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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현진의 돈과 세상] (122) 디지털 시대의 '착오 송금'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발행일 : 2023.05.10 / 여론/독자 A3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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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맨해튼 금융가에서는 하루에 5조달러 이상의 자금이 컴퓨터를 통해 오간다. 그 과정에서 가끔 실수가 생긴다. 2020년 8월 시티은행 실무자가 8억9400만달러를 잘못 송금했다. 화장품 회사 레브론의 채권자들에게 한 달 치 이자를 뿌려 주려다가 3년 치 이자를 한꺼번에 선지급했다.

    채권자 대부분은 더 받은 돈을 돌려줬지만, 일부는 반환을 거부했다. 그 분쟁을 둘러싼 소송에서 법원이 상식을 깨고 피고 측 손을 들어주었다. 시티은행이 설마 실수할 리 없으리라 믿어서 받은 돈을 이미 다른 데 썼다는 주장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부당이익은 반환한다"는 민법의 대원칙이 깨지자 시티은행이 항소했다. 2022년 8월 1심 판결이 뒤집혔다.

    시티은행이 늦게나마 잘못 송금한 돈을 되찾은 것은 기록 덕분이다. 어두운 택시 안이나 술집에서 실수로 고액권을 지급했을 때는 기록이 없어서 돌려받기 어렵다. 기록이 있더라도 송금한 금액이 소소하면 돌려받기 힘들다. 실수한 사람이 지레 포기하기를 바라며 반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디지털 금융이 발달한 우리나라는 착오 송금이 빈번하고 분쟁도 많다. 예금보험공사가 분쟁 해결에 나서 지금까지 6000여 명이 73억원을 돌려받았다. 건당 120만원꼴이다. 지난주 아시아개발은행 연차총회에서 한국 사례가 소개되자 외국인들이 높은 관심을 보였다. 착오 송금은 다른 나라에서도 골칫거리이기 때문이다.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 시대에는 착오 송금이 무시할 수 없는 사회문제가 된다. 모든 거래가 기록되니 이론상으로는 잘못 보낸 돈을 돌려받기 쉬워지지만, 실수의 빈도는 훨씬 잦아진다. 노약자에게 그 실수가 집중된다. 디지털 금융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송금은 편하게 하고, 실수는 빠르게 복구하는 것이다. 실수와 약자를 고려하지 않는 기술 발전은 차갑다.
    기고자 : 차현진 예금보험공사 이사
    장르 :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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