대학으로 옮겨서 프랑스로 건너가 조각가 브랑쿠시와 교류하며 유명 작가로 성장한다.

    시간이 흐른 후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에게 길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어머니도 회고록을 써서 작가가 될 것을 권유한다. 뛰어난 언어적 재능을 갖추고 있던 어머니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기 때문이다. 그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출판된 책 속에 어머니의 지성이 녹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는 아들의 요청에 아름답고 뭉클한 명문으로 답한다. '아들아, 너는 어머니의 머릿속이 물건을 즉시 꺼낼 수 있는 잘 정돈된 창고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든 기억은 위험한 바다와 같이 모래에 뒤덮이고 뒤섞여 있다'는 내용이다. 특히 요네가 레오니에게 써 준 편지에는 날짜가 없어서 시간 순서대로 정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또한 기억이란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 것인가. 한 편의 영화 같은 긴 여정을 돌아보다 그녀는 세상을 떠났고 회고록은 출판되지 못했다.

    노구치는 말년에 들어서며 어머니의 생각을 이해하게 된다. 그 자신도 시간이 미래의 한 방향으로 직선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치 원처럼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노구치는 '나는 어머니의 상상의 산물'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레오니의 인생을 끊임없이 알렸다. 일본의 영화감독 마쓰이 히사코가 2009년 이를 영화로 만든 데 이어 2013년 비로소 그녀의 책이 출판되었다.

    어머니에게 예술적 재능을 물려받은 아들이 또 있다. 바로 앤디 워홀이다. 그의 어머니 줄리아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로, 탄광에서 일했던 워홀의 아버지는 그가 13세가 되었을 때 사망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음악, 춤, 그림 등 다방면에 소질이 있었던 줄리아는 항상 집 안에서 자녀들에게 전통 민요와 동유럽의 민화를 들려주었다. 집 전체를 직접 수놓은 자수로 꾸몄고, 부활절이면 전통 슬라브 문양으로 계란을 장식했다. 깡통이나 박스 등 버려지는 재료로 꽃다발이나 공예품 만들기를 좋아했는데, 워홀이 팝 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도 어쩌면 생활용품을 아트로 전환시킨 어머니의 창의성을 보고 자란 덕분일지도 모른다.

    그녀는 워홀이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을 알아보고 카네기 미술관의 무료 드로잉 수업에 데려간다. 훗날 워홀은 이 미술관과 연계된 카네기 공과대학 미술학과에 진학하게 된다. 미술대학을 졸업하자마자 피츠버그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성공을 거둔 워홀은 어머니를 모시고 와서 42년을 함께 살았다. 그는 유명 인사들과 밤새도록 파티를 벌이고도 다음 날 아침이면 홀어머니를 모시고 교회를 갔다고 한다. 그녀는 아들과 함께 살며 노래와 그림 그리기를 계속했다. 워홀은 어머니의 캘리그래피를 자신의 작품에 넣기도 했고, 어머니를 주인공으로 영화를 제작했고, 작품을 모아 삽화집을 내주기도 했다. 그녀도 아들이 자랑스러웠는지 '줄리아, 앤디 워홀의 어머니'라고 서명을 했다. 그녀가 그린 고양이와 천사 그림들은 인터넷을 검색하면 바로 찾을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바라볼 때 자신의 어린 시절을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번쯤은 할 것이다. 자신이 가슴에 품었던 꿈을 자식에게서 보았을 때 그것을 키워주고 싶은 마음이 어찌 간절하지 않을까! 반대로 자식이 성장하면 자신을 위해 헌신을 선택한 부모의 못다 한 꿈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미 늙은 부모의 아스라한 꿈을 바라보는 것도 마음이 편한 일은 아니다. 노구치와 워홀 모두 어머니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러나 예술가로 성장한 아들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어머니의 꿈을 외면하지 않았다. 그들의 추모는 어머니 인생을 맞추는 마지막 퍼즐이 되어 어머니 인생을 완성시켰다. 서로의 성장을 도모할 때 아름다운 인생, 그리고 뛰어난 예술품이 탄생한다.

    ※김영애의 아트 인사이트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연재해 주신 필자와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기고자 : 김영애 '나는 미술관에 간다' 저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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