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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담합'한 판사들, 기업들 담합엔 징역형·억대 벌금 때려

    이세영 기자

    발행일 : 2023.03.28 / 종합 A3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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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합 반대하던 선배 판사들도 동조
    사태 방치한 법원행정처 책임론도

    일선 배석판사들이 '일주일에 3건까지만 판결을 선고하겠다'며 사실상 담합(談合)하기 시작한 것은 2019년 무렵이라고 한다. 2018년 말 한 판사가 과로사한 것을 계기로 판사들 사이에 "일과 삶이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워라밸' 근무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벌어진 일이다.

    이에 대해 선배 판사들도 처음에는 "국민을 위해 재판을 해야 하는 판사들이 재판을 적게 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후배 판사들의 '1주 3건 판결 선고'에 동의하게 됐다고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에 대한 수사와 재판이 이어지면서 선배 판사들이 후배 판사들에게 마땅히 해야 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분위기도 있었다. 법원장 중에서도 "판사들의 '워라밸'을 위해 판결 선고 건수를 적정한 수준으로 낮춰야 한다"고 제안하는 경우가 나타났다.

    일부 법원 민사 합의부에서 시작한 '1주 3건 판결 선고'는 전국 법원의 모든 합의부로 확산했다. 부장판사들도 "배석판사들이 못 하겠다고 하니 재판을 독촉할 방법이 없다"는 식으로 돼버렸다고 한다. 한 부장판사는 "배석판사들의 워라밸을 핑계로 자신들도 여가를 즐기려는 부장판사들도 있다"면서 "법원 내에서 책임감 있게 재판을 처리하겠다는 엘리트주의는 사라지고 하향 평준화가 심각해졌다"고 말했다. 다른 부장판사는 "재판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관리할 책임이 있는 법원행정처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것도 큰 문제"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기업들의 담합 행위를 처벌하는 판사들이 정작 자신들은 재판을 적게 하겠다며 담합하는 것은 모순" "판사 담합은 기업 담합만큼 국민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2018년 법원은 시멘트 가격 인상을 담합한 업체 5곳에 1억2000만~2억원의 벌금형을, 업체 임원들에게는 징역 10개월~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헌법이 추구하는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경제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국민 경제에 미치는 폐해가 매우 크다"고 했다. 지난달에도 법원은 국가 백신 입찰 사업에서 낙찰가를 사전 공모하는 방식으로 담합한 제약사들에 "공정 경쟁을 방해했다"며 벌금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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