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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하프마라톤 2023] 신청자 60%가 2030… MZ 놀이터가 된 하프마라톤

    김민기 기자

    발행일 : 2023.05.01 / 종합 A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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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년만에 돌아온 서울하프마라톤
    10~20명씩 무리 지은 젊은이들
    '크루' 동료들과 축제처럼 즐겨

    30일 오전 8시.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을 출발한 거대한 인파가 세종대로를 지나 서소문로로 향했다. 봄날의 달리기 축제 '2023 서울하프마라톤(조선일보사 주최)' 참가자 1만1000여 명이었다. 길가에는 중간중간 형형색색 깃발이 10여 개 눈에 띄었다. MZ(밀레니얼Z)세대로 통하는 20대·30대 젊은이들이 주로 모인 '러닝 크루'(running crew·달리기 팀)를 알리는 표지였다. 이번 하프마라톤 신청자 1만2729명 중 '2030세대'는 7551명. 60%에 달한다. 상당수가 '크루' 동료들과 함께 신청서를 냈다. 이들은 같은 옷을 맞춰 입고 대회장 주변을 돌아다니며 '셀카'를 찍고 마라톤 대회를 축제처럼 즐겼다.

    MZ세대에게 러닝 크루는 익숙한 풍경이다. 카카오톡 오픈(공개) 채팅방이나 앱 등을 통해 거주지나 훈련 시간 등 자기 환경에 맞는 크루에 가입해서 함께 달린다. 숙련자들이 초심자에게 주법(走法)이나 호흡법을 알려주며 정착을 돕는다. 그러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마라톤은 인생의 축소판이 아니다. 묵묵히 혼자서 끝까지 가야 하는 수행(修行)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힘 닿는 데까지 누리는 문화적 체험이다.

    ◇멀리 가고 싶으면 함께 달려라

    서울 구로구에 사는 직장인 이예름(34)씨는 이날 하프(21.0975㎞) 코스를 2시간 20분 34초에 완주했다. 1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두도 못 내던 일. 달리기를 시작한 건 작년 3월이다. 경기 양주시 사패산 등반에 나섰는데, 1시간가량 늦게 출발한 친구가 금세 따라잡는 걸 보고 놀랐다. 이씨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올라왔느냐"고 물으니 "평소 러닝을 해 자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자극을 받아 혼자 달리기 시작했지만 5㎞ 주파도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지인 이필상(36)씨가 이씨가 달리기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긱스 러닝크루'에 들어오라고 제안했다. 30여 회원과 함께 달리기 시작하니 어렵던 마라톤이 한결 편해졌다. 크루 회원들이 호흡법과 자세를 알려줬고 이씨도 "잘 뛰고 싶다. 도와 달라"면서 간청하니 학습 속도가 빨라졌다.

    자신감은 붙었지만 10㎞의 벽은 높았다. 작년 10월 한 마라톤 대회에서 10㎞를 신청해봤지만 불안했다. 그에게 크루 동료 김혜민(29)씨가 페이서(pacer·달리는 속도 조절자)를 자처했다. 김씨는 마라톤 풀코스도 완주한 베테랑. 김씨는 이씨와 함께 달리며 "언니, 다리 괜찮아? 지금은 속도 늦춰도 돼" "호흡 다시 잡아" 등 적재적소 조언을 건넸다. 그 덕에 이씨는 자신없던 10㎞ 구간을 1시간 1분 45초에 완주할 수 있었다. 이후론 페이스를 높였다. 마라톤 대회를 찾아다니며 10㎞는 물론 하프 코스도 정복했다. 달리기의 매력에 빠져 아버지를 설득해 함께 대회에 나서기도 했다. 이씨는 "처음엔 (잘 달리지 못하면) 나약하다는 인상을 줄까 봐 혼자 달려보려 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주위 도움을 받는 게 행복한 경험이란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멀리 가려면 함께해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됐어요."

    ◇재미와 친목, 건강까지 '1석3조'

    MZ러너들에게 달리기는 게임이자 놀이다. 재미가 있어야 한다. 240여 회원을 가진 크루 STRC는 서울과기대생들이 주축이다. 이번 대회에도 38명이 10㎞ 부문을 신청했는데, 낙오자 없이 완주했다. 크루장 이성혁(24·서울과기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씨는 "대회 참가 회원 중 5명은 평소 풀코스(42.195㎞)를 뛰는데 이번에는 아직 달리기에 익숙지 않은 동료 회원들을 위해 페이서 역할을 자처했다"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10㎞를 뛴 초보 회원들은 자기 목표보다 3~5분씩 기록을 단축했다. 성취감에 "나도 해낼 수 있구나"라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회원들도 있었다.

    이씨는 2019년 군(軍) 입대 후 소대장 권유로 매일 5㎞씩 뛰다 달리는 쾌감에 빠졌다. 나중엔 되레 소대장에게 "오늘은 안 뛰십니까?"라고 조를 정도가 됐다. 군 복무 시절 달려서 줄인 체중이 18㎏이라고 했다. 이듬해 전역해 STRC에 가입하고, 크루장까지 맡은 뒤론 '어떻게 하면 회원들이 달리기에 흥미를 붙일 수 있을지' 항상 고민한다. 재미를 주기 위해 무작정 달리게만 하는 게 아니라, 뒤따라 달리기 시작한 사람이 앞선 사람을 잡는 '꼬리 잡기' 놀이도 한다. '400m 트랙 달리기' 등 과제가 적힌 게임판을 만들고 주사위를 굴리는 방식도 기획했다. 이씨는 "반응이 좋아서 더 다양한 오락거리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봉사에 환경 정리까지 영역 확대

    러닝크루 뛰뛰빵빵은 정회원만 150여 명. 거대 그룹이다. 이들은 달리기를 통해 만나 지금은 불우이웃 돕기 활동까지 함께한다. 회장 임범준(39·서울 종로구)씨는 2018년 '서울에 아름다운 곳이 이렇게 많은데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는 생각에 무작정 크루를 만들었다. 책과 동영상을 참고하며 바른 달리기 자세를 익혔고, 종종 러닝 코치를 초빙해 교육 자리를 만드는 등 체계도 갖췄다. 이들은 매주 수·일요일 저녁이면 모여 5㎞를 달린다. 광화문, 남산, 한강 등 다양한 야경을 즐긴다. 지방 출신 회원들도 있다. 이들은 뛰뛰빵빵을 통해 달리면서 접하는 서울의 매력에 즐거워하고 있다. 지난해 임씨는 회원들에게 연탄 모금 운동을 제안했다. "규모도 커지고, 서로에 대해서 잘 알게 되니 '뜻깊은 일을 함께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400만원을 모아 서울 마지막 '달동네'로 통하는 서울 노원구 백사마을에서 연탄 나르기 봉사를 했다. 달리는 길 주변에 쓰레기가 보이면 줍는 플로깅(Plogging)도 크루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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