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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현의 컬처 맵] 연주자의 패션은 메시지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발행일 : 2023.05.09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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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힐에 미니스커트, 빨간 재킷… 달라진 클래식 '드레스 코드'

    오는 12일 내한 독주회를 갖는 러시아 여성 피아니스트 율리아나 아브제예바(37)는 2010년 쇼팽 콩쿠르 우승자다. 조성진의 '콩쿠르 5년 선배'인 셈이다. 그에겐 연주할 때 독특한 습관이 있다. 드레스 대신 검은 재킷과 바지를 즐겨 입는다는 점이다.

    그는 최근 서면 인터뷰에서 패션 스타일에 얽힌 사연을 털어놓았다. "15년 전쯤 아름다운 드레스 차림으로 라벨의 까다로운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었는데 곡과 의상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불편해졌다. 흡사 잘못된 배경음악이 흐르는 영화를 보는 듯했다."

    클래식 연주자들의 '드레스 코드'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남성 연주자들은 펭귄 꼬리를 연상시키는 연미복과 나비넥타이, 여성은 화려하거나 우아한 드레스 차림이 불문율로 통했다. 하지만 '격식 파괴'의 21세기에는 연주자의 의상도 한층 자유분방해지고 파격적으로 변모한다. 연주자의 개성과 도발, 정치적 의사 표명, 패션 산업과의 협력까지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 왕(王羽佳·36)은 긴 드레스 대신에 미니스커트와 하이힐로 무대에 올라서 화제와 논란을 동시에 몰고 다닌다. 해외 평단에서도 찬반은 극명하게 갈린다. 워싱턴포스트는 "젊은 여배우들 사이에서도 낯설지 않은 패션"이라고 감쌌지만, 반대로 월간 문예지 뉴크라이티리언(New Criterion)은 "스트리퍼의 의상"이라고 불편함을 드러냈다. 정작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지난해 본지 인터뷰에서 그는 "쇼팽과 스크랴빈까지 음악은 시각적이고 원초적이고 본능적인데, 왜 연주 의상은 그래서는 안 되는가?"라고 반문했다.

    유자 왕 같은 도발은 아니더라도 남다른 의상 감각을 무대에서 뽐내는 '패셔니스타' 남성 연주자도 적지 않다. 영국 피아니스트 스티븐 허프(61), 베네수엘라 출신의 남성 소프라노 사무엘 마리뇨(30) 등이 여기에 속한다. 마리뇨는 지난 2월 첫 내한 무대에서 오페라 가수보다는 마이클 잭슨을 연상시키는 빨간 반짝이 의상을 입고 BTS의 '다이너마이트'를 바로크풍으로 편곡한 앙코르 때는 춤추기도 했다.

    클래식의 '드레스 코드'가 완화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과거 백인 남성 중심에서 연주자의 출신 국가와 성별이 한층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의 시각적 이미지가 중요해지면서 개성을 드러내고 차별화하는 젊은 연주자도 늘고 있다. 마지막으로 순수예술과 대중문화가 더 이상 이분법적으로 엄격하게 구분되지 않는 하이브리드(혼합) 현상과도 연관 있다.

    패션은 정치적 의견을 표명할 기회도 된다. 우크라이나 출신 여성 지휘자 옥사나 리니우(45)는 독일 작곡가 바그너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서 145년 역사상 여성 지휘자로는 처음으로 바그너 전막(全幕) 오페라를 지휘했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에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푸른색과 노란색의 허리띠와 스카프를 즐겨 착용한다. 한국 피아니스트 손열음(37)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 방식 역시 옷이다. 손열음은 지난해 독주회 1부에서 푸른색, 2부에는 노란색 드레스를 입었다. 둘을 합치면 자연스럽게 우크라이나 국기 색상이 된다.

    마지막으로 클래식 연주자 역시 명품 산업의 얼굴이다. 오랫동안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의 드레스를 입었던 바이올리니스트 아네조피 무터(59), 롤렉스 시계의 모델인 피아니스트 랑랑(40)이 대표적이다. 음악 칼럼니스트 한정호씨는 "클래식 연주자들은 '보는 대상'이 아니라 '듣는 대상'이라는 뿌리 깊은 통념이 흔들린다는 방증"이라며 "패션 산업과 클래식은 고급 이미지나 소비자층에 교집합이 존재하기 때문에 협력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기고자 :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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