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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 SG사태 키운 건 8할이 투자자 탐욕

    나지홍 경제부장

    발행일 : 2023.05.12 / 여론/독자 A3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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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 전쟁이 막바지였던 1814년 2월 21일 월요일 아침, 프랑스와 마주한 영국 동남부 항구도시 도버에서 군복을 입은 장교가 "나폴레옹이 죽었다. 연합군이 드디어 파리를 점령했다"고 외치며 거리를 뛰어다녔다. 소문은 삽시간에 온 도시로 퍼졌고, 전신으로 런던에 있는 해군부에 전달됐다.

    전쟁에 신음하던 영국인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뉴스는 없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나폴레옹이 패배했다는 소문도 돌고 있었던 터라 런던증권거래소의 주가가 급등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영국 정부가 나폴레옹 사망이 사실이 아니라고 확인하면서 주가는 급등 이전 수준으로 급락했다. 실제 나폴레옹은 이보다 두 달여 뒤인 4월 권좌에서 물러났고, 5월 초 엘바섬에 유배된다.

    진상 조사에 나선 영국 정부는 거짓 소문을 퍼뜨려 주가를 끌어올린 뒤 주식을 팔아 막대한 차익을 챙긴 드 베렝거(De Berenger) 일당을 적발하고 사기 혐의로 최고 12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주가조작으로 처벌받은 '베렝거 사건'이다.

    베렝거 사건 이후 주가조작의 수법은 날로 진화했다. 우리나라 주가조작 사례를 망라한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조사 30년사(금융감독원)'를 보면, 수법이 대범해지고 교묘해지는 과정을 대략 몇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1단계는 한국 증시 사상 첫 불공정거래로 적발된 1988년 광덕물산 사건부터 1990년대까지 개인 차원에서 행해지던 주가조작이 세력으로 조직화된 시기다. 광덕물산은 대표이사가 회사 내부 정보를 이용해 가명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수준이었지만, 1991년 진흥상호신용금고 사건에는 증권사 직원들이, 1992년 신정제지 부도 사건에는 회계사 등 전문직들이 가담했다.

    2단계는 조직화한 세력들이 신약·신기술 개발 같은 호재성 재료를 띄워 주가조작에 나선 2000년대 이후다. 보물선 주가조작으로 유명한 2001년 삼애인더스 사건이 대표적이다. 회사의 미공개 정보를 이용했던 1단계보다 지능화된 것이다.

    3단계의 특징은 기업화와 첨단화다. 주가조작에 폰지 사기와 MTS(모바일거래시스템)가 동원된 것이다. 2007년 루보 사건에는 불특정 다수로부터 투자금을 끌어모으는 다단계 방식이 첫 도입됐다. 당시 주범들은 신규 투자자의 돈으로 기존 투자자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수법으로 3000여 명으로부터 1500억원대의 자금을 끌어모아 900원이던 루보 주가를 10개월 만에 57배가 넘는 5만1400원까지 끌어올렸다. 결국 검찰 수사가 시작되자 주가는 3개월 만에 다시 900원대로 주저앉았고, 작전인 줄 모르고 뒤늦게 주식을 사들인 일반 투자자들이 큰 손해를 봤다.

    지난달 24일 다우데이타·서울가스 등 8개 종목의 무더기 하한가로 촉발된 'SG증권발 주가 폭락 사태'는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4단계로 규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당국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2~3년간 조금씩 주가를 끌어올린 치밀함도 놀랍지만, 무엇보다 다단계 방식으로 끌어들인 투자자들이 대부분 의사·연예인·기업인 등 고액 자산가이기 때문이다.

    자산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숱한 금융 거래를 경험했을 자산가들이 "투자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는 기본을 무시하고 거액을 미등록 업체에 투자한 것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이 상식선에서 "내 명의의 휴대폰과 계좌를 넘기면 불법으로 처벌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한번만 했어도 사태가 이렇게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탐욕은 일체를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한다"고 했다. 피해자라고 호소하는 투자자들은 먼저 탐욕에 눈이 멀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기고자 : 나지홍 경제부장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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