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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철의 스포트S라이트] 光속구시대에 그리운 느린볼의 요리사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발행일 : 2023.05.11 / 스포츠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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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대 볼로 101승 기록 유희관

    '160'. 올 프로야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숫자다.

    한화 문동주(20)가 국내 선수론 사상 처음으로 '마(魔)의 벽' 시속 160㎞를 무너뜨렸고, 안우진(24·키움)과 김서현(19·한화)도 뒤질세라 이에 육박하는 공을 뿌려댄다. 그러나 야구에선 속도가 전부는 아니다. 제구력이 없다면 속도는 신기루에 불과하다.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한국 투수들은 호주와 일본에 대량 실점하며 무너졌다. 공이 느려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먹은 곳에 못 던졌기 때문이다.

    2년 전 마운드를 떠난 투수 유희관(37)은 이런 시대 추세를 거스르고도 경기를 지배한 역행자(逆行者)다. 용을 써도 140㎞도 넘지 못하던 느린 공으로 타자들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통산 101승. 배짱과 날카로운 제구가 보호막 구실을 했다. 그는 은퇴한 뒤로는 야구 해설자, 방송인, 유튜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좀 지난 얘기지만 한국 야구의 WBC 부진을 직접 본 느낌은?

    "많이 아쉬웠죠. 특히 투수들이 좋은 공을 지니고도 스트라이크 못 던지고 볼을 던지는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봤어요. 모든 선수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노력해야 합니다."

    ―투수들은 뭐가 문제였을까요.

    "공 스피드만 신경 쓰다 보면 망가질 수 있어요. 타자들은 160㎞를 막 던지기보다 150㎞를 원하는 곳에 던지는 투수를 더 어렵게 생각해요. 스트라이크 존을 구석구석 잘 이용하고, 변화구를 완벽하게 가다듬어 타자 타이밍을 빼앗는 게 중요하죠. 타자들 체격과 파워가 점점 좋아지는데 힘으로 타자를 제압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스피드보다는 제구란 얘기죠?

    "스피드와 제구력 둘 다 갖추면 금상첨화죠. 제 최고 스피드가 아마 136, 137㎞였을 겁니다. 고교, 대학 때 동기들보다 공이 현저하게 느렸어요. 어떻게 살아남을까 고민하다가 제구력으로 승부를 걸어보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만약 제가 구속 몇㎞ 늘리는 데 매달렸다면 제구마저 흔들렸을 겁니다."

    ―제구에 어려움을 겪는 투수들에게 조언한다면?

    "중요한 건 자신감 아닐까요? 스피드가 빠르지 않으면 더 많이 얻어맞을 것이란 두려움이 문제예요. 전 스스로 '난 누구보다 강하다'고 생각했고, 내 공을 믿었습니다. 타자들도 다 똑같은 사람인데 맞더라도 과감하게 승부하자고 마음먹으니 도리어 편해지더군요."

    ―제구를 가다듬는 노하우라도?

    "정답은 없습니다. 각자 체형과 운동 능력에 맞는 폼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구속을 애써 줄일 필요는 없다고 봐요. 스피드도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장점이니까요. 다만 구속을 유지하면서 거기에 맞는 폼을 찾아야죠. 끊임없이 새로운 걸 시도하고 노력해야겠죠."

    ―WBC 대회 때 일본 오타니를 삼진 잡은 체코 투수도 공이 안 빨랐죠? 국가대표가 되지 못한 아쉬움은 없나요.

    "느린 볼 때문에 '국제 무대에서는 안 통한다'는 편견이 너무 컸어요. 결국 안 뽑혔죠. 선수 생활을 마치면서 '제구 하면 유희관'이라는 색깔을 팬들 머릿속에 남긴 데 자부심을 갖고 있어요."

    ―야구 해설자, 방송 출연, 유튜브 등 요즘 하는 일이 많던데요.

    "선수 시절엔 선발투수로 5일마다 하루 바빴는데, 요즘엔 일주일에 5일 바빠요. FA(자유계약선수) 때도 영입 경쟁이 없었는데, 은퇴하고 나니 방송 3사에서 다 해설위원 제의가 들어왔어요. 방송은 원래 워낙 좋아하니 재미있게 하고 있어요. 현역 시절부터 '준비된 엔터테이너'란 말을 많이 들었잖아요."

    ―야구와 사회생활, 어떤 게 더 어려운가요?

    "사회생활도 야구처럼 마음대로 되는 게 없어요. 컨디션 안 좋은 날 집중해서 던지면 잘되고, 컨디션 좋을 때는 다 되는구나 싶어서 마구 덤비다 얻어맞는 것처럼…. 유튜브도 처음엔 야구와 관계 없는 거로 잘할 자신 있었는데 잘 안 됐어요. 각 팀 홈구장과 응원 문화, 먹거리 등을 소개하는 걸 한번 다뤘는데 제 생각과는 다르게 호응이 정말 좋았어요. 역시 모든 게 정답이 없더라고요."
    기고자 : 강호철 스포츠부 선임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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