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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조작에 넘치는 가짜 뉴스… 지금 세상과 닮은꼴"

    이태훈 기자

    발행일 : 2023.03.28 / 문화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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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래빗홀' 주연 서덜랜드 인터뷰

    조작된 정보와 가짜 뉴스로 사람들의 생각을 통제하는 정체불명의 세력. 배신과 함정, 생사의 기로, 결백을 증명하려 죽을힘을 다해 뛰고 또 싸우는 남자.

    미국 드라마 '24'의 대테러 요원 '잭 바우어', 키퍼 서덜랜드(56)가 돌아왔다. 이번엔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파라마운트+의 새 시리즈 '래빗홀(Rabbit Hole)'. 그가 맡은 역할은 정보와 여론 조작으로 거대 기업에 이익을 안겨온 베테랑 산업 스파이 '존 위어'다. 비밀스러운 커리어의 정점에 올랐으나, 동료 살해와 폭탄 테러 누명을 쓰고 당국에 쫓긴다. 한순간에 강자에서 약자로, 사냥꾼에서 사냥감으로 추락하는 것. 티빙을 통해 27일 국내에 1·2화가 공개되기 전, 서면 인터뷰로 먼저 그를 만났다.

    서덜랜드는 "지금 세계엔 우리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이 반드시 사실은 아닌 경우가 점점 늘고 있지 않으냐"고 했다. "불과 10여 년 전엔 사용료 수만 달러의 스튜디오에 가야만 제대로 된 음악 앨범을 녹음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집의 아이들 침실에서도 노래를 만들 수 있죠. 우린 기술 발전으로 많은 것을 이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더 이상 정교한 장비 없이도 얼마든지 사실을 조작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적은 첨단 기술을 활용해 문자 그대로 어디에나 존재하며 포위망을 죄어온다. 더 진화된 개인적 형태의 사이버 테러가 가능해진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시리즈 제목은 땅 밑으로 얽힌 미로 같은 토끼굴(rabbit hole)처럼 주인공이 처한 끝 모를 위기의 연속을 가리키는 은유. 그는 "주요 인물들마저 누가 정직하고 누가 거짓말을 하는지,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인지 알 수 없다"며 "시청자도 선과 악, 진실과 거짓을 가려내는 두뇌 싸움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서덜랜드가 처음 출연 제안을 받고 끌렸던 건 각본의 높은 완성도, 그리고 시리즈 전체에서 배어 나오는 1970년대 걸작 스릴러 영화들의 향기였다.

    신분을 위장한 CIA 비밀 요원이 누명을 쓰게 되는 설정은 로버트 레드퍼드 주연의 '콘도르'(1975)를, 어릴 적 아버지의 극단적 선택을 목격한 소년이 어른이 된 뒤 거대한 음모에 휩쓸리는 건 더스틴 호프먼 주연의 '마라톤맨'(1976)을 닮았다. 끊임없이 도주하는 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라는 점에선 해리슨 포드 주연으로 리메이크(1993)됐던 드라마 '도망자'(1963)를 떠올리게 한다.

    "모두 미국 영화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위대한 스릴러죠. 저는 스릴러 팬으로 자랐고 스릴러를 사랑합니다. 거기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어요. 제가 보고 자랐고 사랑했던 영화들이 연상되는 시리즈라니, 무척 매력적이었죠. 누구라도 하고 싶어 할 작품이어서 제게 먼저 연락 온 게 고맙더군요."

    상황을 장악하는 뛰어난 두뇌는 주인공 '존 위어'의 강점인 동시에 약점. 뜻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때 그는 보통 사람들처럼 혼란스러워하고 약해진다. 그는 "다시 몸을 쓸 기회가 있어서 좋았다"고도 했다. "스릴러를 찍다 보면 격투 장면이 늘 있어서 좋아요. 이번엔 원래 격투가 익숙지 않은 인물이라 때리기보다 주로 맞는 편인 점도 마음에 들었죠, 하하."

    개인 정보 유출과 악용은 이 시리즈의 중요한 소재. 서덜랜드는 "나는 이메일도 컴퓨터도 없고, 손으로 편지를 쓰며 휴대폰은 전화할 때만 사용한다"며 "상대적으로 개인 정보 유출 위험은 덜한 셈"이라고도 했다.

    이 배우에게 최고의 작품은 무엇보다 대테러 요원 '잭 바우어'의 스물네 시간을 한 시간당 한 편의 에피소드로 만든 혁신적 시리즈 '24'였다. 2001년부터 10년간 에피소드 192편이 이어졌고, TV 영화와 속편 시리즈도 나왔다. 서덜랜드는 "내 인생 최고의 시기였다"고 했다. "그때 30대 초반이었어요. 신체적으로 건강했고, 20대를 지났으니 조금 더 똑똑했죠. '24'를 찍은 10년은 한 배우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안정적 기회였어요."

    서덜랜드는 "환경오염과 지구온난화를 생각하면 우리는 아직 산업혁명의 그늘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지금 진행 중인 기술혁명의 파급 효과와 현실에 적응하는 데도 오랜 세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서덜랜드는 "부딪치고 바꿔 나가면 더 나은 세상이 될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 "마냥 쉽고 순조롭지만은 않겠죠. 어쩌면 싸워야 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고요. 헤쳐나가기 힘든 세상이 됐어요. '래빗홀'은 좋든 나쁘든 그런 지금 우리의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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