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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위해 전략적 판단… 尹, 나카소네 닮았다"

    도쿄=성호철 특파원

    발행일 : 2023.03.22 / 종합 A4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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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구라 前주한日대사 도쿄서 본지와 인터뷰

    "윤석열 대통령은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일본 총리와 닮았어요. 한국 대통령이 (동북아 안전보장을 위해) 대단히 전략적인 판단을 했습니다."

    일본 외교계의 원로인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5) 전 주한 일본대사는 한일 양국 간 최대 현안인 징용 문제 해결책을 제시한 후, 일본을 방문한 윤 대통령을 나카소네 전 총리에 비유했다. 17일 도쿄 그의 사무실에서 만난 오구라 전 대사는 "(1982년 말) 총리에 취임한 나카소네가 다음 해 1월 아무도 예상 못 한 서프라이즈 방한(訪韓)을 한 뒤 미국으로 간 이유를 아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윤 대통령이 다음 달 미국에 가서 미·일·한 3국 안보를 논의하기 전 (나카소네 전 총리와) 똑같은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나카소네는 당시 소련과 냉전 중이던 미국에서 한·미·일 연대를 논의하기 전에 먼저 한국을 찾아 한일 양국 간 협력이 작동하는 상황을 만들었는데, 윤 대통령이 그렇게 했다는 것이다.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 해협의 위기 고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문제와 같은 국제 정세 속에 일·한 관계는 단순히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라, 아시아는 물론이고 전 세계의 안전보장과 연결된 문제"라고 강조했다. 과거 나카소네가 소련의 대외 팽창을 견제한 것처럼 윤 대통령이 중국의 군사적 확장 억제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오구라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의 방일은 무엇보다 타이밍이 좋았다"며 "앞으로 4월 방미와 5월 G7(주요 7국) 회의 참석으로 연결돼 전 세계에 메시지를 내는 한국의 존재를 과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사태에서 한일 간 '해빙' 신호를 한국 정부가 먼저 내놓은 대목을 높이 평가했다. "수십년간 한일 관계가 냉각된 적이 많았지만 이번은 과거와는 명백히 달랐다"고 했다. 과거에는 국민 감정이 나빴어도 뒤에선 정부 간에 긴밀한 의사소통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본 정부, 심지어 외교를 담당하는 외무성마저 '한국 불신'에 빠진 상태였다고 한다. 문재인 전 정권이 위안부 합의, 징용 피해자 배상 등 한일 정부 간 합의와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시하는 바람에 일본 정부의 한국에 대한 불신감이 한국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이 먼저 불신의 덩어리를 녹이는 해빙 메시지를 냈다"며 "불신감이 당장 확 풀리지는 못하고 시간도 걸리겠지만 '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는 메시지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했다.

    오구라 전 대사는 "윤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은 일본 정치의 '한국화'라는 악순환을 끊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도 했다. 그는 "사실 한국 정치에는 예전부터 대일 관계를 정치 도구로 이용하는 사례가 없지 않았다"며 "최근 몇 년 새 일본에서도 혐한(嫌韓) 감정을 이용하는 정치인들이 등장했고, 이른바 일본 정치의 '한국화'가 나타났다"고 했다. 그는 일본의 국가 이익에 반(反)하는데도 자신의 이해득실에 따라 혐한에 올라타는 정치인들이 한일 관계 정상화에 따라 입지가 좁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라남도와 판소리, (홍어) 삼합을 사랑한다"는 오구라 전 대사는 "징용 피해자에 대한 피고 기업의 배상과 사과를 기다려 달라"고 한국인에게 당부했다. 그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일본 피고 기업은 어떤 타이밍에서든 자발적으로 선의의 증표라는 걸 반드시 내놓을 것"이라며 "다른 사람들이 사과하고 돈을 내라고 할수록 (피고 기업이 하는 사과의) 진정성이 떨어진다"고 했다. 그는 "금액의 크기가 아닌 마음의 무게가 중요하다"며 "스스로 해야 진짜 사과이며, 일본 경제계도 그런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오구라 전 대사는 한일 간 전략적 대화가 궤도에 오르면 중국의 군사 확장에 대한 외교적 억지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했다. "안전보장에는 군사적 억지력과 함께 외교·정치적인 노력도 중요하다"며 "중국 입장에선 한일 관계가 나쁠 땐 양국이 각자 뭐라고 말하든 흘려듣지만, 두 나라가 전략적 대화 기반에서 같은 목소리를 내면 중국으로서도 무시 못할 강한 의견이 된다"고 했다. 한일 간 전략적인 협의는 동북아 안전보장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두 정상의 낮은 지지율이 한일 관계 정상화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선 "그렇지 않다"고 단언했다. "영국과 프랑스, 미국 등 주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60~70% 지지율의 리더십은 없다. 중국이나 러시아 등에서나 나오는 사례일 뿐"이라고 했다.

    양국 협력을 방해하는 과거사 청산 문제에 대해선 "한반도가 통일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며 "한일뿐 아니라 일본·북한 간에도 과거사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일본인은 계속 도발하는 북한과 한국이 다르다는 걸 알고 있지만, 머릿속 어딘가에 '한국과 북한은 같은 민족이니 같은 편일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고 했다.

    한국의 반일 감정은 긴 세월을 지나면서 나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1960년대 일본 대사관 앞에서 시위할 때면 탄환이 날아왔는데, 10년 뒤에는 돌멩이가, 다시 10년 후에는 토마토와 계란이 날아왔다"고 했다. 그는 "내가 대사로 재임할 때는 항의 노래와 확성기로 약화했다"며 "일본에 대한 한국인의 의식이 한층 성숙해졌다"고 했다.

    [오구라 가즈오는 누구]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설계한 일본 외교계의 원로

    일본 외교계의 원로인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5) 전 주한 일본 대사는 대표적인 지한파(知韓派)로 꼽힌다. 주한 대사 재임 중 '김대중·오부치 뉴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설계했다. 도쿄대 법대를 졸업했고, 외무성 경제국장과 외무심의관(차관급), 주프랑스·베트남 대사 등을 역임했다. 국제교류기금 이사장과 도쿄2020올림픽유치위원회평의회 사무총장도 지냈다.
    기고자 : 도쿄=성호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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