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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유럽서 친환경 정책 반대하는 정치세력 약진

    성유진 기자

    발행일 : 2023.03.31 / W-BIZ B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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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정책 불만 커지자 포퓰리즘 정당들이 물어뜯기 시작했다

    지난 11일 네덜란드 정치 수도 헤이그에 국기를 거꾸로 든 농부 1만명이 모였다. 이들은 '농민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 '질소 문제는 없다' 같은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질소 감축 계획을 폐기하라"고 외치며 도심 공원을 행진했다. 지난해 정부가 '2030년 질소 배출량 절반 감축' 목표를 위해 농장을 최대 3000개 사들여 폐쇄하고 가축 수를 3분의 1가량 줄이겠다는 계획을 내놓은 이후 네덜란드 전역에서 이런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최근엔 이들을 대변하는 신생 정당 '농민-시민운동당(BBB)'이 지방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는 이변도 일어났다. 네덜란드에선 지방의원이 전국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구조라 오는 5월 BBB가 상원 75석 가운데 17석을 차지해 최대 정당으로 등극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에서 '녹색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친환경 정책이 일반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구체화하자 이에 대한 국민의 반발도 뚜렷해진 것이다. 성난 민심에 부닥친 유럽 각국이 현실론을 앞세워 친환경 목표에서 한 발씩 후퇴하면서 유럽연합(EU) 내 불협화음도 커지고 있다.

    거세지는 녹색 반발

    최근 유럽에선 급진적인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정당들의 지지도가 오르는 추세다. 작년 9월 스웨덴 총선에선 친환경 정책에 반대하는 극우 성향의 스웨덴민주당이 2위를 차지하며 원내 주요 정당으로 올라섰다. 이후 연립정부에 합류하지 않고도 의석수를 바탕으로 정부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스웨덴은 그동안 기후 문제 해결에 앞장서온 국가 중 하나지만, 이런 여파로 새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기후환경부를 폐지하고 관련 조직을 기업·에너지부 산하로 보냈다. 환경 관련 예산을 삭감하고, 친환경 연료로 평가받는 바이오연료 혼합 비율도 낮추기로 했다.

    독일에선 친환경 정책에 중점을 둔 독일 녹색당 지지율이 작년 여름 23%에서 최근 17%까지 떨어졌다. 스페인에선 극우로 분류되는 복스당이 EU의 환경정책을 앞장서 공격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민자 반대에 초점을 맞춰온 포퓰리즘 정당들의 의제가 환경 정책으로 옮겨가고 있는 과정이라고 분석한다. 급진우익분석센터의 발사 루바르다 이념연구팀장은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극우 단체들은 이제 기후 정책 문제를 표심을 얻거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주제로 여기고 있다"고 했다.

    특히 친환경 정책이 일자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순간 반감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가령 EU는 대표적인 친환경 정책으로 '내연기관 자동차 퇴출'을 추진 중인데, 유럽에서 자동차 관련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은 1300만명이 넘는다. 이 가운데 자동차 제조 일자리만 340만개로, 전체 제조업 일자리의 11.5%를 차지한다. 석탄과 석유 산업 같은 분야에서도 일자리 손실이 불가피하다. 이들 일자리는 대부분 특정 지역에 몰려 있어 고통을 분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예컨대 폴란드 남부 슐레지엔에 있는 탄광들은 이 지역에 7만개 넘는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EU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따라 폐쇄될 가능성이 크다.

    농업 등 일부 산업에선 벌써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네덜란드는 물론 벨기에, 체코, 폴란드 등에서 농업 부문 탄소 중립 목표를 두고 농부들의 저항이 노골화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시위에서 농민 단체들은 "현재 정부가 목표로 하는 온실가스 감축 방안은 사회·경제적 대학살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위에 참여한 염소 농장 운영자 리제 반룬은 로이터통신에 "우리는 이미 많은 노력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의향이 있지만, 정부는 우리에게 점점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유럽 전역에서 농업을 둘러싼 '녹색 반발'이 거세지자 최근 EU 국가들은 감축 대상이 되는 농장의 수를 줄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물론 전문가들은 녹색 전환 과정에서 새로 생겨나는 친환경 일자리가 이런 손실을 대부분 상쇄할 것으로 본다. 그러나 근로자들이 새로운 일자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혼란과 갈등이 불가피할 수밖에 없다. 유럽노동조합연구소(ETUI)는 작년 보고서에서 "온실가스를 줄이려는 계획은 다른 조치가 없다면 사회적 불평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지만 이를 해결하려는 노력은 여전히 단편적이고 구속력이 없다"며 "노동 시장 등에서 나타날 변화를 EU 차원에서 관리할 법률을 마련하고, 새로운 일자리로 전환하는 근로자를 위한 기금도 제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커지는 불협화음, 후퇴하는 목표

    국민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각국 정부의 친환경 의지도 흔들린다. 최근 독일 정부는 '2035년 내연기관 신차 판매 금지' 목표에 이의를 제기하고 이를 관철시켰다. 이 방안은 이미 작년 10월 EU 차원의 합의를 거쳤고 사실상 형식적인 승인만 남은 상황이었는데, 독일이 이를 한순간에 뒤집은 것이다. '이퓨얼(e-fuel)'이라 불리는 합성연료를 사용하는 내연기관 차는 금지해서는 안 된다는 게 독일 측의 논리다. 이퓨얼은 수소와 탄소를 합성해 만드는 연료로, 탄소를 대기 중에서 포집해 쓰기 때문에 친환경 연료로 분류된다. 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고 연소 시 여전히 오염 물질을 배출하는 단점이 있다. 한 EU 관계자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위험은 협상이 이미 타결된 법안에 대해 다른 나라들이 반대하고 나설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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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고자 : 성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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