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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밉상서 지지율 60% 英군주로… '손자 바보'로 이미지 변신

    파리=정철환 특파원

    발행일 : 2023.05.08 / 국제 A1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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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5세에 왕좌 오른 찰스 3세

    1948년생, 75세의 왕이 세자 책봉(冊封) 65년 만에 영국의 군주로 6일(현지 시각) 공식 등극했다. 영국 왕실은 이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승하로 뒤를 이은 찰스 3세 국왕이 대관식(戴冠式·Coronation)을 통해 영국과 영연방 국가 14곳의 군주가 됐음을 공포(公布)했다.

    찰스 3세는 이날 런던 웨스트민스터사원에서 1066년 윌리엄 1세 때부터 이어진 전통 의식에 따라 대관식을 치렀다. 그가 지난해 선택한 '찰스'라는 왕명은 1685년 사망한 찰스 2세 국왕 이후 337년 만이다. 찰스 3세는 윈저 왕가(House of Windsor)의 다섯 번째 왕이기도 하다. 이 왕가는 빅토리아 여왕(1819~1901)이 독일 작센코부르크 고타 왕조의 앨버트 공과 결혼한 후 아들 에드워드 7세 때 시작됐다. '작센코부르크 고타'의 이름을 쓰다, 1차 세계대전으로 독일이 적국이 되자 당시 국왕 조지 5세가 별궁 윈저성의 이름을 따 '윈저 왕가'로 개명했다.

    찰스 3세는 왕위에 오르기까지 길었던 세월만큼 논란도 많았다.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와 아버지 필립 공은 대영제국의 쇠락 속에서도 자제력과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던 '영국 정신'의 상징이었다. 찰스 3세는 그런 부모의 그늘에 항상 조금씩 가려져 있었다. 그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때로 유약해 보이기까지 했다. 2차 대전 참전 용사이자 훤칠한 미남인 아버지와 종종 비교됐고, 엘리자베스 여왕의 자애롭고 기품 있는 매력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의 운명을 바꾼 것은 다이애나와의 만남이었다. 케임브리지 대학 졸업 후 1976년까지 영국 해군 조종사로 복무한 그는 이듬해 존 스펜서 백작의 셋째 딸 다이애나를 만났고, 이내 연인 관계가 됐다. 1981년 2월,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세기의 결혼'으로 불리며 전 세계에 '영국 왕실 신드롬'을 일으켰다. 찰스 3세와 다이애나 왕세자빈 부부는 세계 최고의 유명 인사가 됐다.

    그러나 이 결혼은 찰스 3세를 나락으로 몰아간 계기이기도 했다. 다이애나는 왕실의 답답한 분위기를 못 참았고, 찰스 3세는 자신보다 다이애나가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것을 싫어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멀어지며 찰스 3세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 온 커밀라 파커 볼스와 불륜에 빠졌다. 결국 찰스 3세와 다이애나는 결혼 10년여 만인 1992년 별거에 들어갔고, 1996년 이혼했다. 이듬해 다이애나가 프랑스 파리에서 교통사고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자 영국 국민은 물론 세계인의 분노가 찰스 3세에게 쏟아졌다. 영국 왕실의 지지도 하락세와 군주제 폐지 여론도 이때부터 본격화했다. 그 모든 책임의 중심에 찰스 3세가 있었다.

    찰스 3세는 묵묵히 왕세자 역할을 하면서 세상의 여론이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8년여를 인내해 2005년 커밀라와 재혼에도 성공했다.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손이 아버지 찰스 3세를 변함없이 지지한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윌리엄 왕세손의 결혼과 뒤이은 손자·손녀들의 탄생 과정에서 찰스 3세는 인자한 아버지이자 '손자 바보'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였다. 또 노쇠한 부모를 대신해 왕실 행사의 전면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대중적 이미지가 크게 개선됐다.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보호, 동물권 존중 등 진보적 사회 개혁 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현대적 왕실의 역할 모델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찰스 3세는 대관식에서 "하느님의 이름으로, 그의 본보기로서 나는 섬김받지 않고 섬길 것"이라고 했다. 그는 대관식 전날 버킹엄궁 앞에 깜짝 등장해 왕실 팬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윌리엄 왕세자는 케이트 왕세자빈과 지하철을 타고 소호의 한 펍(pub)에 들러 시민들과 함께 생맥주를 마시기도 했다.

    최근 BBC 여론조사에서 영국 국민의 군주제 지지율은 62%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 찰스 3세가 '잘하고 있다'는 답변은 60%로, '잘 못하고 있다(14%)'의 4배를 넘었다. 어머니인 엘리자베스 2세 여왕보다 못하지만, '지지율 과반'은 지켜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관식 다음 날 영국 곳곳에서는 점심시간을 이용해 새 군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시민들의 거리 파티가 벌어졌다. 영국 왕실은 이날 "찰스 3세와 커밀라 왕비는 대관식을 영광스럽게 만들어준 이들과 런던 및 그 밖의 지역에서 큰 지지를 보내준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는 공식 반응을 내놨다.
    기고자 : 파리=정철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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