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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암컷들

    김민정 기자

    발행일 : 2023.05.06 / Books A1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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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시 쿡 지음조은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496쪽|2만2000원

    '적극적인 수컷과 소극적인 암컷'이란 이분법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1871년 암수의 차이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거의 모든 동물은 수놈의 열정이 암놈보다 강하다. 반면에 암컷은 극소수 예외를 제외하면 수컷보다 덜 열심이다. 암컷은 수줍음이 많다." 수놈을 활동적 지도자, 구애자이자 진화를 끌고 가는 주체로, 암놈을 어미 역할을 하는 수동적 존재로 본 다윈의 성선택 이론은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암컷들(원제 Bitch)'은 영국의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자이자 옥스퍼드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한 루시 쿡이 전통적 관점에 반기를 든 책이다. 암수에 대한 다윈의 이론이 19세기 가부장적 시대의 산물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점박이하이에나 암컷에게 소극적으로 살아야 할 이유를 피력해보길. 아마 개처럼 물어뜯은 다음 내뱉으며 면전에서 비웃을 것"이라고 일갈한다. 그러면서 "그저 다윈은 암컷의 진면목을 볼 수 없었거나 아니면 그러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라고 지적한다.

    쿡은 이를 입증하기 위해 마다가스카르의 정글과 케냐의 평원, 하와이와 캐나다의 바다 등을 찾아다니며 이전 이론과 달리 암컷을 '재정의'하고 있는 연구자들과 만난다. 음경이 달린 암컷 두더지와 점박이하이에나 등 암수 이분법을 파괴하는 성적 모호성을 가진 종을 비롯해 바람둥이 암사자, 암컷끼리 커플을 이루는 앨버트로스, 여족장 범고래 등 수컷보다 방탕하고 생존을 위한 투사로 살아가며 무리 위에 군림하는 자연계 암컷들의 사례를 소개한다. 저자는 이를 통해 "동물 암컷은 수컷만큼이나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경쟁심이 강하며 적극적, 공격적이고 우세하고 역동적이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특히 남성은 '난잡한' 짝짓기로 진화적 이익을 얻고 여성은 일부일처제에서 이익을 얻는다는 '신화'를 뒤집는 사례들을 제시한다. 자연의 수많은 암컷 동물이 여러 파트너와 짝짓기를 하는 '바람둥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동물 중 일부일처제 사회는 7%뿐. 난교로 유명한 암사자 중에는 발정 기간 하루에 최다 100번까지 여러 수컷과 교미한 기록도 있다. 암새의 90%는 일상적으로 여러 수컷과 교미한다. 대표적 사례로 동부요정굴뚝새는 둥지에서 키우는 새끼 중 4분의 3이 파트너가 아닌 다른 수컷의 새끼로 판명 났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암컷은 수컷의 선택을 받는 수동적 존재라는 공식을 깨는 사례도 많다. 다윈의 이론에 따르면 짝짓기를 위해 싸워야 하는 것은 수컷뿐이다. 하지만 영양이나 유인원 암컷은 수컷과 짝짓기하려고 죽음을 불사하며 서로 싸운다. 토피영양은 1년 중 단 하루인 발정기에 혈투를 벌여 수컷을 차지한다. 서부저지고릴라는 교미 중인 서열 낮은 암컷을 방해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들의 강한 승부욕은 암컷은 경쟁심이 없다는 가정 아래 예외 취급을 당해왔지만, 실상은 주의 깊게 보지 않은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편견을 버리면 암컷이 명령을 내리고 지배하는 동물 사회도 이상할 것이 없다. 저자에 따르면 "마다가스카르는 권력 맛 좀 아는 계집들의 천국"이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발견되는 영장류 집단인 여우원숭이는 전체 111종 중 90%가 암컷이 명령을 내리고 지배한다. 번식기가 짧아 암컷이 귀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저자가 만난 한 과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왜 암컷이 지배하면 안 되는 거죠? 번식 비용을 암컷이 부담하는 태반성 포유류에서 암컷이 수컷보다 유리한 상황이 어떻게 없겠습니까." 물고기의 3분의 2는 수컷이 새끼를 돌보고 암컷은 알만 낳고 떠난다는 것과, 수컷이 알을 돌보는 동안 영토를 방어하는 호전적 암컷 열대어 사례 등을 통해 '모성 신화'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도 책에 썼듯 진화 생물학 분야에서 이런 문제 제기는 오랫동안 '이단'으로 취급돼 왔다. 책 내용 대부분은 종전에 학교에서 배운 내용과 배치돼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성에 대한 다윈의 이론에 도전하는 과학자가 점차 늘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책을 통해 "암컷들의 신선하고 다양한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여성을 시대에 뒤떨어진 엄한 규칙과 기대가 아닌 다른 한 가지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여성의 역동적이고 다양한 본성입니다."
    기고자 : 김민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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