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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事一言] 호른과 마부작침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발행일 : 2023.03.22 / 문화 A20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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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연구실 벽에는 지칠 때 마음을 다잡기 위한 여러 인쇄물이 붙어 있다. 그중 작년 11월에 있었던 호른 연주자 펠릭스 클리저(Felix Klieser)의 리사이틀 팸플릿이 있다. 그는 선천적으로 양팔이 없었지만, 다섯 살 때 호른 소리에 매료되어 왼발과 입술을 이용해 악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어떤 관악기보다 풍부한 음색을 내는 호른은 오케스트라 화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지만, 깨끗하고 정확한 음을 내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호른을 배우는 것은 지름길과는 거리가 멀다. 잘된다 싶다가도, 며칠만 연습을 놓으면 다시 형편없는 소리를 내게 된다. 지루할 것 같지만, 한 음씩 호흡에 몰입하며 소리를 만들다 보면 나를 잊는 황홀경에 빠질 수 있다. 같은 호른 연주자로서 이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안다.

    신체적 제약을 이기고 홀을 가득 채우는 펠릭스 클리저의 아름다운 소리는 25년간 있었던 꾸준한 몰입의 과정을 방증한다. 연습과 연주를 즐기며 매 순간에서 희열을 얻는 그는 남들이 5~10년을 보고 미래를 계획할 때, 스스로는 30년을 바라본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이 팸플릿의 바로 옆에 '마부작침(磨斧作針)'이라는 글자를 붙여 놓았다. 도끼를 갈아서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어려운 일이라도 멈추지 않고 정진하면 언젠가는 성공함을 이르는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어떤 과정들의 최종 결과를 한 가지 숫자로 환산하고, 또 이를 서로 비교하려는 경향이 있다. 매출, 수익, 건수, 성적 등 온갖 지표들이 만들어진다. 지표들은 다시 이러저러한 변환을 거쳐 '돈'이라는 척도로 줄 세워진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최대한의 산출을 만들어 내며, 그 속도를 매년 더 빠르게 하는 것이 '성장'으로 정의되며, 사회는 지름길만을 찾는다. 배우고 고민하고 또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러한 결과주의적 문화가 구성원들의 만성적 스트레스와 번아웃(Burn out)을 일으킬 수 있다. 진정한 성장과 지속 가능한 성취를 원한다면, 조금은 둘러 가더라도 과정을 즐기고 또 몰입해 보는 것은 어떨까.
    기고자 : 정희원 서울아산병원 노년내과 교수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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