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검색목록 > 기사상세보기
타이틀

[신문은 선생님] [클래식 따라잡기] 카운터테너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발행일 : 2023.05.01 / 특집 A18 면

    종이신문보기
    ▲ 종이신문보기

    여성 고음 내는 남성 성악가… 옛날(16~19세기)엔 변성기 막는 수술도

    최근 클래식 팬들에게 부쩍 친숙해진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카운터테너'입니다. 카운터테너는 남성이지만 가성 등을 이용하는 발성법으로 여성 목소리를 내는 성악가입니다. 카운터테너는 테너나 바리톤 등 다른 성부에 비해 노래하는 사람이 그다지 많지 않고 공연 무대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었어요. 하지만 최근 성악 경연 TV 프로그램 등에 카운터테너들이 출연하면서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올해 2월 내한한 베르사유 왕립 오페라 오케스트라는 세 성악가와 함께하는 '스리(3) 카운터 테너' 전국 투어 공연을 했고, 3월에는 세계 정상급 카운터테너 중 한 명인 필리프 자루스키 음악회가 열리기도 했어요.

    카운터테너라는 말은 유럽에서 13세기 이후 다성부 음악(여러 성부가 한꺼번에 연주하거나 노래하는 음악)이 등장하면서 남성 목소리 중 테너보다 더 높은 멜로디 파트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어요. 카운터테너를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카스트라토'라는 단어가 나오는데요, '거세 가수'라는 뜻입니다.

    성가대에서 노래하거나 목소리가 좋은 소년들이 계속해서 높은 여성 소리를 내도록 변성기 전 인위적 수술로 거세했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카스트라토는 성인이 돼서도 여성의 알토나 메조소프라노 목소리를 유지했어요. 성장하면서 폐가 커지고 호흡량이 많아져 여성보다 더 강한 소리를 낼 수도 있었지요.

    본격적으로 카스트라토 가수가 등장한 것은 16세기 가톨릭교회가 여성이 공공 장소에서 노래 부르는 것을 금지하면서였습니다. 이들은 극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흥밋거리가 돼 큰 인기를 끌었지만, 수술 중 많은 소년이 목숨을 잃고 인권이 침해되는 등 큰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카스트라토의 전성기는 빠르게 저물어 이미 19세기 초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고, 가톨릭교회는 1903년 카스트라토를 공식적으로 금지했습니다.

    영화로 유명해진 파리넬리

    역사상 가장 유명한 카스트라토는 파리넬리(1705~1782)입니다. 본명이 카를로 브로스키인 파리넬리는 이탈리아 나폴리 태생으로, 열두 살 때 카스트라토가 된 후 빠르게 노래 실력이 늘어 큰 인기를 얻었어요. 1724년 빈에서 처음 공연했고 그 후 런던에서 활동하며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1737년 스페인으로 건너가 펠리페 5세 국왕의 총애를 받았고 1759년까지 성공적으로 활동하며 부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파리넬리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계기는 제라르 코르비오 감독의 영화 '파리넬리'(1994)예요. 그의 형이자 작곡가 리카르도와 겪은 이야기, 어린 시절 카스트라토가 될 수밖에 없었던 어두운 과거와 트라우마 등이 영화에 담겨 있습니다. 또 파리넬리가 놀라운 목소리와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사로잡는 장면이 아름다운 바로크 오페라 아리아와 함께 담겨 있습니다.

    영화에는 작곡가 두 명이 등장하는데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1685~1759)과 니콜라 포르포라(1686~1768)입니다. 헨델은 당대 최고 인기와 명성을 자랑하던 음악가로 영화 하이라이트 장면에 등장하는 오페라 '리날도' 중 아리아 '울게 하소서'의 작곡가죠. 포르포라는 파리넬리와 같은 나폴리 출신으로 파리넬리를 직접 가르치기도 했고, 또 작곡가 하이든의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는 작곡가이자 교육자입니다.

    영화 속 헨델과 포르포라는 런던의 각기 다른 극장과 악단을 이끌며 라이벌로 등장해요. 두 사람 모두 파리넬리를 포함해 인기 있는 카스트라토를 위한 오페라를 다수 남겼습니다.

    델러가 변성기 후에도 알토 파트 불러 부활

    하지만 카스트라토가 숱한 논란 속에서 점차 인기를 잃고 가톨릭교회가 이를 공식 금지까지 하면서 카운터테너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어요. 그랬던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를 본격적으로 부활시킨 인물은 영국 출신 앨프리드 델러(1912~ 1979)였습니다.

    마게이트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델러는 어릴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요, 변성기가 지난 후에도 알토 파트를 부르며 공부를 계속했죠. 28세 때부터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활동한 델러는 당시 영국을 대표하던 작곡가 마이클 티펫에게 발탁돼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그 후 델러는 성악 앙상블인 '델러 콘소트'를 창단해 영국의 고음악(주로 바로크 시대 이전 음악을 당대의 악보와 악기를 고증해 연주하는 분야) 발전에 크게 공헌했습니다. 델러의 활약은 바로크와 고음악에 그치지 않고 20세기 음악까지 이르렀어요.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은 자신의 오페라 '한여름 밤의 꿈'의 오베론 역을 델러에게 맡겼고, 이 작품은 1960년 초연됐습니다.

    델러는 다음 세대 카운터테너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델러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았고 현재는 지휘자로 유명한 레네 야콥스를 비롯해 제임스 보먼(1941~2023), 마이클 챈스 등이 직·간접으로 델러의 연주에 영감을 받은 카운터테너입니다. 카운터테너의 레퍼토리는 매우 다양한데요. 대중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친숙해진 인물도 많습니다. 미국의 데렉 리 라진은 영화 '파리넬리' 사운드 트랙을 노래하며 알려졌어요. 카운터테너의 대명사라는 독일의 안드레아스 숄은 자작곡 '백합처럼 하얀(White as Lilies)'이 국내 광고 음악으로 쓰이면서 한국 청중에게 인기를 얻었습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영화 '모노노케 히메' 주제곡을 부른 요시카즈 메라도 에릭 사티의 '당신을 원해요(Je te veux)'를 불러 한 광고에 나오면서 목소리를 알렸습니다.

    조금은 낯설지만 묘한 매력이 있는 카운터테너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무궁무진합니다. 이들의 노래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지식을 한 뼘 넓히는 경험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고자 : 김주영 피아니스트·대원문화재단 전문위원
    장르 : 고정물
    본문자수 : 2852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
    인쇄 라인 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