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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선생님] [뉴스 속의 한국사] 독도 명칭의 유래

    유석재 기자

    발행일 : 2023.03.23 / 특집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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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나무도 없는데 '竹島(다케시마)'라 부른 日… 영유권 억지 증거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홈페이지가 2023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국 일본을 소개하면서 지도에서 '독도'를 '리앙쿠르 암초(Liancourt Rocks)'로 표기했다가 삭제했다는 뉴스가 나왔어요.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왜 '리앙쿠르'라고 표기하는 일이 생겨나는 것일까요? 독도의 명칭과 그것이 지닌 함의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847년에 독도가 '발견'됐다는 거짓말

    1846년 10월, 프랑스의 한 포경선(고래잡이 배)이 머나먼 동해로 떠났어요. 울산 반구대 암각화에 수많은 고래가 새겨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동해는 예로부터 고래가 많이 사는 바다였습니다. 이 프랑스 포경선은 해가 바뀐 1847년 1월 동해 한복판을 지나던 중 바다 위에서 뭔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선장인 로페즈는 프랑스 해군성에 올린 항해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나는 다줄레(울릉도)가 북동(北東) 2분의 1 북(北) 방향으로 바라보이는 위치에 있었다. 이 암석은 어떤 지도와 책자에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그들이 암석(암초)으로 봤던 이 섬이 다름 아닌 독도였고, 이 포경선의 이름은 리앙쿠르호였습니다. 1851년 '프랑스 수로지'는 이 섬의 이름을 '리앙쿠르 암초'라고 공식 표기했습니다. 섬을 '발견'한 배의 이름을 이 섬에 붙였다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실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서기 6세기 이전부터 울릉도(무릉도)와 독도(우산도)는 우산국이라는 옛 나라를 구성하는 섬('세종실록지리지' 기록)이었고,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벌한 뒤로 독도는 줄곧 한국 영토였기 때문이죠. 날씨가 맑은 날에는 울릉도에 사는 사람들이 육안(肉眼)으로 뻔히 볼 수 있는 이 섬을 프랑스 배가 '발견'했다고요? 오래전부터 수많은 원주민이 정착해 살던 아메리카 대륙을 '1492년 콜럼버스가 발견했다'고 표현하는 서구인들의 오만함이 '리앙쿠르 암초'라는 말에도 깃들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리앙쿠르 암초'라는 말은 지금도 서양에서 독도를 일컫는 지명으로 흔히 쓰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들이 독도를 '발견'했다고 믿는 오만함에 더해, 한국과 일본의 분쟁 지역이라고 의식해서 중립적인 용어인 듯한 '리앙쿠르'라는 지명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명백한 대한민국 영토이자 현재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독도를 서양 지명으로 표기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죠. 그들에게 대한민국 공식 지명인 '독도(Dokdo)'라고 표기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지명 '다케시마(竹島)', 日의 엉터리 주장

    대한민국 영토인 독도를 일본이 자기들 마음대로 부르는 지명은 '다케시마(竹島)'입니다. 우리 발음으로는 '죽도', 즉 '대나무 섬'이라는 뜻이 되죠. 하지만 정작 독도에는 대나무가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부르는 걸까요?

    서기 512년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이후 독도는 울릉도와 함께 신라·고려·조선의 영토였습니다. 그런데 1417년(태종 17년), 조선 조정은 세금 걷는 일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먼 섬의 백성들을 뭍으로 이주시키는 정책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해금(海禁) 정책이라고도 합니다. 울릉도·독도는 조선 영토지만 공식적으로는 조선 백성이 거주할 수 없는 지역이 된 것이죠.

    이로부터 약 200년이 지난 17세기부터 일본인들이 어업을 위해 국경을 넘어 울릉도와 독도까지 오는 일이 생겼습니다. 이때 일본 측에서는 울릉도를 '다케시마', 독도를 '마쓰시마(松島)'라고 불렀습니다. 마쓰시마는 우리 발음으로는 '송도'가 되죠. 섬의 특징을 지명으로 표현했다기보다는, 일본어에서 순서나 등급을 표시할 때 쓰는 말인 '송(松)' '죽(竹)' '매(梅)'가 적용된 것으로 보입니다. 독도를 1호 섬(송도), 울릉도를 2호 섬(죽도)으로 불렀다는 것이죠.

    하지만 1693년(숙종 19년) 조선 어부 안용복이 일본으로 납치된 사건을 계기로 조선과 일본 사이에 울릉도·독도를 둘러싼 국경 분쟁이 생겨났습니다. 이것은 1696년 1월 일본 측이 '다케시마 도해 금지령'을 내려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이 뒤로 200년 가까이 일본인은 공식적으로 울릉도·독도로 건너갈 수 없었는데, 이 기간에 울릉도와 독도를 부르는 지명이 뒤바뀌었습니다. 일본에 체류했던 네덜란드인 폰 지볼트가 1840년 '일본과 그 주변도'라는 지도를 그렸는데, 울릉도를 '마쓰시마', 그 옆 섬을 '다카시마(다케시마의 오기로 추정)'로 표기했습니다. 이 영향으로 이후 일본에선 예전에 독도를 '마쓰시마'로 부르던 것을 잊어버리고 '다케시마'라고 부르게 됐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대나무 없는 섬을 '대나무 섬'이라고 부르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죠. 현재 대한민국이 '죽도'라고 부르는 섬은 울릉도와 독도 사이에 있는 또 다른 섬입니다.

    1877년 日 국가기관 "독도는 우리와 무관"

    예전 우리나라에서 독도를 부르는 명칭은 우산도(于山島)였습니다. 1454년(단종 2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우산과 무릉(울릉도)이라는 두 섬이 울진현 동쪽 바다 가운데 있다. 두 섬은 멀지 않아 날씨가 맑으면 바라볼 수 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명칭은 18세기까지도 유지됐습니다. 1770년(영조 46년) 왕명으로 편찬된 '동국문헌비고'는 "울릉도와 우산도는 우산국 땅"이라 기록한 뒤 "우산도는 왜인들이 말하는 송도(마쓰시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19세기 후반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1883년(고종 20년) 조선 조정이 해금 정책을 폐기하고 주민들이 울릉도에 가서 살도록 '개척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이 무렵 울릉도에서 어업 활동을 하던 주민 중 호남 지방 남해안 출신이 많았는데, 독도를 '돌섬'이란 의미의 방언인 '독섬'으로 불렀습니다. '독섬'은 한자로 표기할 때 뜻을 취한 '석도(石島)' 또는 발음을 취한 '독도(獨島)'로 표기됐습니다.

    1900년 대한제국이 칙령 제41호에서 울도군(지금의 울릉군)의 행정 범위 안에 포함한 '석도'는 '독도'를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칙령 제41호가 발표된 것은 일본이 1905년 내각회의에서 '다케시마(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킨다'고 자기들 마음대로 결정하기 5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 결정은 1877년 일본 최고 국가 기관이었던 태정관이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지령을 자기 나라 내무성에 보냈던 사실을 완전히 뒤집은 행동이었죠.

    결국 '리앙쿠르 암초'나 '다케시마' '죽도' 등 해외에서 부르는 독도의 다른 명칭은 우리가 써서는 안 되는 지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고자 :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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