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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덕이 만난 사람] '경제학 레시피' 펴낸 장하준

    김윤덕 선임기자

    발행일 : 2023.05.01 / 여론/독자 A2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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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저임금 없는 스웨덴, 비정규직 많은 네덜란드가 우리보다 행복한 이유

    "메뚜기도 한철이라…(웃음)."

    말은 싱겁게 했지만, 장하준은 책 홍보에 진심이었다. 10년 만에 낸 새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Edible Economics)'를 들고 런던에서 날아온 그는 한 달간 전국을 돌며 독자와 만났다. 마늘, 멸치 등 식재료를 차용했을 뿐, 이전 저술과 논지가 별반 다르지 않은 책을 낸 것에 대해 그는 "경제 문맹 퇴치"를 위해서라고 했다. 김대중 정부 때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부친 장재식 일화가 흥미롭다.

    문재인 '소주성' 평가하고 싶지 않다

    ―케임브리지대서 런던대로 옮겼더라.

    "강의 부담 작고 연봉도 많이 준대서."

    ―그래도 '켐대'라는 명예가….

    "그것도 30년 넘게 하면 별로 감동스럽지 않다(웃음)."

    ―SOAS 런던대던데.

    "스쿨 오브 오리엔탈&아프리칸 스터디(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라고 식민지 관리들 교육기관으로 만든 건데, 지금은 반식민지 좌파 지식인들이 주를 이룬다. 거기 가니까 내가 굉장한 우파가 됐다. 사실 좌파도 아니지만."

    ―그럼 어느 편인가.

    "정의의 편?(웃음) 우리처럼 진영 논리 심한 곳에선 자기네가 생각하는 것에서 하나라도 어긋나면 쟤는 사회주의자, 쟤는 파쇼라 공격한다."

    ―장하준은 좌우가 다 싫어하더라. 박정희 산업 정책을 높이 평가해서, 시장 만능을 혐오해서.

    "경제학에 9개 주요 학파가 있지만 어느 하나로 분석할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나는 좌로는 마르크스부터 우로는 하이에크까지 여러 이론을 혼종 교배한다."

    ―문 정부 정책실장 장하성과 사촌이라 '소주성'을 장하준이 설계했다고 아는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하! 솔직히 난 소주성이 정확히 뭔지 모르겠다. 임금 주도 성장이란 이론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자영업자가 많으니까 이름을 소득 주도 성장으로 붙인 것 같다. 하지만 그걸 제대로 한 건지 잘 모르겠고, 평가하고 싶지도 않다."

    ―부친은 DJ 때 산자부 장관을 지냈다.

    "실용성을 늘 강조하셨다. 경제학자들이 무슨 모델을 만들어서 미래를 예측해오는데 정책 입안자 처지에서 보면 말이 안 되는 게 많더라고. 국세청에도 오래 계셨는데, 교수들한테 용역 줘서 세수 추계를 해오라고 했더니 25년 경력의 하급 주사(主事)들이 연필 꽁다리 빨면서 대강 감으로 써 온 숫자보다 못하더란다. 고상한 말로 암묵지(Tacit knowledge). 이론만 믿지 말고 경험에서 나온 지식을 중시하란 말씀이었다."

    한 세대가 코인·부동산에 올인하는 나라

    ―경제 문맹 퇴치를 위해 책을 쓴다고 했지만 유튜브엔 부동산, 주식 노하우를 알려주는 채널이 넘쳐난다.

    "한편으론 좋고 한편으론 슬픈 얘기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을 통해 경제 흐름을 주시하고 이해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 어느 나라도 한 세대가 코인과 부동산에 올인하는 경우는 없다. 희망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럽 나라들처럼 어떤 사람은 기술고등학교 다니다 벤츠에 취직해서 기름밥을 먹어도 2억, 3억 버는 길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인 서울이나 대기업 취직에 실패하면 죄다 바닥으로 내몰리니 코인에 올인한다."

    ―현대차 생산직 공모 열기로 블루칼라에 대한 인식이 바뀌나, 기대가 있었다.

    "케임브리지 있을 때 박사과정에 들어온 독일 학생을 만났는데 나이가 많았다. 10여 년 공장 다니다 경영에 흥미를 느껴 뒤늦게 대학에 갔는데 경제학이 더 재미있어서 박사과정까지 오게 됐단다. 다양한 길, 기회가 있어야 과열 경쟁이 없어진다. 딱 한 가지 게임만 있으면 상위 10% 빼고는 다 불행하다."

    ―그걸 국가가 도와줘야 한다는 건가.

    "입시 등 교육과정도 나라가 정하고, 정부가 어떤 산업 정책을 추진하느냐에 따라 좋은 직업에 대한 개념도 바뀐다."

    ―산업 정책과 국가의 역할을 늘 강조한다.

    "현대 IT 경제를 만든 게 미국 정부다. 반도체도 미국 해군에서 돈 대서 개발했다. 캘리포니아가 영화 산업으로 큰 것 같지만 실은 국방 산업으로 성장했다. LA와 샌디에이고가 주요 군항이었고 자연히 항공기, 전자 산업 연구 기업이 생겨났다. 거기서 나온 게 실리콘밸리다. 정부가 판을 깔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금융 폭탄 곳곳에

    ―엔데믹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세계 경제가 침체일로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제도를 바꾸지 않고 이자율 0%로 위기를 틀어막은 대가다. 0%라는 건 프로야구팀에서 1할 치는 선수나 3할 치는 선수나 연봉을 똑같이 주겠다는 것이다. 가격 기능을 마비시킨 거다. 근데 갑자기 이자율이 5%로 뛰니까 그 이하로 수익 내던 것이 다 부실이 된 거다."

    ―최근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도 그 여파일까.

    "SVB는 세상에서 제일 안전하다는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이자율이 확 오르니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은행 부실로 이어졌다. 안전하다고 사놓은 자산마저 구멍이 뻥뻥 나고 있는 거다. 나는 지금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묻혀 있는 상태라고 본다."

    ―2008년에 어떻게 대처해야 했나.

    "대공황 때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은 돈을 풀어 인프라에 투자한 것이지만 더 중요한 건 제도 개혁이었다. 투자은행·상업은행을 분리하고, 증권거래위원회(SEC)를 만들어서 시장을 규제하고, 예금보험을 만들고 사회보장을 도입했다. 그런데 2008년엔 은행들이 자기자본 비율 올리고 파생 상품을 규제하는 정도만 했다. 자본주의 역사에 없는 0%대 이자율과 양적 완화로 떠받쳤다. 자산에 엄청난 거품이 낀 것이다."

    ―금융의 단기화도 문제라고 했다.

    "팬데믹 때 영국과 미국은 경제가 곤두박질쳤다. GDP(국민총생산)가 10%씩 마이너스 성장하는데 주식시장은 연일 상종가를 쳤다. 이러니 기업들이 단기주의 경영을 하고, 1년 안에 성과를 못 내면 주식을 팔아치우는 주주들 힘이 세졌다. 자사주를 매입해서라도 돈을 벌게 해달라고 하니 기업의 장기 투자가 어려워졌다."

    ―대안이 있나?

    "미국은 반도체 보조금을 받는 동안 기업이 자사주 매입을 할 수 없게 했다. 장기적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도 마련해야 한다. 테뉴어 보팅(Tenure Voting)이라고, 주식을 오래 갖고 있으면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처럼."

    스웨덴에는 최저임금이 없다

    ―장하준은 복지 만능주의자인가.

    "팬데믹을 거치며 GDP 대비 복지 지출이 15%까지 늘었지만 OECD 평균인 21%엔 미치지 못한다. 복지에 인색한 미국도 최근 23%로 급증했다. 이걸 늘리지 않으면 사회가 어려워진다. 재기할 기회도 없고, 노동시장도 불안해지고. 복지를 잘하면 비정규직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슨 뜻인가?

    "우리나라 임시 계약직 비율이 28.3%로 OECD 1위다. 네덜란드는 27.4%로 우리만큼 높은데도 거기선 비정규직이 문제 되지 않는다. 복지가 받쳐줘서 실직하더라도 굶어 죽지 않으니까.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해서라도 복지국가로 가야 한다."

    ―증세를 해야 한다는 뜻인가.

    "오른쪽 주머니는 나 혼자 쓰고 왼쪽 주머니는 같이 쓰는 돈이라고 하자. 복지는 오른쪽 주머니 돈을 왼쪽으로 옮겨서 교육 보험, 노후 보험 같은 걸 공동 구매하자는 거다. 조세는 부담이 아니다. 우리가 제공받는 공공 서비스에 대한 구독료지."

    ―69시간 근무제로 시끄러웠다. 장기 휴가 독려를 야당이 왜곡한 측면이 있다.

    "스웨덴엔 최저임금이 없다. 노조가 강하고 합리적이라 부당한 고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상관들 눈치 보며 일하는 문화라 장기 휴가 같은 게 정부가 바라는 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기업 특성에 따라 노동 시간을 조정해야지, 국가가 52시간으로 일괄 규정하는 게 말이 되나.

    "윤 대통령도 말씀하셨지만 한 주에 60시간 이상 일하면 과로사 할 확률 높아진다. 운전 잘하는 사람은 시속 100킬로로 달려도 된다. 평균적으로 그게 안 되니 50킬로로 제한하는 거다. 유연성을 도입하고 싶다면 52시간이든 55시간이든 기준을 정해놓고 예외 규정을 두면 된다."

    ―윤 정부 경제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감세를 통해 기업 활동을 진작한다는 건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는 얘기다. 중요한 건 정부가 걷어가는 만큼 서비스를 제공하느냐 하는 문제다. 기업들은 이만큼 세금을 내니 이런 걸 개선해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재정 긴축도 마찬가지다. 결국 복지, 교육 분야부터 줄일 텐데 저출생, 노인 빈곤, 자살률만 심해질 것이다."

    ―1분에 1억씩 나랏빚이 는다는데.

    "한국은 OECD가 적극 재정을 권장할 만큼 정부 재정이 건전한 나라다. GDP 대비 국가 부채가 40%대로 스웨덴과 큰 차이 안 난다. 케인스가 말했듯 정부가 돈을 쓰면 재정은 적자여도 경기는 회복되고, 세수가 늘 수 있다. 생산성을 높이되 노동시간을 줄이고, 공공 소비를 늘리는 방식으로 정책 방향을 바꿔야 한다."

    ―미·중 반도체 싸움에서 대한민국은 어떻게 운신해야 할까.

    "미국과 중국의 경제는 샴쌍둥이와 같다. 미국에서 중국 소비재를 수입하지 않으면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기업이 중국에 투자해 아이폰도 만들고 운동화도 만들었는데 갑자기 그걸 어떻게 옮기나. 중국 또한 보유한 미국 국채만 13%라 관계를 절연할 수 없다. 다만 미국은 군사 패권이 중요하니 초고급 반도체에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찍어 누르려는 거다."

    ―결국 줄타기인가?

    "어느 한쪽에 붙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일본은 GDP 대비 무역 의존도가 25% 안팎이라 수틀리면 중국과 안 놀아도 되지만, 60%대인 우린 그럴 수 없다. 결국 실리 외교로 풀어야 하지 않겠나. 중국에 가면 네가 최고라 하고, 미국 가면 네가 최고라 하고, 하하!"

    ☞장하준

    1963년생으로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케임브리지대 교수로 임용됐고, 2022년 런던대로 옮겼다.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학자에게 주는 군나르 뮈르달 상, 바실리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 수상했다. 전 세계 100만부 이상 팔린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를 비롯해 '사다리 걷어차기'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17권의 책을 썼다.
    기고자 : 김윤덕 선임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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