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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조선 백자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발행일 : 2023.03.30 / 특집 A29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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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실서만 사용했던 청화백자… 아라비아産 안료(물감) 썼어요

    리움미술관에서는 오는 5월 28일까지 '조선의 백자, 군자지향(君子志向)' 특별전을 열고 있어요. '백자(白磁)'는 고령토 등 백토로 빚은 그릇에다 유약을 입혀 1300도 정도의 높은 온도로 구워낸 자기(磁器)를 말해요. 국보와 보물 185점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회는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매력을 보여주고 있어요. 조선 백자에 담긴 우리 조상의 지혜와 예술 세계를 좀 더 알아볼까요?

    왕실 직영 가마에서 생산

    15세기 조선은 고려 청자로부터 변모한 분청사기(粉靑沙器)를 제작하는 한편, 왕실에서 사용할 새로운 형태와 장식을 가진 백자를 만들기 시작했어요. 왕실에서는 백자를 임금님이 사용하는 그릇으로 채택해 왕의 권위와 상징으로 삼았고, 안정적인 수급을 위해 왕실에서 직접 백자를 생산하고 관리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왕실의 음식을 담당하는 사옹원(司饔院)에서 이 일을 맡았으며, 백자 생산에 필요한 작업장과 가마를 경기도 광주에 설치했어요. 이처럼 국가나 왕실에서 운영하는 가마를 관요(官窯)라고 부르며, 광주에 설치된 사옹원의 하부 기관을 분원(分院)이라 불러요. 광주에 설치된 분원은 왕실 제작용 백자를 오랫동안 전문적으로 생산했기 때문에 최상급 백자를 만들어냈고, 관요 백자는 사대부를 비롯한 백성이 동경하는 대상이 됐어요.

    지금도 경기도 광주에는 수백곳에 도자기 가마터가 남아 있어요. 광주는 서울과 거리도 가깝고 백토를 비롯해 땔감으로 쓸 나무가 풍부한 장점이 있었어요. 가마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백토와 땔나무를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거든요. 사옹원은 광주에서도 특히 숲이 울창한 지역을 지정받아, 백자 생산에 필요한 땔나무를 채취해 사용했지요.

    깨끗하고 정갈한 순백자

    광주에 분원이 설치되면서 백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됐어요. 백자는 장식 기법에 따라 순백자와 청화백자, 철화·동화백자로 나뉘어요. 초기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은 순백자가 주로 생산됐는데, 새 왕조가 지닌 활기찬 기운을 반영하듯 당당한 형태를 보여줘요. 절제와 검약을 미덕으로 삼았던 조선 왕실과 사대부는 간결하면서도 우아한 느낌이 드는 순백자를 선호했어요. 눈이 부시도록 깨끗한 백색을 지닌 접시와 잔, 병, 항아리 등은 초기 백자의 특징을 잘 보여줘요.

    18세기에 유행한 달항아리는 풍만하고 여유로운 모습이 마치 보름달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이에요. 예전에는 원형 항아리라는 의미의 원호(圓壺)라 불렸어요. 둥글고도 단순한 형태에서 조선 후기 순백자의 격조미가 가장 잘 나타난다고 평가돼요. 약간 찌그러진 구(球) 모양이지만, 좌우대칭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항아리의 선과 색, 형태에서 조선 사람들이 추구했던 삶의 여유로움이 잘 묻어나요. 달항아리는 왕궁의 부엌에서 기름을 담았던 저장 용기였을 것으로 짐작된답니다.

    아라비아 수입 안료로 만든 청화백자

    흰색 바탕에 푸른색 안료(물감)로 장식한 백자를 청화백자라고 해요. 푸른색 안료는 코발트를 주성분으로 하는데, 회회국(回回國)으로 불리던 아라비아에서 수입한 것이라 회회청(回回靑)으로 불리기도 했어요. 회회청은 매우 값비싼 고급 재료로 중국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웠대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왕실에서는 청화 안료를 찾으려고 갖은 노력을 했고, 만약 이를 구하는 자가 있으면 벼슬을 주거나 승진시키며 베 50필을 상으로 주겠다는 명령이 내려지기도 했어요.

    고가 안료를 사용해 만든 청화백자는 원칙적으로 왕실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어요. 어렵게 구한 청화 안료는 광주 관요에서 특별한 용도로만 사용돼 현존하는 조선 전기 청화백자가 매우 드물어요. 청화백자 장식은 궁중 전문 화가인 화원(?員)이 직접 제작에 참여해 그 수준이 매우 높았지요.

    매화·대나무 무늬 항아리와 소나무·대나무 무늬 항아리는 15세기 청화백자의 대표작이에요. 두 도자기의 표면에 그려진 매화와 소나무, 대나무는 지조와 절개, 군자의 상징으로 조선 시대 회화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는데요. 부드러우면서도 정교한 붓놀림이 마치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듯합니다.

    다양한 색깔의 철화·동화백자

    철화·동화백자는 그릇 표면에 철이나 동 안료로 그림을 그려 장식한 도자기예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화 안료의 수급이 어려워지자 청화백자를 대신하게 됐어요. 안료에 철분을 섞으면 갈색이나 검은색을 띠며, 동을 섞으면 자주색을 띠게 돼요. 철이나 동 안료는 청화에 비해 수급이 쉬워서 지방에서도 널리 사용됐어요. 특히 변화무쌍한 짙은 갈색으로 강인한 힘을 전달하는 철화는 백자가 가진 매력을 더 풍성하게 했죠.

    조선 백자는 장식이 없는 하얀 빛깔만으로도 도자기 본연의 맛과 멋을 한껏 느낄 수 있어요. 여기에 다양한 안료를 사용한 장식이 더해져 훨씬 더 다채로워졌죠. 백자는 외적인 형식과 내적인 본질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서, 마치 조선 시대 사대부들이 이상으로 여긴 군자(君子)의 풍채를 갖췄다고 할 수 있답니다.
    기고자 : 이병호 공주교대 사회과교육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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