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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 무너지며 내 영화가 시작됐다"… 스필버그의 '영화 자서전'

    김성현 기자

    발행일 : 2023.03.21 / 문화 A17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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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개봉하는 영화 '파벨만스'… 절친 각본가 쿠슈너와 19년간 제작

    "영화는 꿈이란다. 잊히지 않는 꿈."

    난생처음 부모와 함께 찾아간 영화관. 소년 '새미'는 그만 할 말을 잃고서 스크린 속 별세계에 빠져든다. 1952년 영화 '지상 최대의 쇼' 가운데 열차 탈선 장면이다. 컴퓨터 그래픽과 디지털 기술이 보편화한 지금 시점으로는 그야말로 유치한 미니어처에 가깝지만 소년에게는 환상의 세계요, 일상의 탈출구다. 그때부터 소년은 아버지의 카메라를 들고서 장난감 기차와 자동차의 충돌 장면이나 두루마리 휴지를 뒤집어쓴 여동생들이 뛰어다니는 유령 영화를 찍기 시작한다.

    공룡('쥬라기 공원')과 상어('조스'), 외계인('E.T.')과 인공지능('A.I.')까지…. 스티븐 스필버그(76) 감독은 지난 반 세기 동안 영화의 지평을 확장한 거장이다. 하지만 영화로 자서전까지 쓸 줄은 몰랐다. 22일 개봉하는 '파벨만스'는 영화와 첫사랑에 빠졌던 유년기를 담은 자전적 작품. 비록 가족의 성(姓)은 스필버그에서 파벨만스로 달라졌지만, RCA와 GE에서 근무한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와 전문 피아니스트였던 어머니라는 가족 설정까지 고스란히 영화에 담았다. 실제로 감독의 아버지 아널드(1917~2020)는 초기 컴퓨터 개발의 주역이었고, 1960년 방소(訪蘇) 대표단에도 포함된 뛰어난 전기 공학자였다. 스필버그는 단짝 각본가인 토니 쿠슈너와 함께 지난 2004년부터 틈틈이 작업했다.

    흔히 노장의 자서전은 적당한 윤색과 자기 자랑이 뒤섞여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하지만 '파벨만스'가 빼어난 점은 그런 유혹을 과감하게 뿌리치고 치부까지 낱낱이 드러낸다는 점이다. 스필버그 자신도 "부모님이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모욕으로 여길지 모른다는 것이 내 커다란 두려움이었다"고 고백했다. 소년의 영화 사랑과 가족의 붕괴는 동시에 진행되며 어떤 의미에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버지의 절친한 부하 직원과 어머니가 사랑에 빠져드는 순간, 말로는 설명하기 힘든 복잡 미묘한 감정을 포착하는 것이 바로 소년의 카메라다. 카메라에 담긴 장면을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감정을 깨닫게 되는 어머니 역은 배우 미셸 윌리엄스가 맡았다. 영화는 꿈과 환상의 세계지만, 동시에 비정한 세상을 반영한다는 비극적 진실을 스필버그 감독은 일찌감치 카메라를 통해서 깨달았을 것이다.

    아무리 할리우드 최고 흥행 감독이라고 해도 상영 시간 2시간 31분은 다소 길다. 부모의 불화와 이혼, 학창 시절의 집단 괴롭힘과 첫사랑의 추억까지 뒤섞이다 보니 에피소드 나열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편집의 달인 스필버그도 자신의 추억 앞에서는 가위질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공감을 주는 건 배움과 깨달음, 성장을 다루기 때문이다. 숱한 좌절과 실패 끝에 찾아간 할리우드 스튜디오에서 소년은 영화 '분노의 포도'를 연출한 당대 최고 감독 존 포드(1894~1973)를 만난다. 아카데미 감독상만 4차례 받은 대선배는 소년에게 딱 하나 잊을 수 없는 교훈을 들려준다. "영화에서 지평선이 바닥에 있거나 꼭대기에 있으면 흥미롭지만, 반대로 한가운데 있으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행운을 빌고 이제 내 사무실에서 썩 꺼져라." 마지막 장면에서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소년은 우리가 알고 있는 스필버그 감독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거장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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