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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실리콘밸리'의 아버지, 6조원 사회에 돌려주고 떠나다

    이해인 기자

    발행일 : 2023.03.27 / 종합 A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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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어의 법칙' 고든 무어 타계

    '반도체 제국' 인텔을 창업하고, '무어의 법칙'으로 정보 기술(IT) 혁명의 이정표를 제시한 고든 무어가 24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향년 94세. 인텔은 무어가 하와이에 있는 자택에서 가족들이 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밝혔다.

    1929년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난 무어는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에서 화학 박사 학위를 받은 뒤 1956년 '쇼클리 반도체 연구소'에 입사했다. 하지만 노벨상 수상자이자 트랜지스터 발명자였던 윌리엄 쇼클리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운영 방식에 불만을 품고 동료들과 사표를 냈다. 이른바 '8명의 배신자(the Traitorous Eight)' 사건이다. 이들이 항공 재벌 셔먼 페어차일드의 후원을 받아 설립한 회사가 '페어차일드 반도체'이다. 무어와 동료들은 이 회사에서 당시 반도체 제작에 사용되던 저마늄(게르마늄) 대신 실리콘(규소) 트랜지스터를 상용화하는 데 성공했다. 실리콘밸리라는 이름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들의 배신은 새로운 산업을 만들겠다는 야망과 추진력을 가진 젊은 창업자 세대의 탄생이자 모범이 됐다"고 했다.

    무어는 1965년 잡지 '일렉트로닉스'에 게재한 글에서 "반도체 회로의 집적도가 매년 2배로 증가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1975년에는 2년마다 집적도가 2배씩 증가한다고 예측을 수정했는데, 무어의 친구였던 칼텍의 카버 미드 교수가 이를 '무어의 법칙'이라고 이름 붙였다. 무어의 법칙은 수십 년간 지켜졌고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이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됐다.

    무어의 법칙이 처음 나왔을 당시 실리콘 반도체 트랜지스터 1개의 가격은 150달러 정도였는데 이제는 10달러짜리 반도체칩에 트랜지스터 1억개 이상이 들어간다. 그만큼 폭발적인 성장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자동차가 반도체와 같은 속도로 발전했다면, 휘발유 1갤런(3.78ℓ)으로 16만㎞를 갈 수 있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무어는 1968년 로버트 노이스와 함께 인텔을 창업했다. 실리콘으로 흥미로운 제품을 만들겠다는 포부였다. 3년 만인 1971년 인텔은 세계 첫 상용 중앙처리장치(CPU) 칩 '인텔 4004'를 출시했고 후속 제품 '인텔 8088'이 IBM PC에 장착되면서 세계 최대 반도체 업체가 됐다. 이후 마이크로소프트와 '윈텔(윈도+인텔) 동맹'을 맺고 '인텔 인사이드'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PC와 인터넷 혁명을 주도했다. 영국 BBC는 "무어의 공헌이 PC와 애플, 페이스북, 구글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무어는 1979년 최고경영자(CEO)에 올라 1997년 명예회장으로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는 "PC 사업에 직접 진출해야 한다"는 인텔 직원들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CEO 재임 시절 가장 아쉬운 일로 꼽았다. "집에 도대체 컴퓨터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 무어의 논리였다.

    포브스는 2014년 그의 순자산이 72억달러(약 9조36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 은퇴 이후에는 자선 활동에 집중했다. 2000년 아내와 함께 인텔 주식 1억7500만주를 기부해 '고든 앤드 베티 무어 재단'을 만들고 과학 발전과 환경 운동을 지원했다. 인텔은 재단이 사회에 환원한 돈만 51억달러 이상이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무어는 맞춤 양복보다 헐렁한 셔츠를 입었고, 코스트코에서 쇼핑하며 소유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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