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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장곡사(長谷寺)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발행일 : 2023.05.11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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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17명 뜻 모아 만든 '미남 불상'·높이 9m 괘불(掛佛) 남아있죠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10월 9일까지 '부처의 뜰-청양 장곡사(長谷寺) 괘불' 특별전이 열려요. '괘불(掛佛)'은 사찰에서 행사가 있을 때 야외에 거는 대형 불화예요. 대부분 10m가 넘어요. 청양 장곡사는 어떤 절이고, 어떤 문화유산이 남아 있는지 좀 더 알아볼까요.

    칠갑산 깊은 골짜기 천년 고찰

    장곡사는 충남 청양군 칠갑산에 있는 사찰이에요. 장곡사의 장곡(長谷)은 '긴 골짜기'를 뜻하는데, 칠갑산 산줄기와 계곡을 넘어야만 절에 들어갈 수 있는 지형적인 특징이 반영된 이름이에요. 장곡사는 한 사찰 안에 대웅전이 2개 있는 독특한 구조예요. 위치에 따라 상대웅전과 하대웅전으로 구분돼요. 장곡사는 국가 지정 문화재만 6점(국보 2점, 보물 4점) 남아 있을 정도로 유구한 역사가 있지만 이를 확인할 문헌 자료는 적은 편이에요.

    1961년 사찰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칠갑산 장곡사 금당 중수기(重修記)'가 발견돼 이 절의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됐어요. 이 중수기는 1777년(정조 1년) 학연(學演) 스님이 상대웅전을 수리하면서 절의 연혁과 현황을 적은 기록이에요. 중수기에는 '장곡사가 언제 창건됐는지 알 수 없지만, 현재 사찰은 보조국사(普照國師)의 도량(도를 얻거나 수행하는 곳)이라 불린다'라는 구절이 있어요. 보조국사라 하면 고려시대 후기 순천 송광사에서 새로운 수행 운동을 일으켰던 지눌(知訥·1158~1210)이 떠오르지만, 통일신라 후기 전남 장흥 보림사에서 선종의 한 종파 가지산문(迦智山門)을 연 체징(體澄·804~880)이라는 스님도 있어요. 단정할 순 없지만, 상대웅전에 남아 있는 불상 제작 시기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인 10~11세기로 추정돼 보조국사 체징이 장곡사를 창건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요.

    나라와 백성의 복을 기원하는 불상

    장곡사는 약사여래(藥師如來·질병을 치료해주는 부처)께 기도를 드리는 곳으로 유명해요. 상대웅전에는 쇠로 만든 불상 3점이 남아 있는데 각각 약사여래·비로자나불·아미타여래로 알려져 있어요. 만든 시기는 조금씩 달라요. 대웅전을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에 있는 '철조약사여래좌상'이 가장 먼저 제작됐어요. 이 불상은 크기가 크고 조각 기법도 뛰어나요. 가슴과 어깨, 다리 양감이 잘 표현돼 있고, 건장하고 당당한 느낌을 줘요. 불상 양식을 볼 때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인 10~11세기에 제작된 불상으로 추정돼요. 약사여래좌상을 받치는 네모난 석조대좌는 크고 조각 기법이 뛰어나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불상 대좌예요.

    상대웅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철조아미타여래좌상'은 약사여래좌상보다 조금 더 늦은 11~12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돼요. 이 두 불상은 인체 비례나 양감이 떨어지고 마감 처리도 매끄럽지 않아요. 상대웅전에 남아 있는 불상 3점은 서로 크기나 양식이 달라 동시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진 않아요.

    하대웅전에는 고려 후기 제작된 '금동약사여래좌상'이 모셔져 있어요. 이 불상은 1346년(충목왕 2년) 백운(白雲)이라는 승려가 주도해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뜻을 모아 조성했어요. 자비로운 표정, 비례감이 알맞은 신체, 섬세한 의복 장식 등 14세기 불상 조각의 특징이 잘 드러나요. '국내 최고 미남 불상'으로 꼽히죠. 조성 발원문에는 시주자와 발원자 1117명의 이름이 적혀 있어 고려 시대 단일 발원문 중 가장 많은 인명을 담고 있어요. 10m 넘는 발원문에는 원나라 황제, 고려 국왕, 나라와 백성의 평안을 바라는 문구가 기록돼 있어요. 시주자 이름 중에는 공민왕(재위 1351~1374)의 몽골식 이름인 바얀테무르(伯顔帖木兒)도 있어요. 그 밖에 다음 생에는 남자로 태어나기를 소망하는 내용, 자신과 두 살 난 아이의 장수를 기원하는 내용 등 발원자의 구체적인 소망이 담겨 있어요. 금동약사여래좌상은 원 간섭기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아갔던 당시 민중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답니다.

    대웅전 마당에 걸린 대형 불화

    국보 장곡사 괘불은 1673년(현종 14년) 승려와 신도 등 83명의 시주와 후원으로 조성됐어요. 삼베 17폭을 잇대 높이 8.95m, 너비 5.85m가 넘어요. 중앙에는 거대한 본존불이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연꽃 가지를 들고 서 있어요. 본존불 좌우로는 불·보살·나한(생사를 초월해 배울 법도가 없는 경지의 부처)·천왕 등이 정연하게 배치돼 있어요. 이 괘불 맨 아래쪽에는 '강희(康熙) 12년(1673년) 5월, 청양 동쪽 칠갑산 장곡사 대웅전 마당에서 열린 영산대회(靈山大會)에 걸기 위한 괘불'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어요. 괘불 조성 시기, 사찰 이름, '영산대회'라는 행사의 명칭, '대웅전 마당'이라는 행사 장소까지 적혀 있어 괘불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자세히 알 수 있어요.

    영산대회는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한 일을 가리켜요. 설법을 듣기 위해 많은 제자와 보살, 사천왕 등이 모였지요. 본존불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인물들은 영산대회의 모습을 잘 보여줘요. 불·보살 39구 옆 붉은 네모 칸에는 이름이 있어 누구를 그린 건지 알려줘요. 중앙 본존불 옆에는 '미륵존불(彌勒尊佛)'이라 적혀 있는데, 미륵은 먼 훗날 우리가 사는 세계에 다시 내려와 중생을 구할 것으로 여겨져요.

    장곡사 괘불이 제작된 17세기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후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던 시기였어요. 파괴된 사찰 건물과 불교 공예품을 다시 만들었죠. 장곡사 괘불은 그 무렵 죽은 이들의 영혼을 달래고 남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 위한 의식용 불화로 제작됐어요.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 어느 날, 현실의 고통을 달래고 평안한 미래가 오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장곡사 대웅전 마당에 대형 괘불이 걸렸답니다.
    기고자 :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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