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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옆에 현대 건축… 조화의 비결은 '깊은 처마'에 있었네

    안성=채민기 기자

    발행일 : 2023.05.03 / 문화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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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현대 건축의 공존법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올 초 경기 안성에 완공된 주택은 한 가지 가능성을 보여준다. 한 집의 본채는 양옥, 별채는 한옥이다. 현대식 본채는 전통 건축의 형태를 모방하지 않았고, 한옥 별채는 현대식 디자인으로 개량하지 않았다. 외양이 달라도 서로 짝이 되는 이란성 쌍둥이 주택이다.

    개인 주택 한 집에 전통·현대 건축이 공존하는 사례는 드물다. 건축주가 처음 이 자리에 집을 지으려던 것은 15년쯤 전이었다. 명지대 건축학부 남수현 교수가 설계를 거의 마쳤을 때 건축주가 지방 근무를 하게 됐다. 자녀들까지 외지에서 공부하게 되자 계획을 바꿔 한옥 주말주택(설계 김왕직)을 먼저 지었다. 그때 미뤘던 현대식 주택을 이번에 남 교수의 새로운 디자인(허가 실무와 감리는 이경준 건축사)으로 완공했다.

    최근 이곳에서 만난 남수현 교수는 "50평쯤 되는 작은 집을 한옥과 공존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고 했다. 열쇠는 경사 지붕이었다. 지붕이 평평하면 누수를 비롯한 관리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은 반면 경사 지붕은 처마가 있어 햇빛과 비바람을 걸러 주고 형태 면에서도 전통 건축과 연속성이 높다는 것이다.

    단순한 듯한 지붕 디자인은 보기보다 깊은 고민의 결과다. 우선 물매(경사도)가 완만해서 지붕이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렇게 몸을 낮춰서 한옥과 맞서는 모양새를 피했다. 처마의 선이 건물의 외곽선과 평행하지 않고 비스듬하게 이어지는 점도 특징. 남 교수는 "실내에서 내다보는 위치에 따라 처마 깊이가 달라진다"면서 "단층 건물에서 표현하기 어려웠던 입체적 공간감을 살려 주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난점도 있었다. 경사 지붕을 쓰면 건물이 지붕과 나머지로 나뉘어 보이는 시각적 분절이 생길 수 있다. 남 교수는 "껑충한 갓처럼 지붕을 얹으면 자칫 엉성해 보이기 쉽다"고 했다. 한옥의 기법에서 힌트를 얻었다. 전통 건축의 풍판(風板·비바람을 막기 위해 지붕 측면에 덧대는 널빤지)을 변용해 지붕 디자인에 적용했다. 지붕 일부분의 끝을 풍판처럼 아래로 꺾어 땅까지 연결했다. 지붕이 집을 살짝 품는 듯한 디자인이다.

    지붕이 땅으로 연결된 곳은 두 군데. 도로에서 뒷마당으로 진입하는 지점과, 뒷마당에서 앞마당으로 연결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지붕은 출입문과 터널의 모습이 돼서 성격이 다른 공간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법규도 고민이었다. 현행법상 처마가 건물 외벽 중심선에서 1m 이상 돌출하면 그 아래는 실내 공간으로 간주된다. 쉽게 말해 건물을 허용된 최대 면적으로 지으면 처마를 1m밖에 빼지 못한다는 뜻이다. '처마 깊은 집'을 만들기 위해 발상을 전환했다. 처마를 길게 돌출시킨다는 시각에서 접근하는 대신, 실내 면적을 건축 가능한 규모보다 줄여 건물을 지붕 안쪽으로 물린 것이다. 깊어진 처마 아래는 안과 밖의 중간 지대다. 테이블이나 운동 기구를 두고 다양하게 활용한다.

    처마 깊이를 제한하는 법규는 불법 증축을 막기 위해 생겼으리라는 것이 남 교수의 추정이다. 처마를 길게 내놓고 아래를 실내 공간으로 무단 변경하지 못하도록 미리 막았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처마의 좋은 점이 많은 만큼, 법규를 당장 바꾸지 못하더라도 (완화 가능성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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