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양상훈 칼럼] 법에 죄목 없어도 공자에게 극형 당했을 사람들

    양상훈 주필

    발행일 : 2023.05.11 / 여론/독자 A34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오래전에 한 분이 소정묘(少正卯)라는 옛 중국 사람에 대한 얘기를 보내주셨는데 최근 생각이 나서 다시 읽어 보았다. 소정묘는 2500년 전 중국 노나라 사람이었는데 요즘 말로 하면 정치 인플루언서 같은 인물이었다. 트위터나 페이스북, 유튜브에 팔로어 구독자 수십만명을 몰고 다니고 그가 한마디 하면 각종 매체에서 받아쓰는 그런 유의 사람이었다.

    그의 문제는 두 가지가 있었던 것 같다. 하나는 주장을 그럴싸하게 해서 인기를 끄는데 그 내용이 거짓이거나, 선동적인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또 하나의 문제는 소정묘가 공자를 만난 것이었다. 공자는 노나라의 검찰총장 같은 관직에 임명되자 가장 먼저 소정묘를 처형했다. 충격적인 일이었다. 소정묘는 살인은 물론이고 도둑·강도 등과 관련이 없었다. 공자는 그런 소정묘를 죽이는 데서 끝내지 않고 그 시체를 3일간 시내에 전시했다.

    공자의 제자들이 놀라서 공자에게 그 까닭을 물었다. 공자는 도둑질보다 더 나빠 죽여 마땅한 사악함으로 여러 가지를 들었다. 이를 요즘 말로 바꿔보면 '아는 게 많은데 그 지식을 나쁘게 쓰는 것' '세상을 한쪽만 보고 살면서 고집까지 센 것' '거짓말을 그럴듯하게 해서 사실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 '잘못된 일을 하면서도 겉으로는 멋지게 보이게 하는 기술을 가진 것' 등이다. 소정묘는 여기에 모두 해당되는 인물이었다고 했다.

    지금의 상식으로는 언뜻 이해가 되지 않는 사형 죄목이지만 현대에도 주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세상에는 남을 때리거나 재물을 뺏고 훔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더 큰 해를 끼치는 죄악이 많이 있다. 흔히 그런 죄악은 형법상 죄목으로 열거돼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통령이 선거용 선심 정책으로 돈을 펑펑 뿌리고 나라와 후세에 천문학적 빚을 안긴 것은 형법 어디에도 처벌할 근거가 없지만 공자가 보기엔 처형해 마땅한 사악함이었다.

    공자의 생각을 요약하면 배운 사람이 편견에 빠져서 지식과 달변을 이용해 세상을 미혹시키는 행위, 옳지 않은 일이나 거짓말을 하면서 아무런 죄의식도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이를 멋지게 포장하고 선전하는 행위는 살인 강도보다 심한 극악한 범죄라는 것이다. 이런 공자가 요즘 한국 정치를 보면 극형에 처해야 할 사람이 열 손가락으로도 다 꼽을 수 없을 듯하다.

    고위 정치인이나 공직자이면서 수십억 코인을 숨긴 채 가난한 척하고, 일부러 헤진 구두를 신고, 낡은 가방을 들고, 쇼로 지하철을 타고,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하고서 자신은 투기를 하고, 전셋값 못 올리는 법 만들고 자신은 그 직전에 전셋값 올리고, 거짓말 발표가 들통나자 '잔 기술'이라 하고, 가짜 뉴스와 괴담을 만들어 퍼뜨리고, 가짜로 드러나도 궤변으로 덮고, 외고 없애라고 하고서 제 자식은 외고 보내고, 부정 편법으로 대학 가고 뭐 잘못했느냐고 도리어 고개 들고, 어불성설 음모론만 펴면서 '언론' 행세를 하고, 그런 사람을 '진정한 언론인'이라고 떠받들고, 제 편견 고집을 국가 장래보다 앞세우고, 그렇게 탈원전과 반(反)4대강 조작을 저지르고, 외국에 탄소 중립 멋 내려고 국가 산업에 치명적 제약을 안기고, 하는 궁리가 국민 편 가르기이고, 제 편 일당에게 수천억원 몰아주고, 그래 놓고 잘했다 하고, 국회를 제 방패막이로 이용하고, 하는 말은 거짓인지 진실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그런 사람들은 공자를 만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공자의 인식 중 주목할 것은 안에 든 것이 무엇이든 멋지게 포장하는 기술을 죄악으로 보았다는 점이다. 공자 관점으로는 무대연출가를 청와대 요직에 임명해 주요 국정을 쇼로 만든 것은 중범죄다. 거액 뇌물 수사를 받다 자살한 전 대통령과 국회의원, 성추행을 일삼다 자살한 전 시장, 각종 조작을 일삼고 국민에게 400조원 빚을 떠안긴 전 대통령을 미화 일색으로 찬양하는 영화, 다큐 등을 제작하는 행위도 마찬가지다.

    공자는 소정묘를 따르는 무리, 즉 팬덤을 우려했다. 소정묘는 박식하고 달변이어서 이 팬덤을 몰고다니며 옳은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능히 맞설 수 있는 정도였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공자는 이런 소인배들과 소정묘 같은 그들의 우상을 사회와 나라에 위험한 적으로 보았다.

    소정묘에 관한 글을 받은 때는 이른바 '개싸움운동국민본부'가 조국 수호 집회를 열고, 어느 방송 기자가 "딱 보니 100만명"이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그 '개싸움본부'가 '개딸'로 이어지고, '대장동 사건은 윤석열 게이트'라는 사람이 국민의 40%에 달하고 있다. 소인배들은 '우리 편이면 가짜 뉴스도 좋다'고 제 돈을 내며 열광한다. 공자 없는 시대에 소정묘들이 제 세상을 만난 듯 활개 치고 있다.
    기고자 : 양상훈 주필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333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