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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2030] 흑인 팅커벨과 다운증후군 바비

    백수진 문화부 기자

    발행일 : 2023.05.05 / 여론/독자 A2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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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이지리아계 미국 작가를 인터뷰하며 나의 무지를 깨달았던 적이 있다. '아프리카판 해리포터'라 불리는 소설 '피와 뼈의 아이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토미 아데예미는 어린 시절 열렬한 독서광이었지만 흑인이 주요 인물로 등장하는 소설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했다. 심지어 그가 어릴 적 쓴 소설 속 주인공들조차 죄다 백인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꽤 놀랐다. 어린 시절 보는 동화나 만화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아데예미는 서아프리카 가상의 왕국을 배경으로 검은 피부와 하얀 머리칼의 소녀가 마법의 힘으로 차별과 폭력을 이겨내는 모험기를 그렸다. 그는 "지금까지 누구도 흑인을 신성하거나 마법의 힘을 가진 캐릭터로 묘사한 적이 없다는 걸 깨닫고 소설을 구상하게 됐다"고 했다.

    최근 디즈니플러스가 공개한 영화 '피터팬 & 웬디'의 예고편을 보며 아데예미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요정 팅커벨 역에 흑인 배우 야라 샤히디가 캐스팅되면서 '블랙 워싱(흑인 배우가 백인이나 아시아인 역할을 맡는 것)' 논란이 불거졌다. 그전에도 디즈니는 '인어공주'에 흑인 배우 핼리 베일리, '백설공주'에 라틴계 배우 레이철 지글러를 캐스팅하며 원작을 훼손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디즈니가 전 세계 어린이들에 미치는 막강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모든 어린이가 만화·영화 속에서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다. 하지만 캐릭터의 인종을 바꾸는 것이 최선의 방법인지는 의문이다. 유색인종 커뮤니티에서도 디즈니의 '블랙 워싱'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 흑인이나 아시아인이 주인공인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보다 기존에 있는 캐릭터에 흑인 배우를 캐스팅하는 "게으른 방법"을 택했다는 것이다. 백인 중심의 제작 환경은 그대로인 채 눈에 띄는 배우 캐스팅만 바꿔서 자신들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과시하려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최근 완구업체 마텔은 미국 국립다운증후군협회와 협력해 다운증후군 바비 인형을 출시했다. 마텔은 기존의 8등신 바비 인형이 실제 여성들을 대표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수용하고 통통한 바비, 유색인종 바비, 보청기나 의족을 착용한 바비 등을 출시해왔다. 사회적 낙인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생김새의 인형이나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바꿀 수 없는 흐름이다.

    이제 우리나라로 시선을 돌려보자. 다문화 가정 출신 캐릭터가 주연을 맡은 작품을 본 적이 있나. 겨우 떠오르는 건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속 외국인 노동자 '알리' 정도다. 오히려 드라마 속에서 타국의 역사 왜곡과 타문화에 대한 비하, 인종차별적인 묘사로 태국·베트남·인도네시아·수리남 등에서 반발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K콘텐츠의 세계화'만 자랑했지, 정작 국내 영화나 드라마가 얼마나 다양한 인구 구성을 반영했는지 우리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미국의 '블랙 워싱'을 비난할 자격이 있을까.
    기고자 : 백수진 문화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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