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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미 연준 의장)보다 잘했던 이주열(전 한은 총재)… 기로에 선 이창용(현 한은 총재)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5일 코로나 비상사태를 해제하기로 결정했다. 코로나가 확산되기 시작했던 2020년 1월 이후 3년 넘게 이어져 온 각국 중앙은행들의 코로나 대응 통화정책의 성적표를 매길 때가 된 것이다.

세계 통화정책을 주도하는 미국은 코로나 위기 초기에 금리를 제로(0) 수준으로 급격히 내리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하지만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상황을 오판해 풀린 돈을 회수하는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치는 바람에 물가 안정에 실패하고 경제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반해 한국은 인플레이션 추세를 따라가며 금리를 적절히 올려 대응을 미국보다는 잘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최근엔 한국의 금리 정책을 두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너무 일찍 금리를 동결해 물가가 불안한 조짐을 보인다는 것이다.

◇미국의 오판

코로나가 발발한 2019년 1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기준금리는 연 1.5~1.75%였다. 봉쇄 조치로 경제가 멈춰 서자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2020년 3월까지 연 0.00~0.25%의 제로 수준으로 내렸다. 금리를 내려 돈을 풀었지만, 연준이 물가 안정의 지표로 삼는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음 해 3월까지 1년 동안 1.2~1.7%로 연준 목표(2%) 내에서 안정됐다.

하지만 2021년 4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3%로 뛰어올랐다. 이후 5월 3.8%, 6월 4.5%로 껑충껑충 뛰어올랐지만, 파월 의장은 "일시적(transitory) 현상"이라며 아무런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물가가 11개월 동안 급등해 2022년 2월 6.4%까지 오르자 뒤늦게 오판을 인정하고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다. 2022년 3월 이후 10번 연속해서 금리를 올렸는데, 초기 대응이 늦어 뒷수습을 하느라 금리 인상의 빈도와 폭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충격을 받고 경착륙의 공포에 시달렸다.

현재 미국의 기준금리는 연 5.00~5.25%이다. 반면,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5.6% 수준이다. 물가가 급등하면 기준금리를 물가 상승률보다 높은 수준으로 빠르게 올린 뒤 장기간 유지했던 과거의 성공 법칙에서 보면 아직 미흡하다. 월스트리트 전문가들 사이에선 "파월 의장이 11개월이나 시간을 낭비하는 바람에 인플레이션 불길이 거세게 타올랐다"며 "뒤늦게 대응에 나서면서 전 세계 경제가 필요 이상의 비용을 지불했다"는 말이 나온다.

◇선제 대응한 한국

코로나 사태 발발 후 이주열 당시 한국은행 총재도 기준금리를 대폭 낮추며 경기 살리기에 들어갔다. 한국이 미국과 다른 점은 코로나 사태가 진정되어 가면서 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을 때 금리 인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2021년 7월 물가 상승률이 1.3%로 올라가자, 이 총재는 금리를 연 0.5%에서 연 0.75%로 인상, 긴축 메시지를 시장에 전달하기 시작했다. 또 2021년 11월과 2022년 1월에도 0.25%포인트씩 올렸다. 미국보다 무려 7개월이나 빨랐다. 후임인 이창용 총재도 이후 물가가 계속 오르자 기준금리를 연 3.5%까지 따라 올리며 물가 안정 의지를 보여줬다.

미국과 한국의 물가 대응 성적은 코로나 사태 동안 두 나라의 물가 상승률과 기준금리의 격차(스프레드)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금리 인상 직전인 2022년 2월 소비자물가 상승률 6.4%, 기준금리 0.25%로 최대 6.15%포인트까지 차이가 났다. 반면 한국의 최대 격차는 2022년 6월 물가 상승률 3.9%, 기준금리 1.75%로 2.15%포인트였다. 미국 연준이 물가가 뛰는 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반면, 한은은 물가 상승에 맞춰 금리를 올리며 대응했다는 뜻이다.

◇기로에 선 한국은행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뒤처졌던 미국이 금리를 워낙 큰 폭으로 올린 반면, 한국은 금리를 최근 4개월간 두 차례나 동결했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소비자물가와 기준금리 차이는 0.35%포인트, 한국은 0.5%포인트이다. 한 통화정책 전문가는 "미국의 물가 안정 의지가 더 강력하다"고 풀이했다.

파월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심리가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며 연내 금리 인하는 없고 당분간 고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한은도 물가 안정을 강조하고는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에선 "두 차례나 금리를 동결한 한은이 더 이상 금리를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또 정부가 물가 대응보다 경기 부양을 우선하는 정책으로 선회할 것이란 말도 나온다. 이런 기대 심리 때문에 서울 강남 등의 부동산 가격이 다시 꿈틀거리고, 생활 물가도 오름세를 이어간다고 볼 수 있다. 물가 안정이 중앙은행의 존재 이유이기 때문에 이창용 한은 총재의 고민도 그만큼 깊어지고 있다.

[그래픽] 코로나 기간 한·미 물가 상승률과 기준금리 기고자 : 김기훈 경제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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