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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한 우물만 파면 재미없어, 넓게 호수를 파라"

    양평=정상혁 기자

    발행일 : 2023.03.24 / 문화 A18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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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5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 윤동천

    화단(畵壇)은 너무 좁다. 더 넓은 땅을 원한다.

    화가·판화가·설치미술가·조각가·사진가…. 올해 제35회 '이중섭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윤동천(66)씨는 말 그대로 다방면의 작가다. "좋게 말하면 실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산만하다"는 자평처럼 작품의 궤적이 실로 다채로운 까닭이다. 모더니즘 형식의 회화부터, 팝아트 성격의 개념미술까지 장르도 자주 건너뛴다. "평생 하나의 주제에만 매달리는 작가도 많다. 나는 그런 성격이 못 된다. 똑같은 것만 하자니 재미가 없었다."

    시작은 회화였다.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미국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에서 판화를 공부했다. 그리고 판화의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한 여러 시도가 이어졌다. 그중 하나가 황금색 금괴를 잔뜩 인쇄해 바닥에 깔아놓고 관람객이 밟도록 유도한 '노란 벽돌길'(1986)이다. "판화는 인쇄 매체라 크기 제약을 받는다. 그걸 넘어서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설치미술로 넘어갔다."

    그의 변신이 저항에서 비롯했듯, 작품마다 정치·사회적 메시지가 명확하다. 빨래판과 세제 등을 전시장에 늘어놓은 '선택의 기회 혹은 입장'(1995)이 대표적이다. 빨래 도구는 권총(권력), 연장(노동자), 책(학자) 사진 앞에 각각 놓여있다. 모두 오염이 불가피한 영역이지만, 여기서 유희가 작동한다. 권총과 책 사진 앞에 더 많은 세제가 놓여있기 때문이다. 1992년에는 흑백으로 칠한 5m 크기의 목발('거대한 불구')을 제작했다. "이념 양극화로 나라가 망가졌다는 의미"라며 "30년이 지나도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갤러리에서 전시 제안이 들어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안 팔릴 텐데 괜찮겠습니까?" 국내 상업 화랑 중에서 가장 큰 국제갤러리에서도 개인전이 열렸지만 돈 받고 판매된 건 하나도 없었다. 2014년 명동 신세계백화점에서 초청이 왔다. "마음대로 하라고 하더라." 그는 고급 백화점에는 결코 입점될 수 없는 물건으로 쇼윈도를 채웠다. 폐휴지, 폐신문, 폐병…. 그 배반의 장소(쇼윈도)에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크게 새겨놨다.

    해석 가능성을 위한 힌트를 제목에 꼭 남긴다. 전시장에 텅 빈 풍선을 띄워놓고는 '정치가-공약'(2011)이라는 제목을 붙이는 식이다. 지난해 개인전에는 갤러리에 둥근 북을 갖다놨다. 다만 울림판이 스판덱스로 돼 있어 아무리 쳐도 소리는 나지 않는다. 제목 '울리지 않는 신문고'. 윤씨는 "주로 TV나 신문을 통해 소재를 찾아낸다"며 "우리 일상의 이야기를 예술로 풀어내는 게 내 작업"이라고 말했다.

    30년간 재임한 서울대에서 지난해 정년 퇴임했다. "제자들에게 늘 했던 말이 한 우물 깊게 파지 말고 넓게 파서 호수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자꾸 다른 것을 추구하는 것, 그 문제 제기에서 예술의 지평이 넓어진다고 믿는다." 전업 작가의 삶이 시작됐다.

    [심사평]

    "하찮은 사물에도 의미 부여하는 마술사"

    윤동천은 미술의 사회적·교육적·철학적 기능과 실천이 현재의 우리를 치유하고 변화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임을 굳게 믿는 작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윤동천의 작품은 이른바 모더니즘의 모토였던 '예술을 위한 예술'의 범주를 벗어나, 우리 일상 자체가 예술이 될 수 있음을 그만의 방식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회화·조각·사진·판화·설치 작업뿐만 아니라 디자인과 언어까지 다뤘다. 이를 통해 작가는 가장 깨끗하고 확실한 메시지로써 관객과 소통하고자 노력했다.

    윤동천은 일상의 하찮은 물질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술사와 비슷한 작가다. 이 '마술'의 기본은 언어와 시각 이미지 간의 놀이다. 그 결과 개념적이면서도 이성적인 명쾌함이 은유와 상징으로 매력을 발산한다. 그가 실천해 온 믿음과 작품성이 '이중섭미술상'을 통해 그 객관성을 인정받았다고나 할까? "미술은 일상이다."  /제35회 이중섭미술상 심사위원회 정영목·정종미·김복기·고충환·김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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