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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총 든 우리 기업, 기관총 든 국가와 무역戰"

    신은진 기자

    발행일 : 2023.03.21 / 경제 B1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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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자열 무역협회장 인터뷰

    "지금 우리 수출 기업의 경쟁 상대는 해외 기업이 아니라, 미국·EU(유럽연합)·대만·중국처럼 자국 기업에 각종 보조금과 혜택을 살포하는 해외 국가들입니다."

    구자열 한국무역협회장은 지난 17일 서울 삼성동 무역협회 회관에서 가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이제는 기업이 국가와 경쟁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구 회장은 "무역 전쟁에서 해외 국가들은 기관총 나눠주면서 싸우는데 우리는 소총 하나 들고 싸울 순 없지 않으냐"며 "국내 생산설비·R&D(연구개발) 투자에 대한 세제 혜택, 공장 건설 관련 규제도 글로벌 스탠더드(국제 기준)에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구 회장이 2021년 2월 무역협회장으로 취임한 뒤 가진 첫 언론 인터뷰다.

    취임 3년 차 구 회장이 맞닥뜨린 대외 상황은 심각하다. 우리 경제의 핵심 엔진인 수출은 줄고, 수입은 급증하면서 무역수지는 1년째 적자 늪에 빠져 있다. 품목 기준으로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지역 기준으로 25%를 차지하는 중국 수출이 고전을 면치 못해서다. 세계 경제가 진영화, 블록화되면서 대외 불확실성은 점점 커지고 미중 무역 갈등 골도 깊어지고 있다.

    구 회장은 "무역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선 정부의 적극적인 규제 철폐와 정부·민간의 정교한 통상 전략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미중 갈등이 뉴노멀이 됨에 따라 우리는 양국 사이에서 전략적 균형 관계를 유지하는 정교하고 세밀한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과의 협력 공고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이지만, 우리 최대 교역국인 중국도 절대 버릴 수 없는 시장"이라며 "중국과 전략적 대화 채널을 가동하고 기업 간 교류는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민간 협력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구 회장은 또 "미국 IRA(인플레이션 감축법), 유럽의 탄소국경조정제도 등 각국이 시행하는 통상 정책은 영향력이 크고 효과가 직접적이지만 개별 기업이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며 "그래서 통상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무역협회가 민간 통상 협력의 한 축으로 우리 기업들의 입장과 의견을 당사국 정부에 적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고 했다. 구 회장은 다음 달 미국을 방문해 정부 고위 인사와 상·하원 의원, 주지사 등 정관계 주요 인사들을 두루 만날 계획이다. 무역협회는 지난해에만 미국에 경제사절단을 3차례, 유럽에 1차례 파견했다.

    구 회장은 반도체를 대체할 뚜렷한 수출 품목이 없다는 지적에 "전기차(40.4%)와 2차 전지(15.1%)는 지난해 수출이 두 자릿수 성장세를 보이며 선전하고 있다"며 "당분간 반도체 경기가 좋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대안 수출품 발굴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했다.

    구 회장은 미국·유럽 등 선진국이 첨단 산업 유치 경쟁에 나서면서 우리 기업들에 대한 해외 투자 압박이 점점 심해져 국내 첨단 제조업이 공동화(空洞化) 위험을 맞을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는 "정부가 규제 개혁에 나서고 있다곤 하지만, 현장에 가보면 기업들은 크게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글로벌 경쟁이 치열한 첨단 산업에 한해서라도 예외적으로 수도권 규제를 완화하는 등 국내 투자 환경을 국제 수준에 맞게 재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지난 15일 정부가 전국 15곳에 국가첨단산업단지를 짓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서는 "암울한 무역 환경에서 대단히 환영할 만한 결정"이라면서도 "속도감 있게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LS그룹 회장 출신인 구 회장은 지난 2년간 코로나 물류난 해소와 수출 기업인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장을 자주 찾아다녔다. 글로벌 물류 경색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는 HMM, 고려해운, 대한항공 인천공항터미널, 부산신항을 찾아 협조를 부탁했고, 이를 통해 1629개 회사의 8275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박스), 42만 3252t의 수출 화물 운송을 지원했다고 한다.

    구 회장은 최근 2030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중남미 카리브해 5국을 다녀왔다. 직항은커녕, 정규 노선도 없어 비행기만 11번을 갈아타야 했다. 난기류에 심하게 흔들리던 작은 프로펠러 항공기가 무사히 착륙했을 때는 모든 승객이 박수를 칠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이들 국가를 방문한 최초의 한국 경제사절단”이라면서 “한국인들이 뒷심이 있으니까 엑스포도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미친선협회인 코리아소사이어티는 지난 16일(현지 시각) 한미 관계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나 단체에 수여하는 밴플리트상 수상자로 무역협회를 선정했다. 구 회장은 “선친 구평회 회장께서 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받았던 밴플리트상을 이번에 또다시 받게 돼 감회가 새롭다”며 “한미 간 네트워크를 확대하고 민간 통상 외교 사절로 양국의 파트너 관계를 강화하는 데 더욱 힘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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