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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자사주 매입 1조달러 돌파… "경영진 배불리기" "기업가치 제고" 격돌

    곽창렬 기자

    발행일 : 2023.03.31 / W-BIZ B1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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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버핏 맞붙은 '자사주 경제학'

    올 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간에 논쟁이 벌어졌다. 발단은 바이든 대통령의 지난 2월 국정 연설이었다. 그는 부유층과 대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비판한 뒤 "그들이 공정한 몫을 내도록 하겠다"며 자사주 매입에 부과하는 세금을 현행 1%에서 4%로 올리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버핏 회장은 주주들에게 보낸 연례 서한에서 '경제 문맹자' '정치 선동가' 같은 원색적인 용어를 써가며 바이든 대통령을 비판했다.

    자사주 매입을 둘러싸고 미국 정치권과 재계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 자사주 매입은 대표적 주주 친화 정책으로 꼽힌다. 회사가 자사주를 사들이면 시장에서 유통되는 주식 물량이 줄어들어 주가가 오르고, 주주들이 받아가는 배당액도 오른다. 그래서 자사주 매입 소식이 들리면 개미 투자자들도 두 팔 벌려 환영한다. 그런데 미국 정치권에선 왜 자사주 매입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올해 美 자사주 매입 1조달러 넘어

    미국 정치권이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비판하고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S&P500 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가 8064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자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 버니 샌더스 상원 의원과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뉴욕타임스에 공동 기고문을 보내 "기업들이 스스로 거둔 이익을 자사주 매입에 투입해 경영진과 주주 배만 불리고 있어 부(富)의 불균형이 악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공방은 지난해에도 되풀이됐다. 작년 3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100억달러(약 13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발표했다. 구글의 지주회사 알파벳도 작년 1분기 130억달러(약 17조원), 2분기 700억달러(약 91조원) 규모의 자사주를 잇달아 매입했다. 페이스북의 모기업인 메타도 작년에 시가총액의 7%에 해당하는 280억달러를 자사주를 사는 데 썼다.

    그러자 작년 3월 미국 정부는 2023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자사주 매입을 억제하는 법안을 제출했다. 회사 경영진이 연간 100만달러가 넘는 자사주를 사들일 경우 1%의 특별 소비세를 부과하는 내용이다. 이 법안은 작년 8월 의회에서 통과돼 시행됐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법안이 통과되자 "자사주 매입은 미국 기업이 하는 가장 이기적인 행위 중 하나"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서도 자사주 매입 행렬은 계속되고 있다. 메타는 400억달러(약 51조9000억원), 골드만삭스는 300억달러(약 38조9000억원) 규모의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발표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올해 S&P500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사상 처음으로 1조달러(약 1298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이기적 행위" 비판 쏟아져

    기업들이 자사주를 사들이는 데는 여러 목적이 있다. 그중 하나는 주가가 저(低)평가돼 있다는 점을 알리려는 것이다. 김정민 켐벨루덴스 전무는 "자사주 매입이 진행된다고 하면 일반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이 회사 주식이 저평가돼 있다고 생각해 더 관심을 갖고 투자하게 된다"고 말했다.

    주가를 띄우는 효과도 있다. 주가는 시가총액을 주식 수로 나눈 것이므로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 주식 수가 줄어든다. 시가총액에 변함이 없다면 주가가 오르고, 주주들은 이익을 본다. 기업들이 공시에서 자사주 매입 목적을 대부분 '주가 안정을 통한 주주 가치 제고'라고 기재하는 이유다. 워런 버핏도 지난달 주주 서한에서 "주식 수가 줄어들면 여러분의 지분은 올라간다"며 "높은 가격으로 자사주 매입이 이뤄지면 그 규모가 아무리 작아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애플을 예로 들었다. 애플은 지난 2021년 자사주를 855억달러(약 111조원)어치 사들여 소각했고, 이 기간 주가는 130달러대에서 170달러대로 크게 올랐다.

    그런데도 미국 정치권이 자사주 매입을 비판하는 것은 자사주 매입의 이익이 소수 경영진과 대주주에게 집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미국의 최고경영자(CEO) 등 임원은 연봉보다는 스톡옵션(주식매수선택권)이나 주식으로 보상받는 경우가 많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이 지난 2018년 S&P500 기업 가운데 346곳의 임원 급여 자료를 받아 조사해 보니, 주식을 기준으로 지급되는 보수가 전체의 51%에 달했다. 임원 보수가 주가와 직접 연동돼 있다 보니 보수를 높이려고 무리하게 자사주를 매입한다는 의혹이 종종 나온다.

    가령 의료 보험 회사 휴매나(Humana)는 지난 2014년 말 분기 순이익이 감소한 직후 5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단행했다. 임원들은 회사의 주당 이익이 7.5달러를 넘어야 더 많은 보너스를 받게 돼 있었는데, 자사주 매입으로 주당 이익이 약 2센트 오르면서 7.5달러를 간신히 넘겼다. 덕분에 브루스 브루사드 휴매나 최고경영자는 168만달러의 보너스를 받았다. 당시 로이터 통신은 전문가를 인용해 "자사주 매입은 회사가 어려울 때도 임원들을 풍요롭게 한다"고 꼬집었다.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느라 연구·개발(R&D)이나 투자가 위축된다는 비판도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업의 자사주 매입으로 투자가 크게 감소했으며, 이로 인한 피해는 대부분 근로자가 입었다"고 했다. 래리 핑크 블랙록 최고경영자도 "자사주 매입처럼 주주들에게 수익을 즉각 돌려주는 것은 혁신이나 인재 등에 대한 투자를 막는다"고 했다.

    한국도 자사주 매입 늘어

    이에 대해 자사주 매입은 경영상 판단에 따른 정당한 행위이며, 과도한 개입은 기업과 주주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예컨대, 바이든 대통령이 셰브론 등 대형 석유 기업의 자사주 매입을 맹비난하자 시사 주간지 디애틀랜틱은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 정책을 추진하고 석유 업체에 규제를 가하는 상황에서 석유 회사들이 대규모 신규 투자를 위험하다고 보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나라도 자사주 매입 규모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자사주 매입 총액(코스피·체결 기준)이 43조원으로 전년(33조원)보다 약 30% 늘었다. 올해 들어서도 지난 10일까지 유가증권시장에서 상장사 36곳이 1조9819억원 규모의 자사주 취득을 공시해 지난해 같은 기간(1조1540억원)보다 크게 늘었다. 다만 자사주 매입을 둘러싼 논란은 아직까지 별로 없다. 미국보다 전통적인 제조 업체 비율이 높고, 임원 성과 보상이 주가와 연관된 경우도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강소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부 IT나 바이오 업계 등에서 성과와 주가를 연동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미국과 유사하게 자사주 매입을 둘러싸고 논란이 빈번해질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그래픽] S&P500 자사주 매입액 / 코스피 자사주 매입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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